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리딩(독서) 대회’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위편삼절적 마음가짐. 그게 어렵다면 ‘오! 저런 상황에서도 책을 읽다니’라는 정도도 무방.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책 읽는 사진이나 한 방 찍어볼까’ 하는 자세까지도 양호. 다 필요 없고 어쨌거나 웃기면 되”는 책 읽는 사진 모집 대회다. 이 대회 주최자는 대회를 알리기 위해 먼저 참고 사진을 찍었다. 주최자의 설명에 따르면, 바다에 몸을 담그면 머리 속에서 ‘짜르릉’ 종이 울릴 만큼 쌀쌀한 4월의 비 오는 날, 강원도 속초 바다에 몸을 담그고 수경 쓰고 책 읽는 사진을 연출한 것.
<font size="3">“재밌다 죽어라 말하면 듣겠나?”</font>‘낭만독서 기차여행’도 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강릉행 완행열차를 타고, 약 5시간에 걸쳐 목적지로 가는 동안 근사한 소설 한 편을 읽은 뒤 강릉역 근처 펜션에서 맥주와 바비큐, 음악을 곁들이며 밤새 낭만을 즐긴 뒤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심지어 이때 읽는 소설은 아직 서점에 깔리지 않은 책, 곧 나올 책이다. 다만 독서에는 목적 하나가 결부된다. 교정이라는.
이 두 이벤트는 누가, 어디서 한 걸까. 올해로 문 연 지 9년째인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 김홍민(38) 사장이 그의 서식지인 출판사 블로그(www.booksfear.com)에서 동을 뜬다. 출판사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자리하고 있어 스스로를 ‘마포 김사장’이라고 부르는 그는 자나 깨나 TV 보고 밥 먹고 술 먹을 때도 ‘이벤트’를 생각한다. 이벤트 가이다. 김 사장의 이벤트에는 추리소설 전문 출판사 피니스 아프리카에의 박세진 대표도 함께한다. 북스피어는 9년째, 피니스 아프리카에는 3년째 한 우물만 팠다. 추리소설·판타지소설·공상과학소설(SF) 등 한국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직 취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또 비교적 홀대받는 영역의 책들을 흔들림 없이 펴낸다.
마포 김사장은 읽고 자신이 흔들린 작가의 책을 펴낸다. 10년 전, 청어람미디어에서 나온 미야베 미유키의 를 읽고 ‘이런 소설이 있다니’ 전율을 느꼈고 그의 책을 만들고 싶어 주저 없이 에이전트를 통해 미야베 미유키 쪽에 ‘오퍼’(계약 조건을 얘기하고 출간 여부를 묻는 것)를 넣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계약이 성사됐다. 그때부터 시작된 북스피어의 미야베 미유키 출판은 현대추리물로 구성된 ‘미야베 월드’와 시대물로 구성된 ‘미야베 월드 제2막’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30여 종이 나왔다. 이어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인’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을 역사비평사의 임프린트 ‘모비딕’과 함께 연대해서 펴내는 중이며, 요즘은 레이먼드 챈들러에도 꽂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챈들러의 편지글을 모아 를 펴냈다.
책 만드는 편집자이자 출판사 사장이 왜 이렇게 이벤트에 집착하는가. 그가 주력하는 ‘장르문학’의 수요가 넓고도 깊지 않기 때문이다. 책 판매 자체가 불황이긴 하다. “미야베 미유키, 마쓰모토 세이초, 레이먼드 챈들러를 읽으면 ‘어휴, 어휴’ 무릎을 치게 재밌어요. 이 재밌는 걸 같이 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기본이에요. 그런데 책 만든 사람이 ‘이 책 재밌다’고 죽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듣겠어요? 차라리 다른 재밌는 걸 한 뒤에 살짝 책 얘기 한 줄 곁들이는 거죠.”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그만의 마케팅 노하우다.
