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몰아보거나 이어보거나

소파·이불 필수, 케이블TV 프로그램들
등록 2016-09-14 16:54 수정 2020-05-03 04:28
명절 연휴, 한가롭게 TV를 볼 수 있는 1년에 딱 두 번 있는 복된 시간이다. 최대치의 몰입감을 발휘해 몰아보자. CJ E&M 제공

명절 연휴, 한가롭게 TV를 볼 수 있는 1년에 딱 두 번 있는 복된 시간이다. 최대치의 몰입감을 발휘해 몰아보자. CJ E&M 제공

단언컨대, 한 시절 명절 TV 편성표는 가장 소중한 ‘물질’이었다. 오매불망 신문을 기다리고, 몇 페이지에 걸쳐 펼쳐진 TV 편성표를 소중히 오려두는 일은 명절을 앞두고 치르는 가장 중요한 의식 가운데 하나였다. 갈등을 거듭하며, 함께 봐야 하는 이들의 의견까지 감안해 볼 프로그램을 고르고 끝내 최종 확정짓는 일은 언제나 번뇌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다. 기술의 진화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본방보다 설레던 기다림의 시간을 삭제했다. 전체 시청자의 74.7%가 가입한 디지털 유료방송은 리모컨 조작만으로 수십 개 채널의 편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집에 신문을 보는 이들이 줄어든 것처럼, 어떤 이들은 아예 거실 TV 자체를 잘 보지 않는다.

쉼표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같다. 명절 연휴에 한가롭게 TV를 본다는 것은 그나마 세상에 쉼표가 있음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푹신한 소파나 이불에 등 대고 배 깔고 누워 그저 할 일 없이 지루할 정도로 세상사를 관람할 수 있는 복된 시간은 1년에 딱 두 번만 주어지는 혜택이다. 물론, 선택은 중요하다. 어떤 프로그램은 재밌고, 어떤 프로그램은 형편없다. 채널을 바쁘게 넘겨가며 재밌는 것만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보면 몰입감이 떨어진다. 명절 TV는 누가 뭐라 해도 몰아보는 맛이다.

연휴 첫날인 9월14일(수) 아침, 일단 (tvN) 몰아보기로 시작하라. 아침 8시부터 가 연속 방송된다. 기본적으론 로맨스코미디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 스타 강사로 나오는 하석진과 엉뚱한 국어 강사로 나오는 박하선의 ‘케미’는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하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드라마는 얼마 전에 끝난 (JTBC)와 함께 연애가 시작되고 성립되는 당대의 과정이 꽤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혼밥’과 ‘혼술’이 대중문화의 호명을 받는 세태란, 결국 취업난이라고 하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청춘들의 연애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는 연애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대중문화가 비로소 이 엄중한 변화를 ‘드라마터지’(dramaturgy)로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시작점이다. 한국 드라마가 그렇듯 당연히 그런 생각 없이 봐도 볼 만하다.

가족 시간엔

이어서 내리 TV를 볼 것이라면 낮부터는(오후 1시30분) (tvN)을 추천한다. ‘고창 편’은 여전히 최고의 조합인 차승원-유해진과 손호준-남주혁의 캐릭터가 구성지게 어우러지며 유사가족 혹은 한국 사회 ‘내무반 생활’의 진수를 보여준다. 알다시피 는 예능의 통념적 요소를 굉장히 많이 덜어냈음에도 희한할 정도로 재밌는 프로그램이다. 언제부터 봐도 상관없고, 중간부터 봐도 그만이다. 과 의 요소가 묘하게 뒤섞여 있는 는 ‘패밀리 타임’에 가장 적합한 볼거리다.

약간 길을 달리해 가는 선택도 있다. 추석 연휴 하루 전인 9월13일(화) 밤부터 TV에 몰두할 수 있다면 (Mnet)를 권한다. 시즌마다 부침이 있지만 시리즈는 힙합이 음원시장의 절대적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프로그램이다. 이번 시즌도 매회 불렸던 노래들이 음원 차트를 점령하다시피 휩쓸었다. 지금 대중문화 트렌드의 전반이 어떤 ‘비트’로 굴러가고 있는지를 한번에 살필 수 있는 기회다. 9월13일 밤 9시부터 5편이 이어지고, 14일(수) 오전 10시부터 다시 4편을 보면 완결이다. 혹시, 전편 몰아보기에서 뭔가 성이 차지 않았다면 몰아보기까지 이어갈 수도 있다. 은 16일(금) 오전 11시50분부터 한다.

CJ E&M 제공

CJ E&M 제공

하지만 9월16일(금) 밤의 선택은 단 하나 (OtvN) 전편이다. 16일 밤 12시부터 1~16회 전편이 이어진다. 낮에 미리 자둬야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다. 명절에만 할 수 있는 도전이다. 전도연, 유지태, 윤계상의 캐스팅으로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는 ‘미드’를 원작으로 하는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기대한 만큼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숨 막히는 전개로 방영 내내 화제를 모았다. 남자들에 의해 짜인 가혹한 운명에서 ‘좋은 아내’의 틀을 벗어나려는 전도연의 쟁투를 보는 일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선택이다.

밤새 드라마를 보는 일이 체력적으로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되면 포기하라. 다른 걸 보면 된다. 9월16일(금) 낮, 연속으로 이어지는 ‘마블 히어로 특집’은 그야말로 이번 추석 TV의 하이라이트다. OCN은 16일 오전 11시30분부터 ‘마블 히어로 특집’을 편성해 를 그야말로 향연처럼 편성표에 박았다. DC와 함께 전세계 슈퍼히어로 시장을 양분하는 마블은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토르, 앤트맨’ 등의 캐릭터들이 이른바 ‘마블 유니버스’를 이루고 경합하거나 경쟁하는 거대한 하나의 세계다. 그 각각의 인격들을 파악하는 일은 꽤 난이도가 높은 교양인데, 슈퍼히어로 전반의 복잡한 서사와 내러티브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은 단 한 가지, 닥치고 보는 수밖에 없다. 마블의 히어로들을 몰아서 볼 수 있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의 교양은 물론 술자리 대화 주도력을 한층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다 재밌다.

아침형 인간에겐 성룡
CJ E&M 제공

CJ E&M 제공

무슨 소리냐, 그래도 명절은 역시 ‘성룡’이지 할 분들도 있을 거다. 그런 분들은 좀 일찍 일어나야 한다. 한국 명절의 대명사, 추석의 간판스타 성룡도 이제 프라임타임을 꿰차지 못하는 노장으로 밀려났다. ‘슈퍼액션’ 채널이 9월14일(수)부터 18일(일)까지 매일 오전 9시 성룡의 영화들을 편성한다. 14일 오전 10시 초창기 성룡 액션의 진수라고 할 를 시작으로 15일 9시에는 , 16일 9시 , 17일 , 18일 11시 가 매일 이어진다. 성룡 팬들에겐 그야말로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은 주옥같은 작품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한 작품을 추천하자면 가장 최신작(?)인 (1996년)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 막판에 제작된 이 작품은 홍콩과 미국 자본의 합작으로 성룡 커리어에서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된 작품이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성룡의 영어 이름이 ‘재키’(Jackie)로 굳어지기도 했다.

그게 며칠이건 언제나 연휴는 짧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끝나버린다. 이번 연휴 역시 아마 그럴 것이다. 몰아보기가 끝나면, 어느 순간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막막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자아를 부디 잘 다독일 수 있길 기원한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