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무엇인가. 공간을 다루는 기술이다. 공간은 무엇인가.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이다. 그렇다면 건축은,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무엇에 기대고 있는지 드러내주는 바로미터일 수밖에 없다. 건축이 삶의 방식과 태도를 드러내주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화는 난민을 생산하는 기제다. 난민은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난민은 오히려 세계화의 적자라고 해야 마땅하다. 마치 기아와 빈곤이 자본주의 작동의 결과물인 것처럼. 박노자는 난민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어라고 지적한다. ‘세계화’라는 자본 확대재생산 방식과 ‘국경’이라는 자본축적 전제조건의 충돌은 필연적인데, 이 충돌에서 난민이 발생한다는 거다. 그리하여 난민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어이자 가장 약한 고리로 등장한다. 최근 우리는 유럽 난민 사태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통해 이 단어가 갖는 위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했다.
현재의, 확장된, 미래의 난민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난민은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국내 난민 신청자는 1만5천 명에 이르지만, 난민 자격을 인정받은 이는 4%에도 못 미치는 580여 명뿐이다. 난민은 한국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지워진 이름이다. 8888혁명(1988년 8월8일에 일어난 버마 민주항쟁) 이후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온 버마 난민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그는 지쳐 있었다. 오랫동안 법적 지위를 얻지 못한 채 타국에서 고된 삶을 살아왔고, 결국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병든 몸과 지친 마음뿐이었다. 배제의 시스템은 배제된 이들에게 가혹한 삶의 조건을 강제한다.
8월7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은 한국 사회가 애써 외면하는 난민 문제를 건축의 개념과 문법을 통해 환기하는 작업이다.
전시는 난민의 현실을, 우리가 눈감고 배제한 폭력을 드라마틱하게 노출한다. 동시에 건축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의 대안을 적극 모색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을 받은 이번 전시는 계간 을 비롯해 각종 강연과 세미나, 프로젝트 등을 통해 대안건축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온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작품이다.
셸터(대피소)라고 하면, 우선 건축물을 연상하게 된다. 건축에 대해 좀 아는 이들은 전세계 재해 현장에서 난민을 위한 건축에 앞장서는 반 시게루 같은 건축가들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비롯한 정치적 이유 때문에 타국으로 밀려난 사람들만 난민이라 지칭하지 않는다. 전시는 현재의 난민뿐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상상의 난민과 인간에게 밀려난 다른 존재들까지 난민 범주에 포함시킨다.
건축가와 타 분야 전문가들이 협업해 만든 다섯 개 프로젝트는 다시 ‘현재의 난민’ ‘확장된 난민’ ‘미래의 난민’으로 재분류가 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분류이므로 전시장에는 다섯 개 프로젝트가 독립적으로 디스플레이돼 있다.
먼저 ‘현재의 난민’이다. 건축가 김찬중(더시스템랩)과 빅데이터 전문가 김경옥(서울과학기술대), 박진숙(난민인권활동가)의 협업으로 만든 (Big Data Sheltering), 건축팀 에스오에이(강예린·이재원·이치훈)와 김현미(문화인류학자)의 협업 (Re-Settling)이 여기에 속한다.
프로젝트는 스마트폰으로 난민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만남과 정착을 지원한다. 난민들이 기본적인 생활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넘어 생활권역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통해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말 그대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확장된 대피소인 셈이다. 스웨덴에서 출시된 ‘웰컴앱’과 일부 기능이 유사하지만, 개인에게 맞춤형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한층 나아간 솔루션이다.
동식물, 배제당한 인간 난민의 대응프로젝트는 이주민 문제의 민낯을 까발린다.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보고도 흠칫 놀라지 않는다면, 당신의 심장을 다시 점검해봐야 할지 모른다. 도시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원거리 출퇴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낮은 비용의 주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농촌의 이주노동자에게 선택의 여지는 비좁다. 이들은 고용주가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놓은 비닐하우스 창고에서 주거를 해결한다. 위성사진에 보이는 검은 점들이 이주노동자,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의 주거지 분포라고 생각하면 움찔하는 마음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군대막사처럼 여럿이 침상을 나눠 쓰는 이 공간의 월세가 1인당 20만원씩이라면, 믿기는가?
‘레어 콜렉티브’(최춘웅·최승호·표창연)와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의 협업으로 이뤄진 (Open Your Yard & Open Your Heart). 건축가 박창현(에이라운드 건축)과 조경가 이수학(아뜰리에나무), 정성훈(애림조경)의 협업으로 탄생한 (Refugee Plants, Vegetable Refugees)는 난민의 범위를 동식물로 넓힌다. 두 프로젝트를 ‘확장된 난민’이라 부르는 이유다.
는 생명마저 간편하게 거래하고 팬시하게 소비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유기동물 문제를 난민 범주에 포함한다. 동물이 바라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점에서, 범주의 확장은 수용 근거를 갖는다. 1년에 8만 마리 넘게 버려지는 유기동물, 즉 동물난민은 시스템에서 배제당하는 인간난민에 정확히 대응한다.
언젠가 철학자 김영민은 공원을 두고 ‘도시가 자연을 먹고 싼 배설물’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렇다면 도시 곳곳에 이름조차 잊힌 채 섬처럼 떠다니는 ‘잡초’들은 무어라 불러야 마땅할까. 는 마로니에 공원을 비롯한 서울 동숭동 일대를 매핑한 결과를 활용해 풀들의 이름과 자리를 되찾아준다. 현장에서 스케치한 작업은 전시장 폴대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듯 몸을 부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프로젝트는 ‘미래의 난민’이다. 건축가 황두진(황두진건축사무소)과 양욱(군사안보전문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The Interim Buffer Zone) 프로젝트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상된 난민을 맞이하는 것을 그린다.
정치적 격변으로 북한에서 30만 난민이 밀려 들어온다면 우리에겐 어떤 솔루션이 있을까? 이 프로젝트는 한 곳당 수천 평의 면적을 지닌 전국 예비군 훈련장 250개를 난민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면 너끈히 수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너무 허황되서 웃음만 나온다고? 놀라지 마시라. 이 안은 국방부도 비공식적으로 고려하는 시나리오라고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황두진 소장은 “예비군 훈련을 난민을 위한 자원활동으로 바꿔 진행하면 효율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제안한다. 실로 담대하고 혁신적인 구상이다. 예비군 훈련을 가서 북한 출신 난민들에게 배식하고 이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풍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물론 30만 난민이라는 최악의 혼란은 일어나지 않는 편이 최선이라는 것 정도는 전제로 깔아두자.
정치 격변으로 북에서 난민이 밀려온다면또한 오재우와 차지량의 영상작업을 포함해 난민 관련 다양한 자료가 리서치 아카이브로 전시된다. 7월 중 5회에 걸쳐 난민포럼이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 홍세화 사회운동가 겸 언론인, 서경식 일본 도쿄대학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김종철 변호사 등이 참여해 진행될 예정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저녁 7시. 주중 오후 2시/4시, 주말 오후 2시/4시/6시에 전시 해설이 있다. 문의 정림건축문화재단 02-3210-4991, 아르코미술관 02-460-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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