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인디언(원주민) 어린이들이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3월10일치 1면 톱 기사 사진에는 한 그루 나무가 등장했다. 그 나무는 얼마 전 한 아메리칸 인디언 소녀와 그 아버지가 잇따라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무였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많은 아메리칸 인디언 청소년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 공동체에서 청소년 자살은 거의 찾기 힘든 일이었다. 인디언 부족들은 아동 양육에 뿌리 깊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부족은 어린 부족원들을 공동체 차원에서 책임지고 보호했으며, 따라서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생명을 존중하는 전통적 믿음도 한몫했다.
1992년 한국 자살률 10만 명당 8.2명그런데 청소년 자살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밝히고 정책 대안을 찾기 위해 미국 법무부는 최근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가을까지 활동할 예정인 이 태스크포스에서 초기에 발견한 중요한 원인은 사회적인 데 있었다.
인디언의 아동 보호 전통이 깨진 지점은 미국 정부가 시도한 서구 문명 동화 정책에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디언 어린이들은 보호구역에 사는 부모와 떨어져 있는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많은 경우 부모들의 반대에도 사실상 강제로 보냈다. 인디언들을 미국과 유럽권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시도였다.
이 학교들은 곧 학교폭력과 성폭력이 잦은 문제학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들 학교에 다니던 인디언들이 지금의 부모 세대다. 그 부모들의 가정에서는 끊임없이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벌어졌다. 그 부모 세대의 자녀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아이들의 자살을 조장한 셈이다.
지금 인디언 보호구역 거주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미국 전체 자살률보다 3배 이상 높다. 어떤 보호구역에서는 10배나 된다. 정확한 통계는 이번 태스크포스의 활동이 정리되면서 나올 예정이다. 다만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최근 발표한 통계를 보면 그 수치를 어림할 수 있다. 뉴멕시코주의 청소년(15~24살) 가운데 아메리칸 및 알래스카 인디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37.5명이다. 뉴멕시코 전체 평균은 22명이다. 미국 전체 평균 청소년 자살률은 10명 안팎이다.
그런데 이들의 자살률에 필적하는 사회가 한 군데 더 있다. 바로 한국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전체 자살률은 10만 명당 33.5명이다. 뉴멕시코 인디언 청소년에 맞먹는 수치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2.8명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인 것은 물론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수백 년 전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강제로 서구화된 경험이 있으며 격리 수용돼 살아가야 했고 그 때문에 미국 땅의 원래 주인이면서도 식민지 주민처럼 살아가야 했다. 산산이 부서진 부모의 삶을 보며 좌절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절망 속에서 자살을 선택했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 아메리칸 인디언들만큼 많이 자살한다. 도대체 이 나라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워싱턴의 한 강연에서 한국의 자살률 수치를 이야기했더니, 한 미국 싱크탱크 연구자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한국인은 문화적으로 자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자살을 명예롭게 여기는 전통이 있다든지….” 내 대답은 ‘아니다’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은 늘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숫자를 들여다보면 명확해진다. 1992년 한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8.2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3년 33.5명까지 수직 상승했다.
놀랍게도 이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모범적으로 성장한 나라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나라는 세계 12위 경제대국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은 60년 동안 100배 넘게 뛰어올랐다. 민주화가 이뤄졌고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기도 한다. 밀가루를 배급받아 살아가던 나라에서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만드는 글로벌 기업도 나왔다.
문제가 되는 1990년대 이후만 봐도 그렇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간신히 1만달러대에 진입했다. 지금은 2만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평화로운 선거를 통해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남쪽의 일방적인 우위로 결판이 났다. 시비 걸 만도 하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왜 자살하느냐고.
노동소득분배율 ↓ 실질임금 후퇴문화적 원인이 아니라면 사회·경제적 원인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소득 요인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분명 국민소득은 늘었다. 국가 전체로도 그렇지만 1인당 소득도 가계소득도 기업소득도 다 같이 늘어났다.
그런데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사이의 불균형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은 비슷하게 움직였다. 즉, 국민소득 전체가 늘어나면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은 비슷한 정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둘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특히 가계소득의 증가 속도는 점점 떨어져서 경제성장률보다 뒤처지는 정도가 갈수록 심해진다. 한국의 가계소득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의 격차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크다. 물론 가계 사이의 소득 격차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 이전에 기본적으로 가계 전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좌절감과 박탈감이 커졌을 것이다. 가계 중에서 가장 뒷줄에 서 있는 이들의 좌절과 박탈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자살률이 수직 상승하던 그 20여 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가계소득은 왜 이렇게 뒤처지게 되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노동소득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나라 전체로는 소득이 늘어났지만 그 소득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으로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민소득 가운데 일하는 이들에게 분배된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00년 이후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또 실질임금은 비슷한 시기에 사실상 정체 상태로 접어들었다. 특히 실질임금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노동생산성보다도 뒤처지게 된다. 즉, 노동생산성이 높아져서 생긴 몫이 일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벌어지는 양상과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이후 가계소득이 부진해지고,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지며, 실질임금이 정체 또는 후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왜 그 시기 이후 특히 이런 현상이 생겨났을까?
