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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중성화된 수컷 고양이에게 “혹시 임신했어요”라니, 살이라고는 찌워만 봤지 빼본 적은 없는데 어떻게 빼야 하지?
등록 2015-06-12 22:04 수정 2020-05-03 04:28

내 이름은 만세, ‘살찐’ 고양이다.

신소윤 기자

신소윤 기자

문밖에서 거칠게 테이프를 찍찍 뜯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인은 손에 쥐고 있던 구겨진 전단지들을 식탁 위에 대충 부려놓았다. 아, 저러니 식탁 위에 자꾸만 잡동사니가 쌓이지. 가시는 걸음걸음 집 안을 어지르면서 다니는 주인의 뒤통수에 대고 구시렁댔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나오는 한숨을 폭폭 눌러가며 내가 정리할 수밖에.

식탁에 뛰어올라서 구겨진 종잇조각들을 재활용 상자에 넣기 좋도록 깨끗하게 펼쳤다. 늘 문 앞에 붙어 있는 학원 전단지, 학습지 광고이겠거니 했는데 잉? 귀가 쫑긋,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이 문구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월드 몸짱 미란이도 한다는 그것! 자세 교정, 몸매 보정, 요즘 가장 핫한 운동 플라잉 요가가 ○○동에 상륙했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12kg의 지방이 남아 있습니다. ○○헬스장의 새 작품 .” “아직도 힘들게 땀 흘리며 다이어트 중인가요? 폴댄스로 우아하고 섹시하게 S라인의 주인공이 되세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이 나를 보고 가장 자주 하는 말 세 가지가 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사람. “고양이가 엄청 뚱뚱하네요.” 좀더 디테일을 보태어 말하는 사람. “엄마야, 얼굴만 봤을 땐 모르겠더니 일어서 움직이니 엄청 뚱뚱하네요.” 그리고 이것은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아주 오래된 농담. “고양이 혹시 임신했어요?”

제발 좀 이 사람들아, 나는 임신할 수 없는 중성화된 수컷 고양이라고. 떡이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도 있다는 숙취 해소 음료 광고가 있었다. 흥, 고양이는 술을 먹지 않고도 떡이 될 수도 있다. 집주인은 늘 내가 방에 늘어져 있으면 거대한 찰떡이 퍼져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이런 말들을 이제 그만 듣고 싶다.

마음 독하게 먹고 올여름에는 빼고 만다. 무엇을? 뭐긴 뭐겠나, 살을. 그런데 평생 살이라고는 찌워만 봤지 빼본 적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플라잉 요가 학원을 등록할까, 폴댄스는 우리 고양이에겐 너무 쉬워 보이던데 살이 빠지려나. 그나저나 주인이 학원비를 대주기는 할까.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우선 집주인 내외와 제리 형님의 다이어트 사례를 살펴보았다. 우선 제리 형님, 이 형도 몸무게만큼은 좀 ‘짱’ 먹는다. 동물병원에서 동물이나 사람이나 살을 빼려면 일단 덜 먹어야 한다고 해서 사료량을 확 줄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눈물이. 성질이 더러워져서 어찌나 나를 구박하는지. 호시탐탐 내 밥을 노리고 늘 먹을 것을 찾아 거실 곳곳에 코를 박고 다니는 모습이 한 마리 하이에나처럼 보였다. 결국 다이어트에 실패해서 폭발하는 식욕으로 요요가 온 제리 형. 아아 형, 식탐이 강한 우리에게 이건 아닌 것 같아, 그치?

두 번째, 남자 집주인.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달리기를 사랑하는 이 남자. 하지만 무라카미처럼 맥주도 좋아하는 것 같다. 맥주의 단짝 치킨까지 사랑하는 이 남자. 그러니 다이어트에 돌입하면 오히려 늘 살이 찌는 이 남자. 그 남자의 부인이라고 뭐 다른가. 건강한 식단과 운동을 생활화하겠다며 늘 마음의 준비만 하는 이분. 마음먹고 계획을 세우다 벌써 지쳐버리는 이분. 실패 없는 다이어트를 위해 휴대전화에 다이어트 앱을 여러 개 깔고 운동복과 운동화부터 사러 나서는 이분. 내일부터라고 다짐하면서 늘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보내는 이분. 이러니 누굴 보고 배워. 모르겠다. 일단 세상 모든 다이어터들의 다짐대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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