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있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나라. 그리고 어린 왕자가 골머리를 앓던 바오바브나무가 자라는 곳. 그곳에서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가 지난 8월28일~9월7일 열렸다.
아름다운 바닷가, 첫날 닥쳐온 시련
‘트레일러닝’이란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오솔길, 산, 목장, 초원 위를 달리는 것이다. 달리기에 관심 있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5km·10km 코스부터 50km·100km 넘게 달리는 코스까지 대회를 주최하는 현지 사정에 맞게 코스가 다양하다. 국내에는 서울의 북한산 둘레길, 부산의 갈맷길 트레일러닝, 제주국제트레일러닝 등이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제주국제트레일러닝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대회로 지난해에는 23개국 1천여 명의 선수가 참여했고, 올해도 비슷한 규모로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www.trjeju.com, 10월9~12일).
‘2014 마다가스카르 레이스’는 레이싱더플래닛이 1년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개최하는 로빙 레이스 중 하나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처음 열리는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는 총 253km의 거리를 37km, 46km, 42km, 41km, 77km, 10km로 나눠 6일간 달렸다.
이번 레이스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장비를 담은 배낭을 메고 달리는 서바이벌 레이스다. 배낭의 무게는 7~15kg인데 일주일 동안의 식량(주로 건조음식으로 하루 2천Cal), 침낭, 옷, 비상담요, 비상약품 등이 담겼다. 대회 실시 전 배낭을 검사하는데, 만약 필수 물품이 하나라도 빠지면 대회에 참가할 수 없거나 페널티를 받게 된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이 먹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많다. 배낭에 음식이 많으면 무겁고 적게 가지고 가면 배가 고파서 달릴 수 없게 된다. 내 경우는 일주일간의 음식과 옷·침낭 등이 담겨 8.5kg의 배낭 무게와 물 1kg, 그리고 카메라 렌즈 무게 2kg을 더하니 첫날 달리는 동안 짊어지고 갈 무게가 11.5kg이었다.
호텔에서 하루를 머문 뒤 버스를 타고 대회 장소로 이동했다. 하늘이 붉게 물들 때쯤 대회 장소에 도착했다. 인도양 바닷가 마을 근처였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텐트로 이동해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오늘부터는 개인이 준비한 음식으로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 대회 쪽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물을 준비해준다.
레이스 당일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야외에서 자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이곳에 온 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새벽 공기는 쌀쌀했다. 이곳은 계절상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길목에 있다. 아침 8시. 세계 40여 개국에서 온 240여 명이 출발했다.
첫날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인도양의 푸른 바다를 보며 달린 지 30분, 바닷물을 건너는 코스가 이어졌다. 신발과 양말이 물에 젖었다. 물이 공급되고 의사들이 배치된 체크포인트에서 확인하니 발에 물집이 2개나 잡혀 있었다. 첫날에 물집이라니, 다가올 고통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다. 피니시 라인까지 8km를 2시간 가까이 걸었다. 아직 더 많이 남아 있는 날들을 생각하며 체력을 아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왜 오지까지 가서 달리느냐고?무더운 여름 사막 한가운데서 가끔씩 만나는 ‘리버 크로싱’이라면 반가울 텐데, 이번 대회처럼 매일매일 강을 건너고 때로는 진흙 속에 빠지니까 이는 가장 싫은 구간이 되었다. 강을 건너고 나면 신발과 양말이 젖어 발이 짓무르면서 물집이 생겼다. 어느 때부터인가 강을 건널 때는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대회 4일째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세이크리드’(Sacred)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오지마을 한가운데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이번 대회에서는 볼거리가 많은 다양한 지형들이 배치돼 있었다.
5일째 달릴 거리는 77km, 롱데이는 다음날까지 제한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걷는다면 완주할 수 있다. 보통 선두그룹은 날이 어둡기 전에, 중위그룹은 저녁부터 새벽 사이에 도착한다. 후미 주자들은 다음날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 걸어서 들어온다. 예전에 운동을 많이 할 때는 해가 지기 전에 들어오곤 했는데, 이번 대회에선 그저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즐기면서 사진도 찍고 크게 아픈 곳 없이 끝마치는 게 목표였다.
얼마나 달렸는지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 6시가 되니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날이 어두워졌다. 거기에다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첫날 물집이 아문 뒤에 다시 생긴 물집이 뛰는 내내 아파왔다. 발톱도 무리가 갔는지 통증이 심했다.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지난 내 삶의 흔적들, 그리고 미래 내 삶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나의 삶은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의 고통처럼 내 삶에 앞으로 얼마나 더 아픈 시련이 다가올지? 그렇게 롱데이, 그야말로 긴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결국 참가자 240여 명 중 190명이 완주하고 50여 명은 탈락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사막을 가고 알프스를 가고 아프리카 오지마을에까지 가서 힘들게 달리느냐고? 그건 어느 등반가의 “거기 산이 있으니까”라는 말처럼 소박하다. 이 소박한 의도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살아 있으므로 행복하다’는 이 감정. 바람소리, 새소리, 뜨거운 태양. 달리는 동안 느꼈던 고통과 힘겨움은 모두 내가 살아 있으므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세상은 넓고 아직 달릴 곳은 너무 많다.
안트시라나나(마다가스카르)=글·사진 안병식 트레일러닝 전문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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