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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에게 배우는 ‘북한과의 평화공존’

전쟁은 어떻게 일어나며 평화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에 관한 인류학적 고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등록 2014-07-26 15:53 수정 2020-05-03 04:27
영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대치 중인 두 집단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올댓시네마 제공

영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대치 중인 두 집단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올댓시네마 제공

은 2011년 으로 새롭게 출발한 ‘혹성탈출’ 시리즈 3부작 중 2부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전편에 이어 놀라운 모션캡처 기술을 보여준다. 영화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을 담고 있으며, 항시적인 전쟁 위협에 놓여 있는 한국 관객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전한다. 전편에서는 치매약을 개발하려는 과학자의 품에서 놀라운 지능을 지닌 유인원으로 자라난 시저가 실험실에 갇힌 유인원들을 해방시켜 탈주하는 과정이 그려졌으며, 말미에는 실험실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퍼지는 장면이 삽입되었다.

<font size="3">시저의 평화 노선과 불만 세력의 쿠데타</font>

은 마치 좀비 묵시록 영화처럼,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류가 몰살당하는 뉴스 화면으로 시작한다. 그 뒤 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외곽 숲에는 초기 문명의 유인원들이 시저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폐허가 된 도시엔 소수의 인간들이 살아남아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다른 인간들과 교신하려 애쓴다. 그러나 전력이 바닥나자 인간들은 숲의 수력발전소를 가동시키기 위해 유인원의 거주지에 발을 들인다. 미지의 종족 간의 조우에서 총이 격발되고, 유인원들은 분노한다. 시저는 냉정하게 분노를 자제시키며, 인간과 유인원 집단에게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전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발전소를 포기할 수 없다. 유인원들을 공격하려는 지도자의 뜻에 반대하는 말콤은 유인원들과 협상하기 위해 홀로 숲으로 간다. 시저는 고심 끝에 발전소 수리를 용납하며, 어렵게 평화를 이어간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들은 유인원과 일전을 준비 중이었으며, 시저의 평화 노선에 불만을 품은 유인원 코바는 인간들의 무기고를 탈취해 쿠데타를 일으킨다.

은 정치영화이자 전쟁영화다. 또한 전쟁은 어떻게 일어나며 평화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숙고한 영화다. 영화는 유인원과 인간이라는 상이한 두 집단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어느 쪽이든 절멸당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을 설득한다. 특히 시저의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은 유인원들에게 감정이입이 일어나게 한다. 만약 영화가 인간집단을 먼저 보여주었다면, 관객은 유인원을 쓸어버리고 숲을 차지해야 한다는 인간의 주장에 쉽게 동의했을 것이다.

인간과 유인원은 서로에 대한 공포와 적대를 지닌다. 인간은 그들의 빠른 진화와 야생성을 두려워한다. 유인원은 인간의 총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유인원을 멸시하며, 그들이 감염원이었다며 증오한다. 유인원은 인간에게 원한이 있다. 하지만 시저와 말콤은 전쟁을 피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적대와 혐오를 줄여나간다. 영화는 유인원과 인간이 숲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나, 홀로 숲으로 들어가던 말콤의 모습, 아기 유인원에 의해 긴장이 풀어지다가 발견한 총에 의해 삽시간에 신뢰가 깨지는 순간, 그리고 코바가 인간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긴장을 풀다가 갑자기 총을 쏘는 장면 등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마치 에서 적대와 신뢰가 부단히 교차하며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던 과정을 연상시킨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단한 인내심과 분별력에 의해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유지되던 평화가 우발적인 사건으로 깨지는 순간, 전쟁은 시저의 말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온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전쟁은 유인원 내부의 전쟁세력에 의해 촉발됐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유일계명을 어기고, 코바가 시저에게 총을 쏘고, 그것을 인간의 짓으로 덮어씌우며 복수를 선동하는 것에 의해 전쟁은 벌어진다. 이를테면 주전론자가 내부 권력을 쥐기 위해 벌인 자작극에 의해 초긴장 상태에 있던 두 집단 간의 전쟁이 촉발된 것이다. 이러한 실례는 베트남전쟁의 통킹만 사건이나, 제주 4·3 사건의 오라리마을 화재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font size="3">통킹만과 제주에서 보았던 일</font>

냉전 중이던 1968년에 만들어진 은 주인공이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강렬한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심어주었다. 역시 대단히 구체적인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던진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전쟁을 원하는 내부 세력과의 정치투쟁을 통해 그들을 무력화하는 실질적인 힘과 조치가 필요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또한 그 노력은 대치 중인 두 집단에서 동시에 일어나야 하고, 상호 신뢰를 쌓아가려면 내부를 설득할 수 있는 강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미국 패권의 약화와 중국 패권의 부상으로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남북경협과 유라시아철도가 재논의 중이다. 북한 지역에 경제특구를 만들고 북한 지역을 관통하는 철도를 잇는 일은, 유인원 땅에 있는 발전소를 수리하는 일만큼이나 큰 협상력을 요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평화 공존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것이 진정으로 가능하려면 남한 내부 전쟁세력과의 싸움에서 평화세력이 승리를 거두고 주체가 되어야 함을 영화는 조용히 일깨운다. 시저는 코바를 응징하며 “너는 유인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쟁을 부추기며 권력을 탐하는 자, 그들은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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