<font size="3">독자 부려먹는 이상한 출판사 </font>그래서 시작된 북스피어의 이벤트들은 기상천외하다. 만우절 이벤트가 대표적이다. 올해 4월1일엔 북스피어에서 부정기적으로 펴내 새 책을 발매할 때 독자 선물로 배포하던 장르문학 소식지 를 3천원짜리 유료 월간지로 창간한다는 소식을 띄웠다. 창간호 확정 표지 사진과 함께 밝힌 목차에는 그간 “레이먼드 챈들러로부터 문장을 배웠다”고 밝혀온 정유정 작가와 스티븐 킹의 기고문, 폴 오스터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챈들러에 관해 얘기하는 대담 등이 실려 있다. 에 종종 글을 써왔던 인터넷 언론 김용언 기자가 18살 연상의 부인과 연상연하 커플이던 챈들러 부부에 관한 기획 기사를 쓰기도 했단다.
그야말로 만우절 이벤트이자 ‘뻥’이었지만 사람들은 ‘덜컥’ 믿어버렸다. “정기구독은 어떻게” “100권 삽니다” 등의 훈훈한 댓글도 달렸다. 모 종합일간지 ㅈ 기자는 “하루키랑 폴 오스터 대담 언제 했냐, 잡지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고, 김용언 기자에게도 ‘그 기사 재밌겠다’는 전화가 왕왕 걸려왔다. 4월2일, 김사장은 “만우절 행사를 아무도 몰라줘서 야속했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글을 올렸다. 2008년 만우절엔 미야베 미유키가 당시 일본에서 연재 중이던 을 패러디해 이라는 제목의 가짜 신간 발매 소식을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띄우는 스케일 큰 이벤트를 벌였고, 2011년엔 ‘마포 김사장의 치명적 매력’이라는 김홍민 사장의 음반 발매 소식을 실었다가 ‘만우절입니다’ 하기도 했다.
마포 김사장의 이벤트는 독자의 적극적 개입을 유도한다.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책 판매 노동을 시키는가 하면, 8권짜리 전질 박스 세트를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하시겠느냐’며 독자를 부른다. 기차여행 등의 형식을 빌려 독자교정단도 수시로 모집한다. 심지어 흔해 보이는 퀴즈대회도 엄청 어렵다. “쉬운 건 안 하는 게” 김사장의 이벤트 원칙이다. 독자 참여의 화룡점정은 2012년, 2013년 ‘원기옥’ 이벤트였다. 대형 출판사에 비해 자금력이 취약한 북스피어는 ‘독자 펀드’를 모집했다. 독자로부터 마케팅 비용을 빌리고, 판매부수에 따라 배당금을 붙여주는 형태다. 2012년엔 열흘 만에 5천만원, 2013년엔 한 달이 안 돼 8천만원이 모이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이 돈으로 일본에 직접 가 미야베 미유키 인터뷰를 하는 등 독자 서비스도 아낌없이 했다. 후에 “어렵게 모인 5천만원이 잠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고 책임감을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장르문학 출판사는 손에 꼽힌다. 생존이 쉽지 않다. 최근엔 과학소설 전문출판사 불새가 1년 만에 폐업을 알렸다. 최근 만든 머그컵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는 그에 대한 직설적 절규다. 북스피어는 내년에 10주년을 맞는다. 김사장은 2년 전부터 10주년 이벤트를 고민했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고, 그가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북스피어의 사훈이다.
<font size="3">사람들아, 재미있는 책 좀 사소~</font>이벤트는 계속된다. 장르문학 전문 작은 출판사들이 함께 열었던 장르소설 부흥회는 내년에는 캠핑과 야시장의 형태를 결합해 열릴 가능성이 높다. 가깝게는 독자교정이 기다리고 있다. 곧 나올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를 출판사 사무실에서 교정한 뒤 저녁에 경기도 남양주 축령산 밑자락에 자리한 이규원 번역가의 집으로 이동해 뒤풀이를 벌인다. 9월 즈음에는 제2회 낭만독서 기차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참여, 기다립니다.” 마포 김사장이 ‘우리 책 정말 재밌다’며 살랑살랑 손짓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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