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직장인에게 일요일 저녁 시간은 ‘월요일 전야’(의 피로와 긴장감을 주는 시간)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미리 많이 웃어둔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절전 모드에서 충전하게 된다. 나도 보통의 직장인이지만 매주 일요일 저녁에 세미나 모임을 갖는다. ‘세미나’가 피로를 부르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임은 나에게 홍삼 진액과 같다.
어차피 매일 모이니 뭐라도 해보자!
얼마나 좋은지 ‘더 많은 사람이 알수록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 모임은 동네 친구들의 모임이다. 주민 몇 명이 오가면서 낯을 익히며 친구가 되었고, 친구들의 오랜 친구들도 동네로 모여들면서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도심에서 동네 친구는 종종 가족보다 더 친밀하고 법망보다 더 든든한 존재가 되어준다. (여행을 갔을 때 반려동물을 믿고 맡길 수 있고, 갑자기 아플 때 가장 빨리 달려와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인 것이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매일 만나던 동네 친구들은 어느 날, ‘어차피 매일 모이니 뭐라도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소소한 세미나를 기획하게 된다. 2013년 여름의 일이다. 동네 친구의 술집 서울 누하동 ‘바르셀로나’에서 일요일 저녁 영업을 시작하기 전 시간을 활용해 모인 뒤,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아는 소소한 지식을 강연하는 것이다. 이름 짓기를 ‘얕은 지식’ 세미나.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공부가 될까?’ 이 모임이 좋은 두 번째 이유다. 공부가 된다. 습자지처럼, 접시물처럼 얕게 나누자는 것이 모토이지만 얕은 듯 깊고, 깊지만 부담이 없다. 관심이 깊은 주제를 가져와서 이야기하는 친구의 모습은 늘 멋지고 새롭다. 새삼 존경심이 생기기도 하고,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생닭으로 배우는 육류가공법, 눈썹과 인상학(사진), 조선의 도성 계획, 정원의 역사, 복숭아 농사 제대로 짓기, 클래식 음악을 더 재미있게 즐기는 법 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를 접했다.
자신을 매료시킨 것에 대해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해줄 때면 우리는 모두 ‘취미 영업’을 당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모임을 해산한 뒤에는 140자에 흥미진진한 즐거움을 잔뜩 우겨넣은 리뷰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기곤 한다. 그러면 그 흥에 홀려 아나운서, 음악치료사, 만화가, 요리연구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먼저 흥미를 가지고 특강을 자청하기도 했다!
놀아도 일해도 시너지 내는친구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서촌과 홍익대 앞에서 술집, 카페, 옷집을 운영하는 친구도 있고, 디자이너, 브랜딩 전문가, 카피라이터, 요리사, 번역가, 건축가, 매거진 에디터, 한의사도 있다. 이 친구들이 거쳐온 직업이나 전공, 다양한 취미를 생각하면 꽉 채운 2년 동안 나누었던 지식보다 앞으로 나눌 것이 더 기대된다.
우리는 이렇게 ‘척 하면 척’ 하고 더 잘 통하는 사이가 되어서 더 잘 놀기도 하고 일도 더 잘하게 되었다. 나도 모임에서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회사 일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브랜딩이나 디자인, 인테리어를 하는 친구들은 쿵작쿵작 협업해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가 함께 놀아도, 일을 해도, 시너지를 내는 두터운 관계가 되도록 발전시켜준 것은 바로 ‘얕은 지식’ 세미나다. 어차피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면 세미나 모임을 시작해보길!
윤사라 CJ E&M 트렌드 애널리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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