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낯익은 누군가를 마주치게 된다. 동네 도서관에서 들췄던 책 어느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을 발견했을 때도 그런 경우였다.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때에도 하늘의 춤을 추었다/ 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
책에 따르면 이 인용구들은 모두 이라는, 나로선 생소한 기독교 찬송가의 가사였다. 여타 ‘거룩한’ 찬송들과는 달리 예수를 이토록 열정적인 댄서로 비유한 노랫말(무려 5절까지 이어지며 예수의 탄생부터 죽음, 부활까지를 온통 춤으로 점철한)이 무척 이례적으로 다가왔고, 이 가사 덕분에 내 머릿속 디제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한 노래를 끊김 없이 재생했다. 이 낯선 찬송가가 만나게 해준 낯익은 인물은 티렉스(T. Rex)의 마크 볼런. 그리고 연속 재생된 노래는 그의 (Cosmic Dancer)다.
탄광촌의 가난한 소년이 발레의 꿈을 씩씩하게 꾸는 영화 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빌리가 형의 티렉스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고 침대 위에서 마음껏 뛰고 구르며 슬로모션의 춤사위를 펼칠 때 꿈결처럼 이 곡이 흐른다.
그 음반 (Electric Warrior·1971·사진)가 음악계에서 워낙 유명하고 또 중요한 음반이기도 해서 사운드트랙에 끼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중에서 하필 이 곡을 영화의 비중 있는 인트로로 선택한 안목은 퍽 감각적이었다.
원문을 보면 ‘자궁’에서 나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각운을 야무지게 맞추며 노래 속 주인공은 춤을 추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cosmic) 춤꾼이다. 표현만 봐선 무슨 14세기 유럽의 무도병 환자인 양 격렬한 박자와 리듬 속에 목숨이 다할 것처럼 들리지만, 곡은 이상하게 서정적이고 심지어 자성적이기까지 하다. 이 서정적인 멜랑콜리 덕분에 의 저 장면에서도 뭉클함이 듬뿍 묻어났던 바다. 그건 혹시 노래가 이런 일격을 품고 있어서일까.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다수의 티렉스 곡들과 마찬가지로 도 여러 해석이 오갔다. (여기엔 큰 고민 없이 각운만 맞춘 듯한 부분들 탓도 있다.) 한 가지 참고할 만한 실마리는 마크 볼런 자신이 라이브에서 이 곡이 ‘환생’에 대한 거라고 언급한 건데, 그것만으로도 일단 이 춤이 단순한 육체적 몸짓만을 가리키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여기서의 춤은 삶과 완전히 합일된 상태로, 살아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사는 게 춤인 것이다. 예수가 ‘춤의 왕’인 이유 그대로 우리도 (종교에 상관없이) ‘코즈믹 댄서’들인 것이다.
마크 볼런은 이 곡을 발표하고 6년 뒤, 서른 살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티렉스가 화려한 의상과 분장, 시끌벅적한 로큰롤 사운드로 대변되는 글램록(Glam Rock)의 대표주자였음에도 그에겐 항상 어딘가 우울한 몽상가의 아우라가 있었는데, 이른 죽음은 그 아우라에 신비를 조금 더 보탰을 것이다. 그룹 벨앤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의 초기 둥지였던 음반 회사 집스터(Jeepster)부터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에 이르기까지 마크 볼런 곡들의 유산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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