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직전 박지성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라는 문장을 써놓고 한참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으면 지인들이 대부분 같은 반응을 보인다. “또 박지성?” 이제, 박지성 이야기는 그만 써야 하는데…. 2015년 들어 ‘벌써’ ‘이제’ ‘더 이상’ 같은 단어를 몇 번쯤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두 번의 월드컵이 과거가 됐다. 그 인터뷰를 한 것은 2010년 4월쯤이었다. 맨체스터에서 만난 박지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다. 만약 4년 뒤 여전히 자신이 대표팀 주장이라고 생각해보라. 아마 그 팀의 전력은 최상이 아닐 것이라고.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나는 박지성의 인터뷰를 몇 번이고 더 인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인터뷰하며 들었던 이야기 대부분은 놀랍도록, 한국 축구가 지나온 혹은 앞으로 지나갈 중요한 궤적을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지성이 없었음에도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전력은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가 박지성을 그리워했다. 단 한 가지, 선수단 전체보다 감독이 더 많이 주목받은 것은 휘스 히딩크 이후 처음이었다. 태극마크가 가장 사랑했던 선수 중 한 명인 홍명보. 그가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일은 기성용이 일으킨 ‘SNS 파문’을 수습하는 것이었다. (모두 다 아시는 일이라 생각해 지면 관계상 생략합니다만, 파문의 전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 검색창에 ‘기성용 최’를….)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뒤틀린 일이 되어버렸지만.
1989년 1월24일생.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여섯인 기성용은 홍명보의 아이들 중 하나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당시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대표팀 코치로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다)을 마치고 세상을 향해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는 일갈을 날리며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세상은 그때 축구선수가 아이돌이 될 거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 축구계는 축구계대로 축구선수가 아이돌이 될 수 있는지, 심지어 이 선수가 향후 10년간 대표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가 될 거란 확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축구선수를 포함해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은 극한의 경쟁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결말을 알 수 없는 선택을 내리고, 결과를 마주한다. 그 뒤의 상황은 잔혹할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단 보름간의 훈련 뒤에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을 받은 상주 상무 공격수 이정협은 아시안컵에서 A매치 6경기 만에 세 골을 넣고 ‘군데렐라’가 되었다. 그는 다시 상무에 돌아왔지만 이제는 주전을 꿰차고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다.
그 보름간의 훈련 동안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포항 임대 공격수 신분이던 강수일은, 다시 원소속팀 제주로 복귀해 평범하게 새 시즌을 준비 중이다. 그는 2014년 포항으로 임대 오기 전까지 제주에서 아무의 눈에도 띄지 못하던 공격수였다. 그런데 임대 온 포항 황선홍 감독 밑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정상급의 활약을 펼쳐 혼혈 선수로는 16년 만에 국가대표 예비소집 명단에까지 합류했다. 하지만 아시안컵에 간 것은 이정협이었고, 강수일은 다시 원소속팀 제주로 돌아갔다. 공교롭게도 슈틸리케 감독이 아시안컵 훈련 직전에 마지막 훈련을 진행한 곳이 제주였다. 프로에게 경쟁이란, 그리고 이후 자신이 책임지고 가야 할 결과란 놀랍도록 잔혹하다.
그래서 이제 매번 대표팀 중원을 돌아볼 때마다, 더 이상 거기에는 모기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박지성이 아니라,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존재감(실제 186cm인 체격 조건도 월등하다)의 캡틴 기성용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성용은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실패들을 뒤로하고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정말 보기 드문 유형의 축구선수다. 그리고 앞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 대표팀에서 계속 주장 완장을 찰 것이 유력시되는 선수다.
만감 교차하는 그의 존재감‘니들이 뛰든지’나 ‘SNS 파문’ 같은 일약 혁명적인 사건이 어느덧 시대의 한 페이지가 된 것도 오래. 그는 A매치 훈련에 연예인 여자친구(지금은 아내)의 이니셜이 새겨진 축구화를 신고 나오기도 했고, 월드컵 출정식이라는 중요한 경기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다른 손으로…. (역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만 ‘전혀 몰랐어’ 하는 분이 계시다면 검색창에 ‘기성용 왼’을….) 이런 에피소드들을 열거하는 것은 단순히 기성용을 우습게 만들거나, 웃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역시 박지성을 인터뷰했을 때다. 그에게 ‘레전드’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맨유의 라이언 긱스라는 레전드가 ‘막장’이라고도 부르기 힘든 치정(?) 사건으로 국내는 물론 영국 현지 팬들까지 충격에 몰아넣은 일이 있었다. 이미 유럽에서 10년 가까이를 보냈던 터여서인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레전드는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국 밖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보는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유럽 선수들에게 그라운드 안과 밖의 생활은 철저히 별개일지도 모른다고. 축구선수가 축구선수로서 존경받는 길은 축구밖에 없기 때문에.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나는 기성용이 그때 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어떤 심정으로 그런 글을 썼는지 모른다. 또 최강희 감독이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심정적으로는, 아들을 낳으면 기성용 같은 피지컬에, 외모에, 언어구사 능력을 갖추고 이왕이면 축구선수가 됐으면 좋겠고, 최강희 감독 같은 어른하고는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 그러니 마치 내가 지구의 평화를 바라는 것처럼, 언젠가는 두 사람도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겠지 하는 마음을 갖는 것뿐이다. 감정이나, 인간적인 영역에서는 그런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경쟁이 멈추지 않는 한 세상은, 그런 상처들을 보듬으며 갈 여유가 없다.
그래서 기성용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무섭도록 성장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박지성이 없어 미치도록 혼란스러운 시대를 지나왔다. 기성용은 540분을 뛰어 곧 쓰러질 것처럼 지쳤으면서도 너무나 우월한 신체능력으로, 그들의 신체는 더 우월해 아시아에서 다시 퇴출시켜야 한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들을 한순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킬패스로, 아시안컵 결승전 경기 종료 직전 손흥민에게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영국으로 날아가서는 머리카락 때문에 전반전에 넣은 선제골이 오프사이드로 선언되자, 후반전에 헤딩으로 1 대 1 동점골을 넣는 진화(進化)를 선보였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최강희 ‘기묵직’, 왼손 거수경례 같은 이야기를 할 여유가 없다. 그것이 한계를 다해 뛴 자에 대한 응답이고,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사람이 승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목표까지 쟁취한다면 치부는 교훈이 된다. 적어도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 아니, 어쩌면 모든 세상이 그러할지도.
이은혜 SBS스포츠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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