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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물이 전하는 서울 이야기

초안산 석물 기록한 탁기형 기자의 사진작품 전시회

‘Loyalty’, 영국 런던에서 열려
등록 2014-04-04 11:21 수정 2020-05-03 04:27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전시회 ‘Loyalty’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과 전시된 작품들. 사진기자인 탁기형 작가는 초안산의 석물을 꾸준히 찍어왔다.탁기형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전시회 ‘Loyalty’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과 전시된 작품들. 사진기자인 탁기형 작가는 초안산의 석물을 꾸준히 찍어왔다.탁기형

서울에서 지구촌 슈퍼히어로들이 활약하는 를 촬영하는 동안, 400년 전 조선시대 석물(石物) 사진이 영국 런던에서 전시된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지구적 우연은 그렇게 이어져 있다. 탁기형 한겨레신문사 출판사진부 선임기자의 사진전시회 ‘Loyalty’가 런던 대영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목스페이스’(Mokspace)에서 3월27일~4월12일 열리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서울 초안산 석물들을 찍어왔다.

죽어서도 충성하는 존재들

‘Loyalty’를 한자로 번역하면 ‘충’(忠)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25점의 작품은 내시들의 묘를 장식한 석물을 담았다. 조선시대 내시들은 죽은 뒤에도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했다. 그들이 묻힌 초안산은 임금이 거처하는 서편 궁궐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석물로 형상화된 내시들은 죽어서도 궁궐을 바라보며 충성을 다해야 하는 존재였다. 몰락한 왕조라도 권력자였던 임금의 묘와 비석은 여전히 문화재로 돌봄을 받는다. 하지만 이름 없는 내시의 석물을 돌보는 손길은 드물다.

이렇게 문화재적 가치로 포장되지 않는 석물들은 오히려 사라진 왕조의 쓸쓸한 오늘을 가장 간명하게 증거한다. 더구나 돌이라는 물리적 특성은 온전히 시간의 풍화를 표면에 새기며 무상한 역사를 증명한다. 그의 작품에서 나무들에 에워싸여 우두커니 서 있는 석물들은 죽어서도 쓸쓸한 사내의 삶을 은유한다. 탁 기자는 400년 역사에 10년의 세월을 더했다. 그가 사진으로 기록해온 10년이 또다시 석물의 풍화를 기록하는 흔적이 된 것이다.

기자가 작가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현장의 펄떡이는 순간을 기록한 기자의 사진은 현장성의 운명이 다하면 가치를 잃는 경우가 많다. 사진기자이며 사진작가인 탁 기자는 현장 취재와 함께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해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그는 2011년 ‘사색(寫索)하다’ 등 개인전을 열었고, 2013년 전영관 시인의 글과 그의 사진이 공명하는 포토 에세이 도 냈다.

1980년대부터 이어온 현장성

그의 작업을 지구 반대편에서도 주목하는 이가 있었다. 목스페이스의 큐레이터 줄리 목(Julley Mok)은 “수년간 그의 작업을 주목해왔다”며 “그의 석물에 대한 이해와 서울 이야기가 런던에서도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탁기형 기자는 탁기형 작가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전히 사진기자로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그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누벼왔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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