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에서 가장 바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이 만났다. 그에게 난개발, 주택·토지 가격 폭등, 교통량 폭증, 취업난 등 현안을 묻고 대책을 들었다. 뒤이은 기사에선 ‘낯선 아름다움’의 제주어와 제주의 아픈 역사, 독특한 문화를 다룬 책들을 소개한다.
제주는 그리움. 손으로 만지면 닿을 것 같은 그리움.
“나는 가슴속에 조그맣게 축소된 바다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눈 감으면, 암암히 떠오르는 유년의 바다, 어린 내 몸을 안고 굴리면서 잔뼈를 굵게 키워준 제주바다다. 도시 생활의 이런저런 일에 부대껴 정신이 사나워지고 마음이 혼탁해지면 내 가슴속의 작은 바다도 몸살을 앓는데,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제주바다를 만나기 위해서 공항으로 달려가곤 한다.”(현기영, , 다산책방, 2016)
뭍에서 자란 이에게도 제주는 그리움. ‘섬 시인’ 이생진(87)에게 그러하다. 그는 충남 서산 출신. 시집 (1978). 제주바다에 바친 ‘헌시의 일출봉’이다. 내처 그는 시집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일출봉에서 우도 쪽을 바라보며 시집을 펴면 시집 속에 든 활자들이 모두 바다로 뛰어들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시집에서 시를 읽지 않고 바다에서 시를 읽을 것입니다.”
시인의 곡진함을 안으면, 바다를 이렇게 노래한 연유가 파도처럼 가슴을 철썩 때린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설교하는 바다’)
제주는 아픔. 1948년 그날. 4·3. 1987년 봄, 전두환 군사독재의 서슬이 절정일 때, 장편 서사시 하나가 한국 사회를 충격했다. 시인 이산하(56)의 . 시는 5장 25절 1300여 행에 이른다. 발표 뒤 시인은 곧바로 수배됐고 그해 11월 체포돼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시 또한 당국에 의해 판매금지 조처.
“지금도/ 성산포에서는 갯벌에 나간 어린 소녀들이/ 조개를 줍거나 바지락을 캐다/ 갑자기 하얀 해골이 튀어나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일이 허다하다/ (…)/ 그밤이 토해낸 아침/ 우리는 보았다/ 오래도록 쌓여온 설움의 분출/ 거리에 가득찬, 멍든 뒤꿈치/ 네게도 내게도 피어린 발꿈치로/ 해방의 기쁨이 찾아온 거리…”( 판본)
시인 신경림은 그해 겨울의 한 문학좌담에서 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산하의 은 역사적 진실을 시를 통해 밝히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때로 표현이 지루하고 산문성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는 소설은
이산하보다 앞서 4·3을 폭로한 것은 소설가 현기영(75). 1978년 발표된 중편소설 은 여전히 4·3의 상징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소설 발표 뒤 작가 또한 보안사에 잡혀가 고문당했으며, 책 또한 발매 금지됐다. 작품의 표제인 ‘순이 삼촌’은 30년 전 학살 당시 살아남았지만 두 아이를 잃은 여성.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자살.
“군인 여남은 명이 빠른 동작으로 돌담 위로 뛰어오르더니 아래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러자 조회대 뒤에 늘어서 있던 이십여 명의 군인들도 앞에총 자세로 잽싸게 뛰어나오더니 정면에서 사람들을 포위했다. 단상의 그 장교는 권총을 어깨 위로 빼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가 강하게 턱을 올려젖히자 철모가 햇빛에 번쩍 빛났다.”
권총 빼든 장교는 국가폭력의 대리자와 다름없다. “잘 들으라요. 우리레 지금 작전수행둥에 있소. 여러분의 집은 작전명령에 따라 소각되는 거이오. 우리의 다음 임무는 여러분을 모두 제주읍으로 소개하는 거니끼니 소개둥 만약 질서를 안 지키는 자가 있으문 아까와 같이 가차 없이 총살할 거이니 명심하라우요.”
최근 출간된 그림책 (권윤덕 글·그림, 평화를품은책)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3년을 취재했다. 재일조선인 작가·사회운동가 김시종(87)의 (윤여일 옮김, 돌베개)도 손에 쥘 만하다. 부산에서 나고 제주에서 자란 그는 4·3의 한복판에서 일본으로 밀항해 입때껏 살고 있다. 책은 일제 ‘황국소년’으로 자라던 소년기부터 해방과 4·3을 거쳐 1970년대까지를 아우른다. 그것은 “가시 돋친 밤송이 껍질 같은 기억”의 다발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12권으로 완간된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91)의 대하소설 (김환기·김학동 옮김, 보고사)는 4·3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최고봉이라고 이를 만하다.
21세기 제주의 아픔. 그 상징은 강정마을. (이주빈 글, 노순택 사진, 오마이북, 2011)는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강정마을 ‘평화유배자’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이 미친 짓 그만두라고 말해주세요.” 구럼비는 강정마을 바닷가에 펼쳐진 길이 1.2km, 최대 너비 250m의 너럭바위. 국방부는 2012년 3월 폭약을 터뜨려 바위를 부숴버렸다.
작가 43명이 쓰고, 사진가 7명이 찍어 만든 (북멘토, 2013)은 강정마을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맥락을 꿸 수 있는 책이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그 글에 제주의 아름답고 아픈 사진을 함께 담아 책으로 엮습니다.”
밤송이 껍질 같은 기억의 다발
‘제주 개론서’로는 (강영봉 지음, 각, 2015)가 제격. 좀더 인문학의 눈으로 제주를 이해하려는 이들에게는 주강현(61) 제주대 석좌교수의 (웅진지식하우스, 2011)을 권할 만하다. 인문학적 기행서로서 바람·돌·잠녀·귤·곶자왈·테우리·화산·삼촌·표류·유배·장두 등 15가지 DNA로 제주의 원형질을 톺아보는 역작.
앞선 책들에 견줘 몸집과 주제가 가벼운 ‘제주 책’은 넘쳐난다. ‘올레 개척자’인 서명숙(59) 제주올레 이사장이 2008년 낸 (북하우스, 초판 제목은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은 여전히 고전. 제주에 사는 예술가 15명의 이야기를 묶은 (대숲바람, 2016)도 다채롭게 읽힌다.
빠뜨릴 수 없는 것, 제주 음식을 다룬 책으로는 (허남춘 외 지음, 이야기섬, 2016)를 꼽을 수 있다. 질박하여 건강한 제주 식단이 ‘장수의 섬’을 낳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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