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60명의 작가들이 제주 강정마을에 평화도서관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강정을 해군기지 마을이 아닌 평화마을로 기억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제안은 ‘강정마을에 10만 권의 책을 보내자’는 시민들의 자발적 평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최미라씨는 2013년 10월17일 강정마을에 책을 보내는 여행에 동참했다. 최씨의 시선으로 강정의 오늘을 담아낸 다큐영화 가 1월15일 개봉한다. 최미라씨가 여행기를 보내왔다. _편집자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 여느 대학생들처럼 대기업 취업을 준비한 적도 있고 세상과 사회를 이해하고 싶어 언론고시에 매진한 적도 있다. 아마추어 뮤지컬 극단에 들어가 무대에 서기도 했고, 단편영화 주인공으로 영화제에 가기도 했다. 유명 시사 프로그램의 객원 직원으로도 일했고, 다큐멘터리 연출부로 참여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참 많은 일을 해온 것 같지만 서른을 바라보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어디어디 입사해서 얼마나 일했다는 증명서 한 통 떼기 애매한 경력이고 두둑한 적금 통장은커녕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며 살아갈 만큼의 수입으로 버티며 지내왔다. 부모님께 죄송하다.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생활비를 보태지도 못하고 제 앞가림하기만도 벅찬 능력 없는 대졸 딸내미. 졸업 뒤 많은 경험으로 세상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고 위안해보지만 남들이 보기에 지금 내 모습은 이렇게 정의되지 않을까? ‘루저’ ‘잉여인간’ ‘불쌍한 88만원 세대’.
답답해 터져버리기 직전에 시작된 여행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여유도 없었고 학점, 토익, 해외연수 등 스펙 따라잡기에 급급하며 살았다. 졸업 뒤 경쟁은 심화되고 졸업한 대학과 다니는 회사가 인생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나이 들수록 직업과 소비의 수준으로 사람들을 구분짓고 내가 ‘수준’을 갖춘 사람인지 평가하는 현실. 행복의 조건이 수치화되는 시대. 나름 앞만 보고 열심히 걸어왔다 여겼던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많은 것을 가르치면서 ‘잘 사는 법’은 알려주지 않지? 어른이 될수록, 많은 것을 알아간다고 생각할수록 정확하게 깨닫는 것은 하나다. ‘세상은 너무 차갑다’.
지겹다. 목마르다. 떠나고 싶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포화상태가 되어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인 답답한 마음과 함께 이 여행은 시작되었다.
영화 는 사회에 관심을 갖기에는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만도 힘겨운 내가 우연히 제주도 강정마을에 책을 기부하는 행사를 알게 되고 3만 권의 책을 나르는 배에 탄 뒤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겪는 문제를 신문기사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는, 사실 강정이 7년 동안 겪고 있는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보다 떠나는 데 목말랐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처럼 떠난 제주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경제 논리에 의해 평생을 함께해온 가족, 친지, 이웃과 등을 돌려야만 하는 현실에 놓인 강정 주민들,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신부님들의 미사를 막고 우리의 책 전달을 저어하던 경찰들, 그리고 평화책방을 지키는 테라 언니, 강정마을에 정착해 모든 상황을 기록하는 많은 문인들, 봉팔 아저씨,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언니와 같은 강정 지킴이분들. 강정에선 강정마을의 훼손을 안타까워하는 타지 사람들이 ‘주민’과 하나 되어 따뜻하고 깊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선 스펙도, 내 집 마련도, 자기계발도 다 먼 나라 이야기였다. 큰 위기를 안고 있는 처연한 마을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동화책에나 존재할 것 같은 작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어, 그것만 알면 돼강정에 다녀온 지 1년. 불안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강정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이곳 서울에서도 사회인이자 자연인으로 또 다른 ‘아름다운 마을 강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사람들이 말하는 ‘남을 이기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게 내가 사는 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식 사태는 비단 강정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경남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의 대량 해고,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까지. 세월호 참사가 남 일 같지 않아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영화인들을 응원차 방문하고 추모영상제에도 참여했다. 유족이 아니더라도 세월호 참사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은, 강정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어도 강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은 테라 언니와 봉팔 아저씨에게 일정 부분 빚진 것이다. 세월호 추모영상제에 참여하면서 영화가 가진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는 연기자, 그리고 글과 영상으로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영화 수업을 찾아 듣고 부지런히 공부도 한다. 예전엔 나 자신을 탓하며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면 지금은 내 앞에 펼쳐진 무궁무진한 일들에 가슴이 설레고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과정이 마냥 재미있고 신기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다만 정답은 없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영화인들의 재능기부로 시작해 시민들의 마음이 합쳐져 개봉까지 오게 된 . 제목처럼 이 여행은 나에게 기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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