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은 그들의 특징과 속성이 돼버렸다. 그들은 야만을 마음껏 누렸다. 야만은 곧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통치자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성향은 곧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이자 거부였다.”(이븐 할둔)
망한 나라를 잊지 못한 사람들이 ‘두문동’에 모여살았다. 새 나라의 임금이 어르고 또 달랬지만 그들은 ‘두문불출’했다. 성난 임금이 불을 놓아 그들 모두를 죽였다. ‘두문동 72현’의 전설이다. 제임스 캠벨 스콧 미국 예일대 교수(정치학)가 2009년 내놓은 노작 (삼천리 펴냄)을 보면서, 문득 ‘두문동’을 떠올렸다. 객쩍다.
‘조미아’는 네덜란드 사학자 빌렘 판 스헨델이 2002년 만들어낸 신조어다. ‘동떨어진 고지대(Zo)에 사는 사람들(Mi)’ 혹은 그들이 사는 땅을 뜻한다. 그 땅은 베트남 중부 고원에서 시작해 캄보디아·라오스·타이·버마 등 대륙 동남아시아 5개국을 아우른다. 또 중국의 4개 지방 일부를 가로질러, 인도 동북부까지 뻗어 있다. 약 250만km²에 이르는 드넓은 땅덩어리가 해발 300m 이상의 고지대다. 종족과 언어가 제각각인 1억 명가량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단다.
지은이는 ‘조미아’가 “지구촌에서 국민국가에 흡수되지 않은, 흡수되기를 거부한 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이렇게 썼다. “국가 만들기는 수탈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으로서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산악 사회는 의도적으로 바깥에 자리잡고,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을 다양하게 형성하면서, 여러 생계 방식을 마음대로 활용하며, 언제든 쪼개지고 흩어지면서, 주저하지 않고 저항적인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면서, 국가를 만드는 자들에게나 식민 관료들에게 끔찍한 악몽처럼 다가갔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갈린다. 전반부(2~4장)에선 동남아시아 국가의 강압적인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를 살핀다. 조미아를 만들어낸 ‘배후’다. 후반부(5~8장)는 국가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지 경제·사회·문화를 중심으로 풀어냈다. 옮긴이 이상국 연세대 교수(인류학)는 “패배적으로 바라볼 법한, 국가로부터 달아나는 소수종족의 탈주와 도피 문화가 실은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전략으로 재탄생했다”고 평했다.
왜 지금 ‘조미아’에 주목하는가? 지은이는 존 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치사상)의 말을 따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망적으로 자신의 안위와 번영을 지배자들의 솜씨와 선의에 맡기게 됐다”고 짚는다. 지은이는 이렇게 지적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우리 자유의 미래는 국가라는 ‘괴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길들이는 힘겨운 작업에 달려 있다. 북대서양의 사유재산 모델과 국민국가 모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사유재산에 의해 생겨난 부와 권력의 엄청난 불평등에 맞서서, 그리고 국민국가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도 깊숙이 파고든 규율에 맞서 싸우고 있다. …국가라는 괴물을 길들이기 위해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허약한, 단 하나의 도구는 또 다른 북대서양 모델인 대의제 민주주의다.”
정인환 영상센터 기자 inhwa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검찰, ‘불법 합병’ 이재용 2심도 징역 5년·벌금 5억원 구형
수도권 ‘첫눈’ 오는 수요일…전국 최대 15㎝ 쌓인다
친자 인정한 정우성…29일 청룡영화제 예정대로 참석
[영상] 이재명 ‘위증교사’ 무죄…법원 “통상적 요청과 다르지 않아”
[단독] 김건희 초대장 700명…정권 출범부터 잠복한 문제의 ‘여사 라인’
[단독] 북파공작에 납치돼 남한서 간첩활동…법원 “국가가 18억 배상”
[영상] ‘무죄’ 환호 이재명 지지자들 “검찰의 억지 기소, 국민이 알게 될 것”
[영상] ‘이재명 무죄’에 지지자들 “한시름 놓았다”…보수단체와 신경전도
[영상] ‘위증교사 무죄’ 이재명 “죽이는 정치보다 공존하는 정치 하자”
유승민 “일본에 사도광산 뒤통수…윤, 사과·외교장관 문책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