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196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무대로 한 멜로물이다. 송창식·윤형주·이장희·조영남 등이 활동했던 ‘쎄시봉’은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5년 전 TV 토크쇼에 출연한 뒤 반향을 일으켰던 복고 열풍의 진원지다. 수년간 복고가 대중문화의 대세로 자리잡았고, 등이 1990년대를 ‘호시절’로 소환하는 이때에 1960년대 복고물을 보는 시선이 마냥 고울 리 없다. 복고가 새로운 창작 콘텐츠를 고갈시키고 향수를 통해 세대를 위무하며 상업적인 단물을 빠는 행위란 점에서 지지하기 어렵다. 게다가 1960년대 복고물이라니, 너무 구린 게 아닌가. 하지만 은 그러한 예단을 살짝 비껴난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 때, 고려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어느 정도 거리를 둘 것인가. 당대 스타였던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직접 다룰 것인가, 아니면 ‘쎄시봉’을 배경으로 한 익명의 청춘들을 등장시킬 것인가. 둘째, 그 시대를 어떤 감성으로 추억할 것인가. 그 시절의 청춘은 아름다웠노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상흔을 드러낼 것인가.
은 두 가지 점에서 최적을 뽑아낸다. 은 실존 인물들을 조연으로 삼고, 그들의 곁에 있었던 가상의 주인공을 창작해낸다. 실제로 송창식·윤형주 듀엣인 ‘트윈폴리오’의 전신은 ‘쎄시봉 트리오’였다. 제3의 인물인 이익균의 군 입대로 팀은 몇 달 만에 해체되었다. 영화는 이를 단초로 이익균의 자리에 오근태라는 가공인물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역시 가공인물인 ‘쎄시봉의 뮤즈’ 민자영을 그려넣어, 당대 청년문화가 추구했던 순수함과 도발성을 한껏 고양시킨다. 가령 민자영이 미니스커트 단속을 피해 오근태와 하의를 바꿔 입는 장면은 신발을 바꿔 신었던 ‘엽기적인 그녀’보다 파격적이다. 그러나 발랄함의 한계 역시 명확히 짚는다. 민자영은 자신을 압도하고 이끌어줄 ‘오빠’에게 끌린다. 영화는 당대를 가로지른 국가의 폭압을 드러낸다. 그것도 통행금지나 장발단속 등을 풍속사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 공권력으로 인해 내상을 입은 청춘의 내면을 보여준다.
은 마치 주크박스 뮤지컬처럼 ‘트윈폴리오’의 히트곡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며, 강하늘(윤형주 역)·조복래(송창식 역)·정우(오근태 역)의 훌륭한 화음을 들려준다. 또한 원곡과 달리 슬픈 가사를 지닌 번안곡 의 가사를 중요한 테마로 활용한다. 등을 찍은 김현석 감독의 멜로답게, 영화는 짝사랑하는 남자의 순정을 안타깝게 담는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지만, 김현석 감독은 자꾸만 용기 없는 남자의 순애보와 지질함 사이를 보여주며 그 실패를 연민한다. 어쩌면 과 비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서 남성의 좌절이 자본에 의한 것이고, 남성은 자신을 택하지 않은 여성을 “썅년”이라 비방하며, 영화는 그 비겁함을 변호하는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과 크게 다르다. 에서 남성의 좌절은 일차적으로 예술적 재능과 성적 지배력에 의한 것이고, 남성은 자신을 택하지 않은 여성에게 마지막 선물을 바칠 정도로 지순하다. 그리고 이차적 상흔은 국가가 참절한 그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국가폭력이 할퀸 내면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가담자일 때 더 심각하다. 오근태가 민자영과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건 이 때문이다. 여기서 감독의 전작 가 연상된다. 단순한 코미디물로 보였던 는 광주민주화운동은 물론, 폭력에 동원된 자의 자의식과 공권력으로 인해 파탄 난 관계의 속살을 드러냈다.
은 1960~70년대를 추억하되, 오마주나 향수에 함몰되는 영화가 아니다. 그 시절 청년문화가 대결하는 시대적 억압을 보여주며, 그 억압을 ‘외부의 벽’이 아니라, 가담자의 내면에 그어진 상흔으로 응시한다. 이러한 점이 동시대 청춘들의 사랑이 공권력에 의해 찢기는 모습을 보여준 이나, 당시의 대중문화가 정권으로부터 받은 부당한 탄압을 그린 에 비해, 이 세련돼 보이는 이유다.
자부심 아닌 자괴감의 정서
은 대마초 파동의 허구성을 뚜렷이 지적하면서도, 그 세대 문화가 왜 더 저항적인 반문화로 나아가지 못했는지를 쓸쓸하게 비춘다. ‘포크 세대’는 한국전쟁 직후 베이비붐으로 태어나, 엄청난 교육열과 미국 대중문화의 수혜를 입은 첫 세대로, 최초로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청년문화를 일으켰다. 하지만 국가 탄압을 겪으며, ‘포크 세대’는 소수의 피해자를 제외하면 오히려 방관자나 가담자로 내면화하는 과정을 겪었고, 이를 통해 급속히 체제 내로 흡수돼갔다. 영화는 1967년 ‘쎄시봉 트리오’의 결성과 1975년 대마초 파동을 압축해 보여주면서도, 한대수·김민기·양희은 등 이후 저항문화와 접점을 지니는 당시 ‘쎄시봉’ 멤버들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이는 ‘포크 세대’를 자부심이 아닌 자괴감의 정서로 응시하려는 영화의 관점과 관련 있어 보인다. 감독은 영화가 중년의 오근태가 주저앉아 우는 뒷모습에서 시작됐으며, 김윤석을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의미심장한 변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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