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메이든의 새 앨범 (Book Of Souls)는 1970년대부터 활동한 경력 40년 밴드의 16집이자, 밴드의 첫 번째 두 장짜리 스튜디오 더블앨범이고(총 재생 시간 1시간32분11초), 모두 환갑 전후인 멤버들 중 일부가 근래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맞닥뜨린 체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여기까지만 쓰면 왠지 두 손 모으고 엄숙히 예를 갖춰야 할 것 같지만 아직 이들에겐 올드 스쿨 헤비메탈 밴드 특유의 치기 어린 천진함이 남아 있어, 그런 예의 따위 넣어두고 “그냥 편하게 형이라 생각하라”며 초장부터 우리 옆에 바짝 다가앉을 기세다. 그러면서 은근 압박을 가할지도. “그래, 앨범은 끝까지 들어봤고?”
끝까지 듣다보면, 그 끝에서 (Empire Of The Clouds)란 곡을 만나게 된다. 18분짜리다. 아이언 메이든은 1980년대 헤비메탈 그룹들 중에서도 대곡 취향이 남달라, 그런 길고 복잡한 곡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베이스 주자였던 스티브 해리스가 그 중심에 있었던 것에 비해, 이 곡에서는 단연코 보컬리스트인 브루스 디킨슨이 주인공이다. 그가 모든 부분을 작곡하고, 작사하고, 피아노를 치고, 편곡 및 프로듀스에도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악성 종양을 치료하느라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앨범 전체적으로 활력을 내뿜던 그가, 이 피날레 곡에서는 감정을 다잡고 엄청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것은 그가 언제고 꼭 하고 싶었던, 영국의 비행선 R101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
R101호는 R100과 함께 영국에서 국가 차원으로 계획하고 추진한 비행선 두 대 중 하나였다. R101은 1929년에 완성돼 시험비행을 거친 뒤 1930년에 해외 처녀비행을 하게 되는데, 영국을 출발해서 이집트를 경유해 최종적으로 현 파키스탄 카라치에 이르는 경로였다. 그러나 프랑스 영토에 이르러 악천후와 엔진 이상으로 파리 근교 북부에 추락, 비행선 탑승 인원과 지상 인원을 포함해 총 48명의 사망자를 냈다. 오직 6명만이 살아남았다. 추락 당시 승무원의 경고 외침 “제군들, 추락한다!”(We’re down, lads)가 디킨슨의 가사에 그대로 나오는데, 이야기 전개상 절정에 해당하는 이 추락 장면의 묘사는 웬만한 뉴스 보도 못지않게 특히 집요하고 상세하며, 일견 시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디킨슨이 파괴와 죽음에 열광해서가 아니라, 아마 자신이 파일럿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다양한 관심사들 중 하나가 비행기 조종이라, 그는 실제 자격증을 땄고, 아이언 메이든의 투어 때 전세기를 직접 몰며, 다른 고객의 의뢰를 받아 비행도 하고, 자신의 비행학교를 세울 정도로 이미 취미 수준을 넘어섰다. 그는 단순히 재난의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동료 파일럿으로서의 깊은 동정심으로, 또 생을 위협했던 최근의 투병 경험을 통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숙고해보는 계기 또한 더해져, 이 사건을 꼭 다루고 싶었던 것 같다. 1930년 당시 R101의 출발지였던 영국 카딩턴을 지켜보며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제는 우리가 우주도 갔다 오는/ 그런 엄청난 일까지 할 수 있는 세상/ 꿈꾸는 사람은 죽어도/ 꿈은 영원히 죽지 않는 법”(The dreamers may die, but the dreams live on).
결국 이것은 추락하는 이카로스, 인간의 필멸성과 그럼에도 그가 꿈꾸는 불멸성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언 메이든의 과거 명곡 (Rime Of The Ancient Mariner·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늙은 선원의 노래’를 가사로 썼다)에 비해 악곡 면에선 어떨지 몰라도 그 스케일과 철학에서는 거의 비등하게 다가온다. 이 정도면 레드 제플린이 저 유명한 그룹명과 1집 앨범 이미지를 모두 가져온 힌덴부르크 비행선 사고에 필적하는 상징성을, 잔뼈 굵은 비행기 ‘덕후’ 브루스 디킨슨이 자신도 모르게 R101에 부여한 게 아닐까 싶다.
성문영 팝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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