흔히 미국을 금융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기업과 시장이 주도하는 사회라고도 한다. 신자유주의의 출발지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이름은 1980년대 이후에 얻은 것이다. 그 이전 미국은 상당히 다른 사회였다.
워싱턴의 정책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딘 베이커 소장은 그의 책 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사람들이 미국 경제의 특징이라고 여기는 것은 대부분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뒤 보수적 정부 아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정책의 특징을 딘 베이커 소장은 ‘부의 상향재분배’라고 부른다. 시장이 저절로 생겨나고 확대된 게 아니라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적 노력의 결과로 생긴 새로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기업에 우호적인 규제가 도입되고 노동자에 적대적인 정책이 생겨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협상력이 낮아진 데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부 먹고 몸집 불린 기업 불가사리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이 모든 현상이 레이건 대통령이 펼친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결과라면,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생기기 시작한 1990년대에 어떤 정책적 노력이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려면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정책적으로는 그 시기에 일어난 시장화와 세계화, 탈규제화를 빼놓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90년대 초에는 자본시장 자유화가 추진됐고 주식시장에 외국인 투자가 시작됐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3당 합당이 일어났고, 이 정치세력은 세계화를 하나의 분명한 정책 지향점으로 삼았다. 1994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드라이브가 그 결과물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펼친 1996년의 OECD 가입과, 1997년 구제금융 이후 김대중 정부의 노동시장 관련 정책들까지 모두 비슷한 흐름이었다. 해고는 쉬워졌고 비정규직 채용은 일반화됐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의 역할과 힘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저환율로 값싼 제품을 마음껏 팔았고 인력은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두 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100조원에 육박한다.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4분의 1이나 된다. 가계소득에 견줘 크게 높아진 기업소득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면, 일부분의 답을 이 현금이 보여준다.
기업은 왜 이렇게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까?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다. 기업 스스로가 생존과 성장을 추구한다는 말은 사실 이론적으로 틀린 말이다. 과거 주류 경제학 이론이 맞다면 기업 스스로는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기업에 부과된 비용은 모두 다른 개인에게 전가되며, 기업이 벌어들이는 소득은 모두 다른 개인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기업의 생존과 성장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명제이며, 그 기업의 주주나 노동자 개인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명제다.
하지만 기업은 있다.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한다. 물론 그 유기체의 꼭대기에서 지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그들은 재벌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들과 운명을 함께하는 귀족 노동자라 불리기도 한다. 어쨌든 그 유기체는 지금 자라나는 국부를 먹고 몸집을 불려 원래 이 땅의 주인들에게 좌절감과 박탈감을 주는 불가사리가 돼가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종합하면 다다를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정도가 너무 심하니 경제 전체적으로 불길한 조짐이 보인다. 가계소득 정체가 성장 정체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임금 정체가 가계소득 부진으로 이어지고, 가계소득 부진이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소득 부진과 부채 부담으로 가계가 소비를 줄이게 되고, 내수 소비가 정체되면서 서비스 부문 성장이 정체되고, 이에 따라 전체 경제성장이 정체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소득 부진의 악순환이다.
어려운 이들이 더 어려워지고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아예 성장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 성장을 구가하는 기업들조차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즉, 기업이 돈을 벌면 사람들 주머니 안에 소득이 뿌려져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돈을 쓰면서 경제에 윤활유가 뿌려지고 나라가 앞으로 나아간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이익을 낸다면 삼성전자 주주만큼 삼성전자 제품을 만드는 데 기여하거나 희생한 노동자, 소비자, 협력업체 등의 소득도 늘어야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 청소년들의 자살을 다룬 는 이들의 절망 원인으로 ‘깨진 약속’과 ‘희망 없는 미래’를 들었다.
희망 없는 미래의 공포에 시달려한국인의 마음속에도 이들이 들어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지옥을 잘 참아내고 대학만 가면 광명의 길이 열린다고 믿었지만 그 약속은 깨졌다. 대학생들은 다시 입사지옥으로 향한다. 대학 시절 청춘을 반납하고 영어 공부와 학점 따기에 매진하고 취직하면 자유의 몸이 된다고 믿었지만 그 약속은 깨진다. 비정규직 처지라 늘 불안하고, 정규직에 진입해도 곧 정년을 맞는다는 사실에 불안하고, 직장을 벗어나면 나를 의지할 곳이 없다는 데 절망하고, 노인이 되면 병들고 가난에 찌든 비참한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희망 없는 미래의 공포에 시달린다.
자살률은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 생긴 그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어쩌면 20여 년 동안 한국의 정책이 이들을 자살로 몰아넣은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참담하다. 깨진 약속을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는 20년 뒤 우리 삶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일까?
워싱턴(미국)=이원재 경제평론가·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선임연구원 timelast@gmail.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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