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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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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때? 아직도 내 생각 하니?

전 세대 흡수하는 괴물 같은 목소리의 귀환, 과거와의 화해 노래한 아델의 새 앨범 <25>
등록 2015-12-03 22:08 수정 2020-05-03 04:28
왼쪽부터 Kang&Music 제공, AP 연합뉴스

왼쪽부터 Kang&Music 제공, AP 연합뉴스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서구에서 이맘때는 대목이다. 선물 쇼핑이 본격화되고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명절을 맞아 모여든다. 그러다보니 낯익은 얼굴이 낯설게 만나기에도 딱 좋은 세팅이 마련된다.

“네 모습은 영화 같고/ 네 목소리는 노래 같아/ 맙소사, 이러고 있자니/ 꼭 우리가 젊었을 때 같잖아”

고향에 돌아와 동네 파티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의 반가움을 자아낸 누군가를 멀리서 지켜보며 ‘내’가 말한다. 네가 여기 나타날 줄은 몰랐다고. 네가 여기 온다고 말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네가 나를 떠날 때 분명 외국으로 간다고 했는데, 난 그런 줄만 알았는데. 하지만 이런 당혹스런 조우에 대해 ‘공포를 맞닥뜨린 기분’이라며 두려워하는 한편으로, ‘나’는 또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넌 지금도 영화처럼 생겼고, 목소리도 여전히 노래 같구나.’

“지금 이 순간의 너를 사진으로 남겨둘래/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 된 게/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때 우린 나이 드는 게 슬펐고 그래서 불안했지/ 정말 화가 나, 지금도 난 나이를 먹어가고 그래서 무모해져/ 영화에서 꼭 그랬던 것처럼/ 노래에서 꼭 그랬던 것처럼”

아델(Adele)의 4년 만의 새 앨범 가 목하 차트를 허리케인처럼 강타하며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이 줄지어 들린다. 사실 (Rolling In The Deep) 등을 낳았던 괴물 같은 전작 앨범 에 비하면 솔(Soul)보다 팝의 비중이 꽤 높아져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한 예단이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밋밋하고 평면적인 팝송이라 해도 3차원(3D) 입체 굴곡의 최강 볼륨으로 환골탈태시킬 수 있는 아델의 ‘목소리’가 이 앨범에 있다는 것을.

그 무적의 목소리로 에서 그녀가 다루는 것은 노스탤지어다. 혹은 과거와의 화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녀를 제일 처음 스타덤에 올린 (Chasing Pavements)부터 , (Someone Like You) 등까지 알려진 노래 대부분이 실연이라는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실어냈던 걸 생각하면 이제 화해가 필요할 때도 됐다. 그런데 아직 서른도 안 된 여자가(현재 27살로서 는 자신의 25살을 돌아본 것) 노스탤지어를 다룬다는 건 또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녀는 혹시 나이 든 자신을 연기해 보이려는 것일까.

만약 이것이 연기라면, 사기다. (요즘 아이들 말로 ‘사기캐’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가진 ‘보편’의 감각, 누가 들어도 자신의 처지를 대입할 수 있게 만드는 감응력이 정말 뛰어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앞에서 인용한 노래는 이번 앨범에 실린 (When We Were Young)으로, (아마도) 앨범에서 가장 느꺼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트랙일 것이다. 그녀가 소환하는 과거가 그녀만의 것이 아니며 20대의 과거라 해서 얄팍한 것도 아니란 것을, 그리고 아무리 낯설고 괴로운 과거라도 그것을 완전히 폐기처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곡이다. 노래 속 ‘나’는, 비록 한순간일지라도, 과거가 현재를 블랙홀처럼 단숨에 빨아들이는 걸 목격한다. 그리고 과거(‘우리가 젊었을 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아직 다 정리되지 않았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녀는 묻는다. ‘나’는 그러한데, 넌 어떠냐고. 아직도 내 생각 하느냐고.

성문영 팝칼럼니스트*성문영 팝칼럼니스트의 해외음악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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