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제주만을 위해!’
지난 7월24일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 대형 펼침막이 걸렸다. 이 경기장은 조제프 블라터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이라고 찬사를 보낸 곳이다. 그 아래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FC(제주 FC) 구단이 2006년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제주에서 특별한 존재다.
잦은 비행기 ‘원정’ 경기 힘들어1981년 한국야구선수권대회(현 KBO리그) 개막으로 국내에 프로스포츠 시대가 열렸다. 이후 35년 프로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이른바 ‘4대 스포츠’ 가운데 제주 연고 구단은 제주 FC가 유일하다. 바다 건너 있어 선수단 이동이 어렵고, 팬들의 호응이나 모기업 홍보 효과가 낮다는 이유로 연고지 후보조차 좀처럼 거론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2006년 ‘부천 SK’가 연고지를 제주로 옮겼다. 구단 이름도 ‘제주유나이티드 FC’로 바꿨다. 제주 유일의 프로구단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7월22일 찾은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 FC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동남 마케팅 실장은 “프로구단이 제주에 뿌리를 내리는 시도 자체가 처음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섬 구단’으로 살아야 하는 고충은 적지 않다.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대개 육지 출신이고, 제주 선수들조차 이미 육지에 자리잡은 경우가 많았다. 이 실장은 “일정 수준 이상 기량을 갖춘 선수를 데려오는 일이 어려워 처음엔 선발진을 꾸리는 일조차 힘들었다”고 말했다.
바다 건너 ‘해외’ 구단이 되면 어려움은 자연스레 많아진다. 한 시즌 정규리그 38경기 가운데 원정 19경기를 비행기로 이동해야 한다. 원정 경기마다 평균 12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축구는 3~4일 간격으로 경기가 있는데 선수나 구단 직원들이 이틀쯤 휴가를 받아도 제주를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이 실장은 전했다.
선수들은 제주 특유의 환경 때문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주장 오반석 선수는 “육지보다 훨씬 높은 습도가 선수들을 괴롭힌다. 원정 때 비행기가 지연돼 몸도 풀지 못하고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고 말했다. 상대팀들은 한 시즌에 제주행 비행기를 한 번 타지만, 이들은 제주발 비행기를 19번이나 타야 한다. 수비수 정운 선수처럼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제주 삶이 늘 팍팍한 것은 아니다. 2010년에는 연고지를 옮긴 지 5년 만에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K리그 클래식(프로축구 1부 리그)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선수들 입장에선 제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도 있다. 오반석 선수는 “제주에서만 ‘진짜’를 맛볼 수 있는 말고기나 흑우로 체력을 보충하는 선수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말고기·흑우로 체력 보충구단이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제주 주민들과의 관계다. 제주 FC는 2013년 프로축구협회한테서 ‘팬프렌들리’ 상을 받았다. 선수들이 지역 초·중·고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한 해 100여 차례 도민 행사에 찾아가는 노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구단은 판단한다. 구단 쪽은 “제주도 자생 구단이 아니기에 거리감이 단기간에 해소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민이 제주 FC를 ‘우리 선수’ ‘우리 팀’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더 많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FC 팬클럽 ‘풍백’의 강은방 회장은 “제주 FC가 지역의 유일한 프로구단을 표방하면서 제주로 왔을 때 정말 설레었다. 팬클럽도 ‘오직 제주만을 위해’ 구단에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지현 교육연수생 creativebjh@naver.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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