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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이 뭐 맞을 일인가요?”

스포츠선수 인권과 폭력, 체벌 문제 다룬 영화 <4등> 연출한 정지우 감독 인터뷰
등록 2016-04-13 15:22 수정 2020-05-03 04:28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결승 벽을 터치한 선수들이 가쁜 숨을 내쉬며 하나둘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다. 전광판에 환하게 불이 들어온다.

4등. 만년 4등 초등학생 수영선수 준호(유재상)는 오늘도 약속한 듯 4번째로 골인했다. 관객석에서 눈에 핏발을 세우며 준호를 응원했던 엄마(이항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준호를 다그친다. “야, 준호. 너 바보야? 어? 지금 먹을 게 입으로 들어가니? 야, 4등! 너 땜에 죽겠다. 진짜 너 뭐가 되려고 그래? 너 꾸리꾸리하게 살 거야, 인생을? 준호야, 너 엄마 싫지, 그치? 니가 진짜 싫어하는 엄마가 뒤에서 막 쫓아온다, 이렇게 생각하며 수영하란 말이야. 그럼 초가 준다고. 엄마가 몇 번 말해!”

의 정지우 감독(사진)이 스포츠선수의 인권과 체벌 문제를 다룬 영화 을 만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12번째 프로젝트로 제작된 이 작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큰 호평을 얻기도 했다. 4월13일 개봉한다. 4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정지우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되물림되고 묵인되는 폭력 </font></font><font color="#638F03">19살 광수(박해준)는 천재 수영선수로 촉망받았지만 도박에 빠져 일주일간 무단으로 수영 연습에서 이탈한다. 한국 기록을 여러 번 경신하며 아시안게임에 나가기 직전이었다. 분노한 감독이 광수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스리고, 광수는 이 일을 계기로 수영을 그만둔다. 폐인 생활을 하며 지내다 16년 뒤 준호를 만난 그는,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12살 준호를 대한다. 온몸의 상처는 이내 동생과 엄마의 눈에 띄지만, 생애 처음으로 ‘1등에 가까운 2등’을 한 기쁨에 폭력은 묵인된다. </font>엄마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 자신의 실패를 아이를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욕망이 현실적이고 세밀하다.

수영을 하는 소년을 중심에 놓고 그를 둘러싼 여러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수영대회에 참가한 아이를 둔 엄마의 심경이 어떤지, 운동하는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만나서 얘기를 많이 들었다. 동생 기호의 역할도 취재를 통해 발견했다. 형제자매 중 누군가 운동을 하면, 그 아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온 가족이 동원되고 자원이 집중된다. 그런 상황에서 기이한 어른스러움을 갖게 되는 아이들이 있다. 자기 일을 스스로 해결하고 어른처럼 살아야 하는 동생 캐릭터가 그렇게 나왔다.

폭력의 대물림, 폭력에 순응하는 사람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상황도 촘촘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폭력과 관련해서는 워낙 빼어난 자료가 많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다. ‘맞을 짓은 없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해 말할 수 있다. 영화 초반에 어린 광수가 도박을 하느라 국가 대표 연습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맞을 짓”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대물림해서 일어나는 폭력을 보자. 맞는 게 싫어 수영을 그만둔 준호가 동생 기호를 엎드리게 하고 자로 때리는 장면이 있다. 형이 입지 않는 수영복을 입고 목욕탕에서 놀았는데, 거기에 분노한 광수가 “맞을 짓을 했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걸 폭력의 정당한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폭력이 대물림되기 전, 최초의 문제를 해결할 때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어린 시절 광수를 돌보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인가.

엘리트 스포츠에서 천재적인 아이들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말하려 했다. 어린 나이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스포츠선수 중에는 천부적 재능만으로 선수 생활이 가능한 이들이 있다. 막 성장하는 선수들, 이런 천재를 어른들은 승리의 도구로 이용한다. 좋은 관계 맺음이나 배움을 얻지 못한 이들이 방치되고 이용당하는 현실의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수영을 그만둔 광수(왼쪽)는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방식으로 제자 준호를 대한다. 영화는 무자비한 체벌에 노출된 스포츠선수의 인권을 평범한 입말로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워너비펀 제공

폭력을 견디다 못해 수영을 그만둔 광수(왼쪽)는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방식으로 제자 준호를 대한다. 영화는 무자비한 체벌에 노출된 스포츠선수의 인권을 평범한 입말로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워너비펀 제공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도 저도 아닌 그 자리, 4등</font></font><font color="#638F03">제작비 6억원, 두 달 보름 동안 촬영한 은 작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동안 사회 통념을 넘어서는 사랑을 그려온 정지우 감독의 전작과 조금 다른 면모가 있다. 상업영화 시장에서 각박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던 감독은 경쟁 사회의 잔혹한 얼굴을 평범하고 일상적 인물들을 통해 그렸다. </font>

순하고 착한 영화다. 기존에 만든 영화와는 결이 조금 다른데.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상업영화를 할 때는 대중이 내가 하는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하면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중에 부합하려는 것 아닌가, 그런. 하지만 인권영화는 앞에 대의가 꺼내져 있기 때문에 좀 자유로운 기분이 있었다. 이런 건 안 해야지, 하고 노력한 부분이 있긴 했는데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혼나는 기분이 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의의를 가진 여러 콘텐츠를 보면서, 그 내용을 지지하면서도 위축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었다. ‘너도 지금 잘못하고 있어’라는 메시지가 가닿지 않았음 했다.

