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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외딴 곳으로”

바람의 섬에서 외롭게 즐겁게, 음악인 장필순의 11년차 제주살이

제1123호
등록 : 2016-08-04 18:28 수정 : 2016-08-0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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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종 기자

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사로잡혔던 이유는 바람 소리 때문일 것이다. 장필순(53)의 허스키한 음성에는 서늘한 쇳소리 대신 서걱거리는 바람이 배어 있다. 그 목소리를 통기타 선율에 실어 외로움을 노래하곤 했다. 활동 초기인 1992년에는 <이 도시는 언제나 외로워>(3집)를 부르고, 5집에서는 종전의 히트곡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를 읊조렸다. 3년 전, 10년 만에 낸 정규 앨범에는 <난 항상 혼자 있어요>를 실었다.

외로운, 바람의 사람. 그가 바람의 섬 제주에 사는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7월25일 제주 애월읍의 작은 카페에서 섬사람이 된 지 11년 된 음악인 장필순을 만났다.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어머, 오늘이 며칠이지? 2005년 7월21일에 내려왔거든요. 이제 꼭 11주년이 됐네.” 그해 여름 그는 모든 것을 홀홀 털고 키우던 강아지 세 마리와 함께 섬으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앨범 하나 만들 때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었다. “노래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그걸 제가 즐기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서울을 떠나기 직전에는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버티기가 힘들어 경기도 일산으로, 양평으로, 가평으로 집을 알아보며 서울에서 차츰 멀어지는 시도를 해보았다. “음악하는 친구들 활동 반경이 대도시이다보니 멀리 갈 엄두를 못 냈어요. 근데 그렇게 (수도권 외곽으로) 나가보니까 달라지지 않는 거예요. 저한테 크게 쇼크로 오지 않았어요. 다 털고 좀 움직여봤으면 했는데, 해외로 나가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고….”

그렇게 하여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 생각한 게 제주다. 제주에서도 북적이는 관광지나 해변과는 거리가 먼 조용한 산기슭에 자리잡았다. 처음 왔을 때 외딴 느낌이 들었던 그 동네에도 어느새 사람들이 많이 밀려들었다. 최근 그는 좀더 외로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람이 많이 사는 데보다 조금 올라가자는 생각을 했어요. 제주에 오기로 마음먹고 한 달 동안 내려와 지내며 둥지 틀 곳을 찾았어요. 서귀포, 중문, 함덕… 남쪽과 동쪽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서쪽으로 가보라는 거예요. 풍광이 막 딴 세상 같고 그렇진 않지만 제주도 사람들이 오래 터 잡고 살았던 동네가 여기다, 분명 사람이 살기 좋은 공기나 분위기, 환경적 요소가 있을 거라고 했죠. 그래서 애월, 한림… 무작위로 다니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부동산 중개소가 흔치 않아 물어 물어 집을 찾으러 다녀야 했다. 구멍가게, 마을 이장님 집을 찾아가 어디 내놓은 집 없냐고 수소문했다. 그러다 외딴 길 끝에 있는 집을 하나 만났다. 집이 있을 만한 데가 아니었다. 멀뚱하게 세워진 집은 새마을운동 당시 지었을 법한 슬레이트가 있는 양옥집이었다. 집 자체만으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구석이 없었지만 너르게 펼쳐진 마당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 가진 돈을 헤아려 예쁜 집을 살지, 너른 마당을 가질지 고민하다가 마당을 택했다.

개 8마리와 함께 사는 외딴 집

장필순이 마당에서 키우는 개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뒤로 산에서 해온 나무들이 쌓여 있다. 푸른곰팡이 제공

그렇게 구한 애월의 작은 마을 외딴 집에서 그는 현재 8마리 개를 키우고, 텃밭을 돌보고, 음식을 해먹고, 가끔 노래하며 지낸다. 그리고 더 가끔, 1년에 네댓 번 하는 마을 청소와 마을 운동회에도 참여하며 지낸다.

“음악하는 건 어느 순간, 혹은 긴 시간 손을 놓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강아지들 돌보는 건 하루도 거를 수 없어요.”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개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개 때문”이라고 말하진 못했지만 방송사에서 해외로 음악 투어를 가자는 것을 거절한 적도 있다.

집 안에 3마리, 마당에 5마리 개들은 서울에서 함께 온 아이들 중 아직 살아남은 16살 시추 ‘아로니’ 빼고는 대부분 유기견이다. 나무에 묶여 어쩔 줄 몰라 하며 지내던 아이, 다리가 다친 채 숲속에 버려진 아이, 협재 바다에서 집을 잃고 떠돌던 아이, 애월항 인근 횡단보도 앞에서 늘 같은 자세로 앉아 있던 아이가 하나둘 그의 식구가 되었다.

마당에 있는 개들은 기다란 줄을 매어 기른다. 5마리 중 4마리가 어른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덩치가 큰 종인데, 열린 대문으로 자꾸만 나가서 그런다. 매일 2시간씩 줄을 풀어 실컷 뛰놀게 하는 동안 장씨는 마당과 텃밭을 정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마당 청소하고, 잡초 뽑고, 텃밭 돌보다가 애들 부르면 앞으로 모여요. 그러면 줄 다시 묶어주고요. 요즘같이 더울 때는 그러고 나면 속옷까지 땀으로 다 젖어요.”

