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을 했다. “돈을 벌어야 되겠다” 싶었다. 형이 양식 주방장이었는데 본 가락이 있어 레스토랑으로 아르바이트를 갔다. 나이는 속였다. 레스토랑에 선생님이 밥 먹으러 오는 바람에 집으로 끌려왔다. 다시 가출을 했다. 좀 멀리로 갔다. 장항으로. 너무 힘들어 주방은 싫었다. 주방보조가 한 명 비어 머리 채우러 들어간 참, 이런 숨길 수 없는 재능이라니. 새우를 손질하라기에 내장을 빼내고 뿔처럼 생긴 꼬리를 잘라냈더니 주방장이 “요것 봐라”며 주방으로 끌고 갔다.
학교에선 포기했다. 오토바이 사고까지 난 뒤 무얼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방송으로 이름을 불러 교무실로 갔다. “처맞을” 생각을 하고 갔는데 ‘청소년소월문학상’에 당선됐다며 선생이 신기해했다.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형의 사업 실패로 길거리에 나앉았다. 그때도 밥 먹여준 곳이 식당이었다. “밥 걱정을 안 해도 되어서” 식당이 좋았다. 쇼윈도 앞에서 김밥을 싸는 분식집에서 ‘시커먼’ 남자가 김밥을 싸고 있으니 인기가 좋았다. 전주 한정식집에서 철질(전 부치기)을 하고 보쌈집에서 고기를 삶았다. 첫 사업은 매일매일 점심 도시락 50인분을 싸는 일이었다. 이를 눈여겨본 케이터링 업체에 스카우트되어 갔다. 식재료들이 그득한 넓은 주방에서 메뉴를 실험해보는 호사를 누렸다. 예전부터 도전정신 하나는 사줄 만했다. 드라마 혹은 만화에 나온 그대로 요리하는 ‘음식 코스프레’를 하곤 했으니.
식당에서만 일한 게 아니다. 반도체 세정제 운반을 하고 트럭을 운전했다. 막노동을 하고 어판장 짐을 날랐다. 몸이 축나면 인쇄소 하는 형이 자리를 봐줬다. 2013년 4월 인쇄소에서 일할 때 주변 밥집 맛이 그를 폭주시켰다. 배를 채우는 행위가 식사라니. 에 ‘독투’(독자투고)를 했다. “진미된장은 숙성을 많이 시켜 된장 색이 검고 콩이 낟알로 들어 있습니다. 발효를 덜해 색이 희고 콩을 완전히 갈아 죽처럼 보이는 신송된장과 값이 좀 비싸지만 맛이 그런대로 좋은 샘표된장을 3 대 2 대 1의 비율로 조합해서 사용합니다. 이 정도 애를 썼다 싶으면 사람들이 맛있다고 합니다.” 글은 단번에 메인 화면으로 옮겨졌고 담당자가 전화해 여러 편을 올릴 것을 종용했다. 그렇게 쌓인 글이 책으로 묶였다().
지난해 3월, “16년 일했으니 1년 놀기로 했다”. (준비물 글을 그대로 옮기면) “민물낚시, 바다 원투낚시, 채집망, 새총, 호미, 야전삽, 정글 낫, 손칼”을 들고 수렵 채취한 것으로만 짠 밥상을 차리는 실험을 하러 자연으로 들어갔다. 진달래를 따먹고 밤을 주웠다. 개울에서 다슬기를 주워 국을 끓였다. 방어를 잡아 구웠다. 감기 기운이 들면 마를 빻아 죽을 끓이고 칡차를 끓여 먹었다. 딱 한 번 자라를 잡아 구워 먹었다. 이 과정은 역시 에 ‘야만인을 기다리며’로 연재했다.
1년 중 한 달을 못 채우고 인가로 내려왔다. 그리고 식당을 열었다. 식탁 하나 없는 배달 전문 돈가스집. 마지막 맛 조절은 어머니가 해주셨다. 어머니는 “내 입에는 짜다”라고 하셨다. 염도를 높이지 않고 재료 맛을 살리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식당 음식이 짜지 않으면 사람들은 쉽게 맛없다고 여긴다. 염도 1.2를 1.05로 낮췄다. 어머니는 항상 옳으니까.
어머니 입에 짠 맛, 염도 낮춰산전수전을 겪고 나서도 아직 전호용씨는 30대 중반(36)이다. 그가 에서 한껏 여유로워진 필력을 펼쳐 보인다. 칼럼 제목 ‘어정밥상 건들잡설’은 어정칠월 건들팔월에서 나온 말이다. 어정어정하며 7월이 가고 건들건들거리다 8월이 가고 동동거리는 9월이 온다. ‘알고나 먹자’ 정확한 지식을 자랑하던 필자가 여유로이 잡설을 포갰다.
전주=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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