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아이>(위)와 <하트 오브 더 씨>. 위부터 CGV아트하우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극장가에 두 마리의 흰고래(백경)가 출몰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11월25일 개봉)와 론 하워드 감독의 해양 시대극 (In the Heart of the Sea·12월3일 개봉). 두 영화는 허먼 멜빌의 소설 과 연관이 있다. 전자에서 고래는 판타지로, 후자에선 실제로 등장한다.
에서 흰고래는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다. 괴물 세계의 쿠마테츠가 키운 소년 큐타는 인간 세계에서 소녀 카에데를 만나 글을 배운 뒤 소설 을 읽는다. 카에데는 “에이해브 선장은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한다. 선장은 흰고래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만 불타올라 자신을 포함해 이스마엘을 제외한 선원 전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흰고래를 괴물로 부르는 선장 자신이 괴물이었던 셈이다. 큐타에게 복수하겠다고 달려드는 이치로 히코 역시 큐타를 괴물로 대한다. 이치로 히코의 내면 속 어둠이 흰고래로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흰고래는 결국 자신의 내면에서 자라는 괴물이다.
흰고래를 악마와 괴물로 대하는 심리의 밑바닥에는 탐욕, 복수, 원한, 정복 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일렁인다. 흰고래에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순간, 파멸의 파도가 덮친다. 인간의 위대함으로 자연의 궁극적 진리를 밝혀내겠다는 에이해브 선장의 헛된 욕망과 과신과 정념이 얼마나 큰 파국을 초래하는지 허먼 멜빌은 장대하면서도 생생한 문체로 그려냈다.
멜빌에게 의 영감을 준 포경선 에식스호 조난 사건 실화를 다룬 영화 의 일등항해사 오언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가 바로 에이해브 선장 캐릭터의 원형이다. 그는 선장을 꿈꿨지만 계급의 벽에 막혀 일등항해사에 머물렀다. 에식스호에 고래기름을 가득 실어오면 선장을 시켜주겠다는 선주들의 약속을 받아낸 체이스는 선장이 되기 위해 의욕적으로 향유고래를 찾았다. 그에게 고래는 탐욕의 표적이었고 출세의 발판이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1820년 11월20일 거대한 향유고래에 맞서 싸우다 에식스호를 잃고 결국 표류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론 하워드 감독은 낸터킷 항구의 출항에서부터 고래와의 사투와 망망대해의 조난을 거쳐 처참한 몰골의 귀향에 이르기까지 흡사 해양 역사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실감나게 담아냈다.
영화의 원작인 너새니얼 필브릭의 논픽션 에 따르면, 체이스는 에식스호를 박살낸 고래가 “계산된 단호한 악의를 보였다”고 기록했다. 멜빌은 체이스의 실화를 접하고 에이해브 선장을 “정신적인 심연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한 인물로 재구성”했다. 오언 체이스와 에이해브 선장, 그리고 의 이치로 히코는 모두 상대를 괴물로 호명함으로써 스스로 괴물이 되는 인물이다.
일찍이 프리드리히 니체가 에서 간파하지 않았던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너무 오래도록 들여다본다면 곧 그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영화에서 오언 체이스는 기약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순간 고래에 대한 맹목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닫는다. 올해 61살의 노장이 된 론 하워드 감독은 극 후반부에 원작에 없는 장면을 넣었다. 역사 속 오언 체이스는 깨닫지 못했지만, 영화 속 오언 체이스는 자신 안에 잠복해 있는 괴물의 실체를 인식했다. 에식스호에서 고래 사냥에 열을 올릴 때 느끼지 못했던 것을 작은 보트에 의지한 채 바다 위를 표류하면서 알게 됐다. 그에게 표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삶을 재검토하는 시간이었다. 광대한 바다 한가운데에 내던져졌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었던가를 묻는다.
겨울 초입 극장가에 나타난 두 마리 흰고래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대상에게 던졌던 작살이 실은 내 안의 괴물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에이해브 선장처럼, 그 작살에 이끌려 더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지 않은가.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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