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커 감독의 은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고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다. 중국에서는 칸영화제에 출품되기 전 상영 허가를 받았다가 나라 밖에서 호평이 이어지자 상영이 금지되었다. 영화제 수상 뉴스에서도 영화 제목이 으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아니 왜?
중국 내 상영 금지된 이유?에는 중국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중국 관객의 입장에선 영화 속 현실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영화는 실제 중국 트위터를 통해 알려졌던 사건들을 극화한 것이고, 영화 속 폐허가 된 건물이나 먼지가 날리는 도로 등은 늘 보던 풍경이다. 하지만 외국 관객들이 영화가 보여주는 중국의 민낯에 전율하자, 중국 당국은 상영을 금지했다. 은 현재 중국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임과 동시에 자본주의적 급성장이 초래한 인성의 피폐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 지구적 보편성을 지닌다.
영화는 느슨하게 연결된 네 개의 에피소드를 차례로 보여준다. 마지막에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장소를 찾는 것을 통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리는 구조를 취한다. 산시의 탄광노동자 따하이는 14년 전 촌장이 마을 공동 자산인 탄광을 자본가에게 팔아넘긴 것을 계속 문제 삼지만 매질과 조롱을 당할 뿐이다. 중앙당에 고발하려는 의지도 상세 주소를 몰라 좌절당하자, 그는 엽총을 집어든다. 충칭의 싼얼은 전국을 떠돌며 살인강도로 번 돈을 집에 부치지만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그의 살인에는 죄의식도, 자의식도 없다. 이창의 사우나 접수원 샤오위는 유부남과의 이별로 힘들어하던 중 졸부 손님에게 모욕을 당하자 단검을 빼든다. 둥관의 공장노동자 샤오후이는 친구를 다치게 한 책임을 피해 고급 유흥업소로 직장을 옮긴다. 부자 손님들에게 향락을 제공하는 여성을 잠시 사랑하지만 미혼모라는 말에 떠난다. 다시 이직한 그는 엄마의 송금 독촉과 앙갚음을 하러 온 친구를 접하자 불현듯 자살한다.
네 에피소드는 중국의 북쪽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내려온다. 산시의 에피소드는 사회주의적 가치를 믿고 사는 인물의 막다른 저항을 보여준다. 남쪽으로 갈수록 자본의 위세는 점점 강해진다. 이창의 여성은 돈으로 자존감을 깔아뭉개는 졸부를 단검으로 응징하지만, 둥관의 청년은 저항의 대상도 찾지 못한 채 자신을 응징해버린다. 영화는 각 인물을 동물에 조응시킨다. 매 맞는 말은 따하이를, 트럭에 실려 떠도는 소는 싼얼을, 눈요기가 된 뱀은 샤오위를, 비닐봉지 속 금붕어는 샤오후이를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의 자살은 금붕어의 방생과 맞닿는데, 어쩌면 감독은 둘을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자살이 곧 방생이라니, ‘하늘이 정한 운명’이란 뜻의 제목과 함께 지독한 비관주의가 아닐 수 없다.
영화는 리얼리즘적인 사회극을 근간으로 하면서 웨스턴과 무협의 표현을 무람없이 활용한다. 일상적인 장면들이 이어지다 잔혹한 폭력이 끼어들 때 느껴지는 충격은 마치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폭력 장면을 연상시킨다. 기타노 영화에서도 조폭이라는 장르적 장치가 존재했지만, 에서 폭력의 주체들이 그저 ‘인민’이라는 점이 놀랍다. 이것을 지금껏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함축적인 미장센을 통해 동시대 중국을 채록하려는 태도를 취해왔던 자장커 감독의 역동적인 장르 실험쯤으로 읽는 것은 모자란 해석이다.
자본의 각축장이 된 강호이 무협과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사회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초현실이 현실이 된’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기에 걸맞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형용모순을 수십 년째 끌고 가며 유례를 찾기 힘든 자본주의적 고도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중국, 농촌을 내부 식민지 삼아 끊임없이 유입되는 노동력에 기대 ‘세계의 공장’임을 자처하면서 ‘팍스 차이나메리카’라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 관료주의의 부패와 자본주의의 양극화라는 모순이 동시에 누적되고 있는 중국,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말의 의미가 지역과 계급을 가로질러 극한으로 펼쳐지는 중국,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이 항상 현실에 존재하는 중국에서, 초현실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더 무슨 소용이랴.
무협적 상상의 공간이던 강호는 자본의 각축장이 된 현실에 이미 구현돼 있다. 공항 건설 인부에게 ‘삥을 뜯고’, 사우나 여종업원에게 패악을 부리는 자본가는 웨스턴이나 무협의 장르 속 악당으로 손색이 없다. 사회주의 혁명군의 사열은 대만과 홍콩에서 온 변태 손님들을 위한 코스튬 쇼로 변질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사우나 접수원이 후진취안(호금전) 감독의 무협영화 에 등장한 여성 협객으로 변신한다 해도 황당하기는커녕 더 처절하게 느껴질 뿐이다.
은 광포한 매질을 당하는 말처럼 체제의 폭력을 계속해서 자신의 몸속에 누적한 자들이 어느 순간 폭력을 발산해내는 상황을 하이퍼리얼리즘 방식으로 재현해 보여준다. 경극에서 무고한 여인을 잡아들인 탐관오리는 묻는다. “정녕, 네 죄를 모르겠느냐?” 죄악으로 가득한 체제가 개인을 단죄한다. 아무도 말이 없다.
황진미 영화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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