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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둑들>이 궁금하다

<한니발>의 렉터, <고담>의 고든… 영화에서 출발해 드라마로 옮겨간 캐릭터들의 또 다른 놀이
등록 2015-06-12 00:22 수정 2020-05-03 04:28

의사 선생님이 돌아오신단다. 셜록의 얼음 두뇌는 튀겨먹고, 하우스의 깐죽거리는 혀는 분자 요리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남자. 시즌3로 다시 찾아온 이다. 이 드라마를 어느 선반에 분류해둘까? 고민하던 나는 와 함께 세워본다. 그리고 ‘역주행’이라는 팻말을 붙인다. <x> 에서 볼 수 있듯이, 보통은 TV 드라마가 먼저다. 거기에서 확실한 인기를 얻은 뒤 극장판 영화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경로다. 그런데 이들은 반대다. 영화를 통해 지명도를 먼저 얻었고, 이후에 TV 드라마로 번식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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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쪽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면 의 10대 시절을 그린 이 아닐까? 세계의 본진인 슈퍼히어로 만화의 세계에서는 이런 식의 전개가 낯설지 않다. 만화 캐릭터의 판권을 가진 출판사가 여러 스토리 작가와 만화가들을 동원해 다양한 줄기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인기를 얻은 조연이나 악한을 가지고 곁가지를 뻗어나가는 경우도 많다. 수십 년 동안 시리즈가 이어지다보니, 시대적 배경이나 세부 설정을 재조정하는 리부트도 적지 않다.
TV 드라마는 이만큼 자유롭지는 않다.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기에 확실한 성공의 공식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가장 인기 있는 방식은 역시 이 잘 보여준다. 이 시리즈의 전반부를 채웠던 이야기, 외계에서 날아온 초능력 소년의 풋풋한 성장기- 이른바 ‘비기닝’의 테마다. 은 영화 에서 감옥에 갇혀 있는 렉터 박사가 자유인이었을 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박사가 언젠가 자신을 체포하게 될 FBI 프로파일러 윌 그레이엄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재미가 드라마의 핵심이다. 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의 과거다. 살인마 노먼 베이츠가 어떻게 어머니의 시체를 보필하며 모텔을 운영하게 되었는지를 캐묻고 있다.
때론 영화판과는 다른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은 의 브루스 웨인이 부모를 잃은 직후, 신참 형사 제임스 고든이 뒤틀린 도시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좌충우돌하던 때를 그린 이야기다. 그러니까 고든 형사가 주인공인 셈인데, 어떤 팬들은 이 드라마를 ‘펭귄 비기닝’이라고도 부른다. 어머니의 과보호로 주눅 든 인생을 살다가, 영리한 머리와 생존 감각으로 어둠의 실세가 되어가는 펭귄- 오스왈드의 변화가 드라마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리들러가 법의학자로 생활하고 있다든지, 어린 캣우먼이 웨인 부부 살인사건의 목격자라든지 하는 깨알 같은 재미가 팬들을 흥분시킨다.
이들 드라마는 분명 팬픽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캐릭터들을 가지고 또 다른 인형놀이를 즐겨보는 거다. 또한 배우들로서도 탐나는 도전의 분야다. 누가 감히 앤서니 홉킨스가 만들어낸 렉터 박사에 도전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매즈 미켈슨이 선보이는 냉혈 미중년의 매력은 여성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놀이는 계속될 예정이다. 등의 드라마판이 머지않아 찾아온단다.
국내 영화 중에서 드라마 확장판으로 만들어볼 만한 건 없을까? 최동훈 감독의 이 제일 먼저 눈에 뜨인다. 워낙 다양한 캐릭터들의 종합선물세트이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메인으로 삼아 새로운 사건들을 펼쳐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궁금증이었던, 마카오박, 팹시, 뽀빠이의 4년 전 사건을 천천히 풀어주는 건 어떨까? 아니면 불같은 사랑으로 중년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첸과 씹던껌은 어떤가? 두 사람의 젊은 시절부터를 스타일로 천천히 그리면서, 긴 세월 동안의 사랑과 상처를 오밀조밀 펼쳐 보이는 거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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