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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노년을 알아?

영화 <장수상회>·예능 <꽃보다 할배> 속 노년의 빛과 어둠… 감동 코드와 재미에 가려진 현실과 복지시스템의 부재
등록 2015-04-09 10:45 수정 2020-05-03 04:27
*영화 의 내용이 일부 언급되어 있습니다.

시사회를 보러 간 극장, 영화가 시작되기 전 M보험사의 광고가 상영됐다. 로큰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노인의 모습을 담은 광고는 준비만 잘하면 노년도 즐거운 것이라 말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노년보험 상품은 ‘나이 먹고 아프면 대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공포를 주입하는 식의 메시지를 내세우곤 했는데, 과연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일찍이 대중문화에서 노인들이 이렇게 밝게 그려진 적이 있었던가? 흔히 노인은 생의 끝을 눈앞에 둔 사람들로 그려졌고, 많은 작품이 그 어둠만을 포착했다. 설령 긍정적 면모를 강조하더라도 대체로 그들은 효를 받는 객체나 지혜를 전달해주는 주변인으로 존재했지, 생을 즐기는 주체로 조명되진 않았다.

찰나를 최대한 오래 붙잡아 즐기고 싶은

최근 10여 년 사이, 이야기는 달라도 한참 달라졌다. 평균수명 증가와 출산율 저하로 점점 전체 인구 대비 노령 인구가 증가하는 마당에, 노년의 어두움만을 게으르게 묘사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이들은 생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작은 즐거움조차 더 찬란하고 반짝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극적인 콘트라스트의 효과를 일찌감치 포착한 이들은, 황혼의 절정을 묘사하는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박진표 감독의 기념비적인 데뷔작 (2002)는 생물학적 나이와 무관하게 애정을 불태우는 커플을 그렸고, 강풀의 웹툰 (2007) 또한 영화와 연극, 드라마로 제작되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나영석 PD는 화려한 여행지의 풍광과 삶을 회고하는 노배우들을 배치해 tvN (2013~)를 선보이며 노인층을 주인공으로 세운 대중문화 콘텐츠의 잠재력을 입증했고, 강제규는 로 육체적으로 노화하고 기억이 흐릿해지는 노년에도 사랑이 가능하지 않을까 질문을 던지며 복귀했다.

tvN에서 방영 중인 (왼쪽)과 4월9일 개봉하는 강제규 감독의 영화 는 모두 노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왼쪽부터 tvN 제공·CJ엔터테인먼트 제공

tvN에서 방영 중인 (왼쪽)과 4월9일 개봉하는 강제규 감독의 영화 는 모두 노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왼쪽부터 tvN 제공·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의 전략 역시 노년의 빛과 어둠을 강렬히 대비시키는 것이다. 성칠(박근형)은 혹시 외롭게 죽게 되진 않을까 남몰래 근심하고, 금님(윤여정) 또한 지병으로 연일 쇠약해지지만, 그들은 낙담하는 대신 함께 왈츠를 배우고 놀이공원을 간다. 금님이 성칠과 가고 싶어 하는 곳이 꽃축제장이라는 점은 다분히 상징적인데, 축제를 화려하게 수놓는 꽃들이야말로 이미 만개해질 수순만 남은 꽃들 아닌가. 그 찰나를 최대한 오래 붙잡아 즐기고 싶은 마음은 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만큼은 아니어도 시리즈 또한 노년의 어두움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밝음을 강조한다. 이순재는 앞으로 다시 못 볼 광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적 하나하나를 더 집중해서 바라본다. 신구는 배낭여행에 나선 젊은이들의 도전정신과 젊음을 찬탄하고, 박근형은 평생 함께해온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지의 풍광을 사진으로 남긴다. 백일섭은 더 건강하게 여행에 임하기 위해 체중을 줄이고 운동을 하며 육체의 쇠락에 맞선다.

육체의 쇠락이 윤리적 문제로 비난받고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들은 ‘노화’에 대처하는 과정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나 선의에 의존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에서 두 노인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건 오롯이 성칠의 고용주인 장수(조진웅)와 그 주변 인물들이다. 구청에서 보낸 복지사는 잠시 등장만 했다가 사라진다. 강풀의 가 (비록 주인공 만석의 손녀이긴 하지만) 구청 직원 연아를 등장시켜 국가가 노인들에게 어떤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소극적으로나마 조명했던 것에 비하면 의 이런 묘사는 오히려 퇴보에 가깝다. 또한 비슷한 문제를 지닌다. 냉정하게 읽자면 이 시리즈를 ‘젊은 짐꾼을 대동하고 며칠씩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경제력이 되는 노인들의 이야기’로 읽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여행이 경제적으로 그럴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만 가능하다는 점은 작품이 담고 있는 감동 코드와 재미에 가려 은폐된다. 이렇게 개인의 책임이나 선의에 의존하는 것을 ‘바람직한 노년’으로 그리는 작품이 늘어날수록, 노인 문제를 국가나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보고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작품 내부 혹은 작품이 소비되는 층위에서, 노년의 속성인 ‘노쇠함’이나 ‘오래됨’이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속 동네 사람들은 재개발을 추진하는데, 모두의 열렬한 찬성 속에 오직 성칠 한 사람만 재개발을 반대한다. 재개발 찬성 쪽의 논리는 ‘영어 원어민 교사’라거나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와 단지 내 워터풀장’처럼 부의 증가와 사회적 계급 상승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는 공동체 해체나 원주민 이탈 등 재개발의 어두운 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변화에 반대하는 완고하고 고집 센 노인 대 재개발로 행복한 미래를 누리겠다는 청년 세대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된 줄거리 속에서, 삶을 꾸려온 터전에서 생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성칠의 바람은 그 자체로 공동체에 민폐인 것처럼 묘사된다.

는 작품이 소비되는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과체중과 관절의 노화로 오래 걷기 어려워하는 백일섭이 ‘너무 많이 걷는다’며 투덜거리거나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곤 했던 게 문제였다. 이를 ‘민폐’ 차원으로 받아들인 일부 젊은 시청자들은 인터넷상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다 같이 힘든데 혼자 무책임하게 군다” “힘들면 (이순재·신구·박근형 등의) 형들이 더 힘들지 않겠냐” “만사 귀찮아할 거면 뭐하러 여행을 간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발목을 잡느냐”. 노년의 자연스러운 증상인 육체의 쇠락이 졸지에 윤리적 문제로 비난받은 것이다. 백일섭은 다음 여행을 시작하기 전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며 체중 감량을 했지만, 아직도 일행 중 가장 뒤처지는 백일섭에 대한 볼멘소리가 다 줄어든 것은 아니다.

‘노인 자살률 1위’ 나라에서 살다보니

대중문화계에 종사하는 창작자들에게 꼭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줬다면 그 선에서 그들의 의무는 끝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노인 문제 해결에서 국가 시스템에 의한 해결이 아닌 개인의 선의에 의한 해결을 이야기하며 끝을 낸다거나, 노년 특유의 속성을 이해시키기보다 ‘극복’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선에서 그친다면,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뒷맛이 썩 개운치 않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기세로 노인 자살률 1위를 차지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하는 이야기다.

이승한 TV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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