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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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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명 1982, 야구소년을 찾아라

<우리학교>에 이은 김명준 감독의 재일동포 다큐
<그라운드의 이방인>… 잊혀진 소년들 통해 야구의 역사와
한국 사회를 비추다
등록 2015-03-14 15:54 수정 2020-05-03 07:17

다큐멘터리는 ‘뉴스’의 매체다. 다큐의 꽃 같은 기능은 ‘세상이 몰랐던 얘기’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일본에 조선학교가 있고, 재일동포 야구단이 한국에 왔었단 얘기가 완전히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조선학교의 존재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져 있고, 재일동포 고교야구단에 관한 풍문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뉴스는 새로운 소식만이 아니다. 글로 배운 얘기를 살과 피로 전하는 일도 뉴스에 속한다. 그들의 얼굴을 비추고 표정을 읽으며 일상을 담아 전하는 다큐 작업은 ‘진짜 소식’을 전하는 일이다. 김명준 감독은 재일동포에 관해서라면 ‘뉴스메이커’다.
잊혀진 존재에 빛을 비추는 일은 값지다. 김명준 감독의 다큐는 그 구실을 한다. 그의 첫 다큐인 (2007)는 조선학교라는 추상명사에 ‘혹가이도’ 조선학교 아이들의 생생한 표정을 새겼다. 재일동포가 밀집한 오사카가 아니라 오지의 조선학교로 들어간 그는 몇 해를 함께 지내며 그곳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것은 재일동포 차별 문제, 민족교육 현장 중계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 다큐는 응집력 강한 소수자 대안학교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잊혀진 존재의 가장 변방을 주목한 시선이 이룬 성과다. 두 번째 다큐인 도 30여 년 잊혀진 존재에 빛을 비춘다. 1982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재일동포 야구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모국에서 이방인이 되다

1956~97년 재일동포 팀으로 모국 대회에 참여한 620여 명의 야구 소년들이 있었다. 은 시간이 갈수록 잊혀질 이들을 찾아 역사에 남긴다. 제작진은 해마다 참여한 소년들 가운데 1982년 대회에서 준우승한 선수들을 찾는다. 1982년은 한국 프로야구 원년으로 지금까지 이어진 야구 열기의 시원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주소 한 장 달랑 들고 ‘일본에서 김 서방 찾기’에 나선다. 당신의 짐작처럼, 찾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어렵게 연락이 닿은 이들도 촬영에 응하지 않는다. 여전히 한국계·조선인이란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있고, 그다지 아름답지 않게 남은 방문의 기억이 있는 까닭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재일동포 고교야구단은 봉황대기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대회 참가 당시의 모습. 〈라운드의 이방인〉은 외면당한 역사를 다시 불러낸다. 인디스토리 제공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재일동포 고교야구단은 봉황대기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대회 참가 당시의 모습. 〈라운드의 이방인〉은 외면당한 역사를 다시 불러낸다. 인디스토리 제공

그렇게 스포츠 다큐에도 정치가 스며든다. 순수한 추억에 차별의 현실이 끼어들고, 역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은 일본(“조셍진”)에서도 한국(“반쪽바리”)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중간자(재일동포)들이 청춘의 한 페이지로 돌아가 서운함을 푸는 얘기다. 김 서방 찾기의 꼬인 매듭은 다행히 ‘조선학교’라는 인연으로 이어진 김근씨를 만나면서 풀린다. 당시 출전 선수인 김근씨는 조선학교 출신으로 를 만든 김명준 감독을 신뢰한다. 한번 풀린 인연의 매듭은 순조롭게 이어져 1982년 당시 5경기를 완투한 에이스 양시철을 만나고 4~5명 멤버와 한국에 오는 여정으로 달려간다.