왜 4등인가.

7~8등 하면 누가 물어보지도 않고 설명도 안 한다. 근데 4등이 되면 말이 많아진다. ‘내가 어제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거든’ 혹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고 말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현재를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태다. 가속하기에는 무엇을 잘하고 잘못하고 있는지 판단이 잘 되지 않고. 가장 난처한 자리가 4등이기에 그렇게 설정했다.

‘4등 경험’을 한 적이 있나.

비교적 없는 편이다. 그렇다고 1등 인생이라는 말은 아니다. 수영선수들이 수면으로 나오자마자 전광판에 기록과 순위가 뜨지 않나. 영화도 모든 사람들이 아는 기록 경기가 됐다. 이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나서서 이 돈을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들었냐고 혼낸다. 내가 만든 영화가 냉대받았을 때 느낀 처절함 같은 게 있다. 경쟁을 몸으로 겪은 경험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영화는 레이스를 버리는 선수의 입장에서 만드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준호가 레인을 이탈해 자유롭게 수영하듯 만들었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원 없이 만들어본 영화다. 그러나 대중과의 교집합이 적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상업영화에서 시도하지 못한 여러 모험을 했다. 마지막 수영대회 장면에서 주요 인물인 엄마나 코치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관점에서는 대단히 불편할 수 있다. 그들도 각성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벽으로 나뉘어 있던 준호와 벽을 넘어 교감을 시작하거나…. 행복해져야지, 이 세상에 대해 우리가 안심할 수 있도록, 이런 메시지가 없다. 엄마 캐릭터도 그렇다. 엄마의 헌신을 절대시하고 그것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헌신이라는 이유로 엄마가 휘두르는 생짜를 생략도, 미화도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형, 1등 하면 기분이 어때요?” </font></font><font color="#638F03">영화에서 신문기자로 등장하는 준호 아빠가 일하는 장면에서, 종이 더미가 쌓여 있는 사무실 배경을 보고 참 현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지우 감독이 말하길, 이 장면은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영화는 현실적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시합 장면에서 준호와 경쟁하는 선수들은 실제 초·중학생 수영선수다. </font> 준호가 “1등 하면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던 선수는 박태환 선수를 떠올리게 한다. 늘 1등을 하고, 커다란 이어폰을 걸치고 다니는데.

박태환 선수를 패러디했다기보다는, 실제 청소년 수영선수들 사이에 박태환 선수는 어마어마한 롤모델이다. 박태환 선수를 따라하는 실제 모습을 반영한 거다. 그 선수를 연기한 최지혁군은 촬영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수영선수로 활동하는 훌륭한 친구다.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수영장 신을 촬영할 때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고 현장에서 늘 스태프를 도왔다. 운동도 잘하는데다 건강한 소년의 맑은 선의, 이런 키워드로 채워진 친구라 나중에 어떻게 성장할지 모든 스태프가 궁금해한다.

빛을 따라 헤엄치는 수중 신은 어떻게 촬영했나.

준호가 “빛을 보면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오는 것 같다”는 다소 허황된 대사를 하는데 준호의 심리 상태를 따라가며 그려보고 싶었다. 여러 각도에서 빛을 그려보았다. 사실 이런 장면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거다. 이 장면을 포함해 수영장 촬영 자체가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은 있었다. 촬영 장소로서 수영장이라는 공간의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다. 그냥 수도꼭지 틀어서 수영장만 채우면 촬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들어가려면 체온을 유지할 만한 적절한 수온으로 물을 데워야 했다. 여기에 굉장한 비용이 들어간다. 저예산 영화라 비용을 아껴야 하는데, 수영장에서 선의를 가지고 섭외에 동의를 해줘도 싸게 해주려야 해줄 수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소리가 너무 울려서 상대의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다. 이런 현장에서 장시간 촬영하고 작업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만약 달리기 선수였다면 유쾌하게 찍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냥 운동장에서 햇빛 좋을 때. (웃음)

<font size="4"><font color="#008ABD">물속에서 우는 수영선수 이야기</font></font>그럼에도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까닭은 무엇인가.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 평소 이미지에 대한 직관적인 매혹을 갖고 있었다. 물속에서 우는 수영선수, ‘아이고’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다독다독해주고 싶은 사람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작은 영화에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 있나.

또 시도해보고 싶다. 이전엔 막연한 바람만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이걸 구현하려면 사전에 어떤 방식으로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제작비가 많은 영화나 아닌 영화나 시간이 부족하고 돈이 부족한 건 똑같다. 규모의 차이일 뿐이지. 다만 이번 영화는 현장에서 먹을 간식을 살 때 1+1로 묶인 걸 사는 등 차이가 있었다. 이런 디테일까지, 실질적인 노하우 같은 게 생겼달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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