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이 일어나고, 10·26 사건이 벌어지고,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던 1979년. 현대사의 결정적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 해로 기억될 그해에 한 가수가 자신의 은퇴를 알리고 고별 공연을 했다.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정미조였다. 그는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그림 공부를 하러 떠난다 했다. ‘이대 나온 여자’고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훗날 “가수는 한때 달콤한 외도였다”는 말을 할 만큼 미술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아무렇지 않게 ‘37년’이라는 숫자를 쓰지만, 돌아보면 참 아득한 시간이다. 강산이 네 번 가까이 바뀔 동안 1979년 고별 무대를 가졌던 가수는 프랑스 유학을 마친 뒤 화가가 되었고 미대 교수가 되었다. 20회가 넘는 개인전과 100회가 넘는 단체전을 가지며 화가로서의 목표나 꿈도 어느 정도 이루었다.
이라는 앨범 제목은 명확하고 직관적이다. 가수 정미조가 대중의 곁에서 사라진 37년이라는 세월이 그대로 앨범 제목이 되었다. 37년 만에 가수로 돌아온 데는 가수 최백호의 부추김이 큰 역할을 했다. 화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 뒤늦게 찾아온 노래에 대한 갈망도 있었다. 그렇게 37년간 끊겨 있던 노래의 길이 다시 연결됐다.
지금 음악동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재즈·크로스오버 음악가들이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정수욱·박윤우·이순용·고상지·이희경·서수진 등 연주자들이 이름을 올렸고, 손성제는 클라리넷 연주와 함께 음악감독으로 앨범 전체를 지휘했다. 손성제는 ‘근동사중주단’(The NEQ)이라는 실험적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라는 근사한 가요 앨범을 만든 음악가이기도 하다. “이지적인 이미지와 기품 넘치는 목소리로, 패티김을 잇는 대형 가수로 인정”받았던 정미조에겐 꼭 맞는 인적 구성이었다.
앨범의 첫 곡, 정미조는 을 다시 부르며 자신의 복귀를 알린다. 그리고 그가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라고 노래하는 순간 모든 것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3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한 목소리, 아니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견디며 더한 품격과 호소력을 갖게 된 목소리는 그 한 소절로 듣는 이를 바로 무장해제시킨다. 우리는 이를 연륜이라 부르곤 한다.
앨범의 처음과 시작에 과 를 배치한 건 좋은 전략이었다. 그 사이에는 이주엽과 박창학 등이 노랫말을 쓰고 손성제가 만든 곡들이 있다. 그 노래들은 과 사이에서 아무런 이질감 없이 마치 오래된 노래처럼 한데 어울린다. 거꾸로 과 가 새로운 노래처럼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새 노래들과 어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손성제가 주도한 편곡과 연주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보사노바의 어법이 있고, 탱고와 왈츠의 흔적도 앨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반도네온이나 비브라폰 같은 악기도 표현 수단이 훨씬 다양해진 지금의 음악동네에선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정갈한 연주와 이주엽과 박창학의 격조 있는 가사, 여기에 무엇보다 정미조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기품 있는 팝 음악이 만들어졌다. 37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기품 있는 성인 가요다.
정미조는 8년 전 한 인터뷰에서 가수로서의 컴백 생각이 전혀 없다며 “가수는 내 인생의 달콤한 외도 같은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깨고 나서도 깨뜨리고 싶지 않은 꿈”이라 덧붙였다. 이 말의 번복을 지금 모두가 환영하고 있다. 그 꿈은 깨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김학선 음악평론가※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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