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안톤 코르베인(Anton Corbijn)은 1990년대에 유투(U2),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너바나(Nirvana) 같은 유명 그룹들의 전성기를 사진과 뮤직비디오에 담으며 명성을 쌓은 사람이다. 그랬던 그도 출발은 록 음악에 대한 애정 하나만 달랑 믿고 혈혈단신 영국으로 건너온 풋내기 10대에 불과했다. 그렇게 도영한 지 2주 만에 그는 자신의 우상 밴드 중 하나를 만나 부푼 마음으로 촬영 세션을 시작하는데, 그 밴드가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이었다.
조이 디비전은 펑크(punk)의 광풍이 굵고 짧게 몰아친 직후에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됐다. 시대 조류를 반 박자 빠르게 치고 나온 사뭇 어둡고 철학적인 자태로 인디 신에서 일찍부터 열성적인 마니아층을 몰고 다녔다. 특히 보컬리스트 이언 커티스(Ian Curtis)는 밴드를 대표하는 캐릭터이자 카리스마여서 또래 혹은 연하의 남자 팬들 중에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많았다. 그러나 밴드가 상승세를 타며 두 번째 앨범 발표와 첫 미국 투어를 목전에 뒀던 1980년에 커티스가 스물셋의 나이로 자살한다. 생전에 그가 간질과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이 이 우울한 신화에 제대로 정점을 찍어주었다.
그룹 뉴 오더(New Order)는 조이 디비전의 잔해에서 탄생한 밴드다. 유대가 끈끈했던 조이 디비전 멤버들은 라인업에 한 명이라도 변동이 생길 경우 밴드명을 쓰지 않기로 한 평소 약속대로, 커티스의 죽음 뒤 뉴 오더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건반을 다룰 줄 알던 드러머의 여자친구로 멤버를 충원하면서 아예 사운드도 바꿨다. 롱코트를 걸치고 니체를 읊던 이언 커티스의 조이 디비전 시절은 가고 바야흐로 포스트 펑크 록 비트를 하우스 리듬과 이종교배하는 ‘새 질서’가 도래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두 밴드명 모두 일각의 지적과는 달리 나치즘·파시즘 어디와도 무관하다고 당사자들이 밝히고 있다.)
안톤 코르베인이 2007년 자신의 영화감독 데뷔작으로 조이 디비전·이언 커티스의 전기영화인 (Control)을 선택하면서 왜 흑백 필름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 시절과 특히 조이 디비전에 대한 저의 기억이 전부 흑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찍힌 사진, 그들의 앨범 이미지, 그들이 입었던 옷, 지금 보면 모두 흑백이거나 흑백에 가깝거든요.” 그런 그들의 사진에는 코르베인이 찍은 제일 유명한 사진(런던 지하철 역사에서 혼자 뒤돌아보는 커티스를 포함한 조이 디비전 멤버들을 포착한)도 포함된다. 그의 올해 감독 작품인 제임스 딘의 전기영화 (Life)의 성격에서 보듯, 흑백사진은 사진작가 시절 코르베인 자신의 역량이 제일 강력하게 발휘된 분야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 나온 뉴 오더의 신보
(Music Complete)는 여러모로 이들이 조이 디비전의 그 숨 막히는 흑백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하는 앨범이다. 몬드리안 추상화의 변주 같은 대담한 원색의 앨범 표지가 그러하고, 무슨 무도병 도진 것 같은 미친 리듬이 그러하다.
원년 멤버들의 나이가 다들 ‘낼모레 환갑’인 걸 생각하면 이야말로 “저세상에서 데리러 오거든 춤추느라 못 간다고 전해라”고 해야 할 지경의 활력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그루브가 이토록 참회의 빛 하나 없는 형형한 빛을 내뿜는다는 게 혹시 조이 디비전의 엄숙한 제단 앞에선 불경스러워 보일까? 하지만 ‘죽음의 무도’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죽음이 아닌 “사랑이 우릴 갈라놓을 것”이라 노래하며 무대에서 발작 같은 춤을 췄던 이언 커티스라면 친구들의 이 호된 140bpm 댄스 비트가 결코 자신에 대한 배신이 아님을 이해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앨범은 조이 디비전의 가장 멋들어진 유산일지도 모른다.
성문영 팝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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