배수찬, 잊혀진 묘비명

야구만큼 자본주의적인 스포츠도 드물다. 지구인의 경기라기보다는 미국인의 스포츠인 야구는 재일동포 입장에서 보면 ‘남쪽’의 스포츠다. 다큐에도 “축구는 북쪽, 야구는 남쪽”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야구를 하는 동포는 남쪽과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재일동포 소년들이 대회가 끝나면 배트와 글러브를 한국 선수에게 주고 갔던 것처럼, 재일동포 야구인의 노하우는 한국 야구의 수준을 높이는 젖줄이 되었다. 그러나 조국은 이들을 환대하지 않았다. 은 야구인 배수찬씨의 일생을 반추한다. 1982년 멤버는 아니지만, 재일동포로 모국을 방문했던 배수찬 선수는 한국에 정착했다. 실업야구 시절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고, 대학야구 감독을 거쳐 프로야구 코치를 지냈다. 분단은 평탄한 야구 인생을 결딴내버렸다. 1968년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사건이 벌어진 즈음 그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일본의 어머니가 북송선을 탔기 때문이다. 다큐는 라는 일본에서 발간된 책을 인용해 당시 재일동포 출신 동료인 김성근 감독도 취조를 당했다고 밝힌다. 이런 고초의 여파로 조기 은퇴를 택한 그는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지만 ‘분단이 결딴낸 인생’은 끝내 복원되지 않는다. 그렇게 은 역사가 할퀸 한 생을 애도한다.

30년 만의 재회다. 48살 사내가 된 1982년의 소년들은 설렌다. 다큐는 이들을 1982년 경기가 열렸던 서울 잠실야구장 마운드로 이끈다.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 앞서 이들이 시구자로 나선다. 어머니에게서 일본인에 “지지 마라!”(마케루나)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듣고 자랐던 조선인 소년은 그렇게 모국의 상처를 씻는다. 처음엔 환호와 야유를 구분하지 못했지만, 실책을 하면 터져나오는 관중의 환호에 자신들을 향한 동포들의 시선을 눈치챘던 소년들. 이들에게 모국 방문의 기억은 “재일동포 때리기”로 남았다. 이 복원한 역사를 통해 이들은 비로소 환대의 추억을 가진다.

와 은 재일동포라는 소재의 공통점 외에도 김명준 다큐의 연속된 특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의 다큐에는 10대의 꿈과 눈물이 범벅돼 빛난다. 는 물론 도 사랑받을 것을 기대한 조국에서 남모를 상처를 받은 아저씨 소년들의 이야기다. 결국 그의 다큐는 정치가 지우고 역사가 망각한 ‘잊혀진 청춘에 대한 헌사’다. 그는 잊혀진 죽음에 묘비도 세운다. 배수찬 선수의 사연은 에 나왔던, 20년을 조선학교 교원으로 살다가 51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리호미 선생님의 얘기와 겹쳐 보인다.

착한 다큐에 대한 못된 기대

거부와 환대도 일관된 테마다. 두 작품엔 나란히 두 개의 조국을 방문한 기억이 나온다.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혹가이도’ 조선학교 학생들은 환대의 경험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라는 고민에 확신을 얻는다. 반면 1980년대 서울을 다녀온 소년들은 “좋은 추억이 없다”는 마음으로 지냈다. 이것은 체제 찬양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우리’가 구성원으로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가 재일동포를 어떻게 대해왔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나아가 사람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 관한 보편적 얘기다. 이래도 저래도, 이 한국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차별을 말하다보니, 정작 소년들에 관한 궁금증도 남긴다. 재일동포라는 수식어를 빼고, 이들의 야구 인생은 서울을 다녀간 뒤 어떤 좌절을 겪었을까, 궁금증이 남는다. 에서도 학교를 그만둔 이들의 사연은 자세히 나오지 않았다. 매번 착하게 대상에 밀착하는 김명준의 다큐는 착해도 너무 착하다. 그의 영화에서 터질 듯한 갈등도 보고 싶은 이유다. 3월19일 개봉.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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