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것은 어쩌면 거짓말?

‘전근대’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삶, 이거야말로 정상화돼야 할 ‘비정상’
등록 2014-02-05 17:52 수정 2020-05-03 04:27
1

1

“사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성질이 난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질로 지시하는 게 사장이지, 박스 나르라고 부른 퀵서비스 기사가 무슨 사장이냐는 거다. 그는 스스로를 배달할 물품을 맡긴 업체의 ‘임시 직원’으로 여겼다. 직업을 바꾼 뒤 그녀는 아침마다 신경 써서 화장을 한다고 했다. (전에 하던 식당 주방보조보다) “세련된 일”인 보험 세일즈하는 ‘개인사업자’에게는 단정한 외모가 필수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같은 고용 형태에 속한다. 사장님도 아니고 근로자도 아닌,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다.

“매니저에게 수시로 따귀 맞는다”

‘특수’라는 접두사가 붙었지만 흔하디흔하다. 정부기관의 규모 추산 중 가장 큰 것은 250만여 명이다. 취업자 10명 중 1명가량이 특수고용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조사에서는 55만 명가량이다. 이렇게나 편차가 큰 것은 특수고용 중 상당수가 법·제도적 보호의 그물에 포착되지 않는 ‘사회적 그림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임금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특정 사업주에 종속돼 일하지만, 그리고 임금노동자보다 평균소득이 더 적지만, 노동 과정에서 일부 자율성을 갖고, 월급이 아니라 건당 수당을 받는다는 이유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사회보험 가입률도 극히 낮다. 이렇듯 제도의 울타리 밖에 있으니 규모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특별한 삶의 이야기와 보편적 존재조건에 대한 분석을 담은 책이다. 이들이 저마다의 얼굴을 가진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이들을 그림자로 만드는 구조에 대한 해명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라는 것을 확신하는 필자들이 특수고용노동자 11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를 담았다. 1부에서는 면접에 응한 이들의 생애사와 생활세계를 육성을 살려 정리했고, 2부에서는 워킹라이프, 사회적 배제, 정체성, 착취구조 등을 키워드로 이들이 처한 구조적 조건을 분석했다. 책 사이사이, 동료 시민으로 우애를 담아 이들을 포착한 사진도 실었다.

“안개섬 피어오르는 새벽 고속도로 위”가 직장이라는 화물트럭 기사의 무덤덤한 대답을 들었을 때, 단지 멋진 은유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짜리 전화 받는 계집애도 무시한다”는 대리운전 기사의 한탄을 들었을 때는 개인 좌절감의 투사일 거라고 거리를 뒀다. “집에서 가져온 찬밥 덩어리를 숨어서 먹어야 했다”는 간병인의 호소나 “매니저가 기분이 틀어지면 수시로 따귀를 때렸다”는 골프장 캐디의 고발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있는 그대로 삶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긍정하게 됐을 때, 우리는 ‘전근대’(Pre-modern)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대박’의 희미한 가능성 아래서

노동기본권은 근대사회가 기반하는 보편적 합의다.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뭉쳐서 자신들의 요구를 외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게 사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업주가 정한 자의적인 규칙 아래 철저하게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경쟁하도록 강제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구조적 조건에서는 ‘대박’의 희미한 가능성이 단결권의 보편적 보장을, 그리고 간혹 폭력이 동반되기도 하는 인격적 지배관계가 법에 근거한 제한적인 사용종속관계를 대체한다. 단언컨대, 이는 정상화돼야 할 ‘비정상’이다. 우리 사회가 전근대로 후퇴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