한동안은 개를 돌보는 시간만큼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나무하러 가는 것이었다. 사는 집의 난방을 기름보일러로 하기 시작한 것이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 7년 동안은 나무로 불을 땠다. 서울에서 쓰던 차를 몰고 나무하러 다녔다. 그를 ‘가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마을 사람들이 혀를 차곤 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열심히 노래하고 돈 벌어서 기름보일러를 사지, 그 좋은 차 천장 다 찢어가며 나무를 실어다니냐고 했죠.” 숲에 가서 벌목 허락을 받고 나무를 자르는 시간이 좋았다. 장작도 잘 팬다. 제주에서 새로 얻은 기술, 몸으로 하는 노동으로 얻는 마음의 가치가 있었다. 그는 이런 것들을 “정서적 필수품”이라고 말한다.

햇볕 아래서 흘린 땀을 식히고 나면 텃밭에서 따온 채소를 다듬어 밥을 차려 먹는다. 요리 잘하기로 유명한 그는 제주에 살면서는 오히려 간소한 식단을 즐긴다. 김치 하나 놓고 반찬 두어 가지만 내면 끝이다. 요즘 같은 철에는 국수에 풋고추만 있어도 맛있단다. 봄여름에는 80% 이상 텃밭 재료로 상을 차릴 수 있다.

태평농법을 아시나요

“취나물, 파드득나물, 곰취, 머위… 이런 것들 심어놓으면 다년생이라서 봄이면 알아서 커요. 특히 제주에서는 뿌리가 안 죽거든요. 명이나물도 있어요. 아직 장아찌 할 정도 양은 안 나오고 봄에 따서 먹을 정도는 돼요.” 봄철 내내 넘치는 나물들을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다음해 봄이 될 때까지 두고두고 먹는다. “봄에 모종도 심죠. 유기농이면 더 좋겠지만, 없으면 오일장에 가서 고추·피망·가지·오이·호박·상추 모종을 사와서 심어요.”

농사가 보통 일 아니겠다고 하니,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것도 하기 나름이에요. 태평농법이라는 게 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깔깔 웃었다. “선생님이 만든 용어예요?” 되물었다. 유기농법 중에 실제하는 말이란다. 자연농법, 게으른 농업 등으로 바꿔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수확을 많이 하기 위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는 대신 자연이 주는 대로 키우고 거두는 농법을 이르는 말이다. “지들이 자라는 대로 두는 거예요. 예컨대 고추는 지주를 해줘야 하거든요. 열매가 무거우니까. 근데 그냥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두니까 거기서 자라더라고요.”

제주에서 살며 11년째, 음악과 삶에 대한 태도도 조금씩 태평농법과 같은 식으로 변해갔다. “만날 조심조심 기타만 치던 손이 이렇게 됐어요.” 나무하고 호미질하느라 관절염이 생겨 마디가 굵어진 손을 펴보였다. “예전에는 이런 게 두려웠어요. 내가 기타를 못 치게 되면 어떡하지? 노래하다가 기운이 달려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기타 못 치면 누가 쳐주면 되는 거지, 뭐 어때. 내가 이 나이까지 음악을 했는데, 하다못해 기타 연주해줄 사람 하나 없을까, 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예전보다는 한결 가뿐한 마음으로 제주에서 육지로, 바람에 노래를 실어 보낸다.

제주에서 작업한 앨범들에는 알게 모르게 제주의 음색이 배어 있다. 가사들만 봐도 그렇다. 바다, 노을, 하늘 같은 단어가 여러 곡에 흩뿌려져 있다. 제목부터 <애월낙조> <고사리 장마> 같은 곡들도 있다. 차가워 보이지만 실상 마음결 포근한 언니인 장필순이 드러나는 곡도 있다. 7집에 실린 동화 같은 노래 <맴맴>을 부르는 장필순의 목소리는 훈풍처럼 따사롭다.

제주의 음색을 더한 노래들

제주에서의 작업은 모두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서울 연주자들과는 원격으로 연결해 음을 맞춘다. 작업실 삼은 방에 컴퓨터 등 녹음 장비를 들여놓고, 기계들이 내는 소음을 피해 선을 하나 끌어다 침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노래를 부른다. 일종의 부스인 셈이다.

인터뷰 직전까지도 그렇게 작업하다 왔다고 했다. 8월에 디지털 싱글 앨범이 나올 예정이다. “7월 안에 하려고 했는데, 영상이니 뭐니 해서 좀 밀렸거든요. 그거 계속 사운드 체크하고 있어요. 한 번이라도 더 들으면 그 전에 못 들은 걸 발견하니까. 또, (조)동익이 형이랑 같이 작업하는 게 있거든요. 그거 소리 찾고 코러스를 넣기도 하고요. 요즘은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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