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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는 지난해 가을 한동안 ‘동물의 왕국’으로 불렸습니다. 멧돼지, 야생 황소, 꽃게, 코끼리 이야기가 같은 날에 등장했을 정도니 그리 불려 마땅합니다. 겨울이 오자 ‘동토의 왕국’ 북한 꼭지가 ‘동물의 왕국’을 대체했습니다. 공론의 장을 파괴하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들며 시민의 일상을 벼랑 끝으로 내몬 국가권력의 전횡을 폭로해야 할 귀중한 뉴스 시간이 그렇게 날아갔습니다.
‘동물의 왕국’이나 ‘동토의 왕국’ 못지않게 심각한 건 ‘여왕의 교실’ 꼭지입니다. 뉴스 내내 주인공인 대통령은 뭔가를 읽습니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나머지 조연들은 그걸 받아적습니다. 정말 열심히 적습니다. 초등학교 받아쓰기 시간에나 어울릴 법한 지독한 성실성은 거의 종교의식 수준입니다. 이 무의미한 의식에 기자들은 매일 새롭게 혼을 불어넣습니다. 받아쓰기 화면이 흘러가는 동안 정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 이야기로 우리 귀를 채우는 거죠. 이 분위기는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까지 이어집니다. 외워서 질문하는 기자도, 각본 따라 대답하는 대통령도 뭐가 잘못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웃기더니 1년 이상 계속된 이들의 일관성에 슬슬 공포가 느껴집니다.
가뜩이나 소심한 저를 더 떨게 만드는 것은 그 획일성을 ‘비정상의 정상화’라 우기는 레토릭입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도, 다양성을 확보할 토론도, 자유와 정의를 외치는 광장의 군중도, 심지어 기쁨을 나누는 섹스도 그런 레토릭을 구사하는 분들의 눈에는 모두 비정상으로 비칠 뿐입니다. 자신의 생활양식만이 정상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그런 분들일수록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처럼 정작 바로잡아야 할 명백한 비정상에는 애써 눈을 감습니다. 획일성의 어두운 기운이 빠른 속도로 나라 곳곳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비정상적 프로파간다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우리들 누구도 안녕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안녕치 못한 친구들, 저와 똑같은 공포를 느끼는 소심한 분들과 함께 읽고픈 책이 입니다. 이 책에는 정혜신, 이명수, 박경신, 고종석, 유시민, 윤태호, 김조광수, 김연희, 고미숙, 유시주, 김대진, 신대철, 이충걸, 변영주, 김성희, 강기훈, 문부식, 공지영, 하종강, 이상호, 인재근, 천명관, 김종배, 박노자, 송인수, 김창남, 이진순, 박선숙, 김홍신, 유숙렬 등 서른 명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획일화된 우리 사회의 막다른 골목에서 담벼락 너머의 숨겨진 길을 찾아낸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입니다. 절망하는 친구들과 ‘다른 길이 있다’ 서로 격려하며 답답한 시대를 헤쳐가고 싶습니다. 이 책의 투박한 표지는 크기·색깔·제목 모두 시위용으로도 안성맞춤이라 남은 4년 내내 읽고 깔고 들기에 유용할 겁니다.
‘여왕의 교실’ 꼭지에 출연 중인 분들과는 최소한 이 책의 제목이라도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받아쓰기하느라 고생하는 걸 보는 시민들도 괴롭습니다. 지금은 2014년, 대통령께서 읽고 계신 그 종이를 미리 프린트해서 나줘주면 됩니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여러분의 책상 위에 놓인 전시용 노트북을 팔아 아무 프린터나 하나 사면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작은 변화에 도전해보세요.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열릴 거예요. 토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른 길이 있습니다! 조롱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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