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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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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완전 까묵’한 그대!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은 한 시절 죽고 못 살다가도 까맣게 사라져버린 기억, 그 행복한 기억의 흔적이 지금 나의 기쁨의 원천
등록 2015-07-24 17:01 수정 2020-05-03 04:28
*에 관한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돼 있습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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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맞아 나만의 상반기 결산을 해보자면, 은 를 제치고 최고의 영화 자리에 오를 것 같다. 머릿속 여러 가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 은 한때 사고 활동과 무의식에 관심 있어 몇 년간 읽었던 여러 권의 책을 압축하는 정말 반짝이는 작품이었다. 굳게 닫힌 무의식 창고 안의 기괴한 잡동사니와, 알 수 없는 뭔가의 기준으로 구분돼 버려지고 살려지는 기억들, 또 경험이라는 기억들이 모여 형성하는 그 사람의 성격? 게다가 기억이란 것 역시 다름 아닌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최신 이론까지 망라하는 바람에, 기다렸다 이거 한 편 보면 될 걸 괜히 책만 힘들게 잔뜩 읽었나 싶을 정도였다. 슬픔이랑 기쁨이(조이), 그리고 무엇보다 빙봉에 대한 내 감정과 깨달음은 또 하나 기억의 방을 차지할 것만 같다.

의 헤로인은 물론 슬픔이다. 시종 웃는 얼굴이긴 하지만 초장부터 줄곧 대척점에 있는 조이는 슬픔이와 사사건건 붙는다. “슬픔이는 이거 저거 만져도 안 되고, 이 금 밖에 나오면 안 돼. 네가 자꾸 만지니까 다 슬픈 색으로 물들잖아!” 조이는 갸륵하긴 하지만 거의 독재자다. 반면 슬픔이는 소극적이고 약자인 것 같지만 끈질기게 호시탐탐 중앙무대를 노리며 주변부터 조금씩 작업해 영토를 늘린다. 그러면서 상처를 진정 직시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며 문제 해결을 자기의 방식으로 모색한다. 은 이 천덕꾸러기 슬픔이를 복권시켜주고 명예를 찾아준다. 을 보며 우는 사람은 어른들인데, 대개 자기의 고질적 감정인 슬픔과 화해해서다. 내가 내 슬픔을 윽박지르고 짓밟아버리고 모른 척했구나. 그래서 슬픔이 계속 찾아왔던 거였어.

그런데 슬픔이는 환영은 못 받을지언정 그 존재감 하나는 확실하다. 오히려 너무 강력해서 배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근데 빙봉의 존재는 다르다. 이건 오히려 본인들은 잘 모른다. 철저히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을 보며 내게 진정 놀랍고 큰 감명을 준 것은 빙봉이었다. 한때 죽고 못 살았으나 이제는 그런 것이 있었다는 사실마저 아예 망각돼버린 존재. 라일리는 나중에 우연히, 어쩌다 남아 있는 어린 시절 그림에서 빙봉을 봐도 그게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성장을 위해서 어떤 행복한 기억들은 무의식에조차 자리하지 못하고 까맣게 사라져버리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한때 나와 함께 작용하여 빚은 결과는 오롯이 남아 이후에도 내 판단과 저력을 이룬다는 것을 빙봉의 영웅적 파국을 보며 느꼈다. 기쁨이라는 감정이, 즉 조이가, 결국 사고의 사령탑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빙봉이 기둥이 되어 만들어준 행복한 기억이, 그래서 형성된 라일리의 강인한 내면이 조이를 쳐올려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무기계약직 전환을 한 달 남기고 말이 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어온 참으로 흔한 얘기지만 내가 직접 맞아보니 청천 하늘에 날벼락 같았던 사건을 겪었다. 40대 아줌마가 이 나이에 또 어디서 새로운 취직을 할 수 있을까? 자아실현을 위한 우아한 취직이 아니라 건강보험증의 내 이름 밑에 달린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생계형 노동인데. 충격과 분노와 절망과 슬픔과 패닉이 온통 한꺼번에 뭉뚱그려져 요동치는 순간에도 몸은 폭발하지 않고 결국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억세게 좋은 운도 있지만, 나는 지금 기억할 수도 없으되 분명히 존재했었고 기쁨과 행복의 기억을 흔적으로 남긴 채 사라져버린 내 어린 시절 빙봉들의 힘이었을 거란 데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의 빙봉과 내 어린 시절을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졌다.

오은하 직장인·영화진흥위원회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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