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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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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를 삼켜버린 달

달이 두 개 된 이후 평온해져버린 <감자별>의 에피소드
시청자를 ‘소수정예화’하는 것은 교주의 계략인가
등록 2014-01-18 15:03 수정 2020-05-03 04:27
<감자별2013QR3>은 120부작이다. 초반 10부에서 기운을 소진해버린 느낌이다.tvN 제공

<감자별2013QR3>은 120부작이다. 초반 10부에서 기운을 소진해버린 느낌이다.tvN 제공

“그래서 민혁이는 아직도 어린아이야?” (이하 ·tvN 월~목 밤 8시50분, 김병욱 연출)을 하드에 담아 복음을 전하는 K에게 초창기 신자 L은 가끔 이렇게 묻는다. L은 최신의 말씀에 대해서는 “지금은 (다른 별에 빠져) 힘들다”란다. 배교 직전이다.

위 문장의 사정을 밝히자면 두 가지 면에서 설명이 주어져야겠다. K가 복음을 전파하게 된 이유가 첫째요, 이 복음을 받은 이의 믿음은 왜 삿되게 되었는지가 둘째다.

‘도를 아십니까’ 접근이 아니면 어찌 알현하랴

첫째의 이유는 K가 ‘감자별이 진리’라는 믿음이 널리 알려지지 못함이 안타까워서다.

TV 다시보기 서비스의 무료 해제가 3주 뒤로 바뀌면서 갈증 나는 이들은 우물을 파듯 유료 결제를 누르지만, 몇 갑자를 살다보면 ‘세상에 오지 않는 시간’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손으로 테이프 감는 권투선수 톤으로 말하자면 ‘다시보기는 시간과의 승부다. 그게 조금 뒤로 늦춰졌을 뿐이다’. 의 경우 ‘이 시간’이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1·2부 맛보기 외에는 모든 시청이 유료다. 이건 (이하 ) 등의 케이블 채널 드라마에도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는 계열 방송사 채널을 서핑하는 것만으로도 오전 중 최신 8부를 이음새 없이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는 왕성한 ‘재방송 사이클’을 보이는 데 비해 은 그렇지 않다. 버림받은 것일까. 아련한 연민과 함께 사명감은 솟아나게 마련. 맛보기를 통해 믿음의 세계로 빠져든 K는 공과 돈을 들여 ‘감자별 라이브러리’를 마련한 뒤 ‘도를 아십니까’ 식으로 주위에 접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식이 아니라면 누가 진리를 알현할 수 있을까. 가끔 본방 사수 부흥회도 집에서 개최하곤 했다. 그 포섭 신자 중에 L이 있었는데….

이제 둘째, 왜 이 믿음 깊지 못한 자 L은 사사로이 속된 질문만을 하게 되었나.

감자별은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지구가 배경이다. 10부 전까지는 이 지구에도 달이 하나였다. 소행성 하나가 궤도를 이탈해 지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지구는 재난영화처럼 소동에 휘말린다. 돌진하던 소행성은 지구에 위성으로 포섭되고 지구의 달은 두 개가 된다.

10부 전후 드라마 줄거리상에서도 요란스런 소동이 벌어진다. 납치범이 아들을 잃은 노수동(노주현) 가족이 있고, 콩콩토이의 토대를 만든 콩콩의 아이디어 고안자이지만 일찍 유명을 달리한 나세돌의 가족이 있다. 노수동은 대표이사직을 하버드대를 나온 잘난척 제왕 노민혁(고경표)에게 넘겨준다. 나세돌의 딸 나진아(하연수)는 고졸 학력이지만 노민혁의 ‘혁신’ 덕에 콩콩토이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철없는 나진아 엄마(오영실)는 피라미드 회사의 ‘루비 회원’이 되고 싶어 철거 뒤 옮겨갈 전셋집의 전세금을 날려먹는다. 노민혁은 2층에서 로비로 떨어져 기억이 일곱 살에 머무른다. 막장 소재 기억상실증에, 출생의 비밀도 섞여든다. 그것도 임성한 작가 식의 막강한 방식으로. 반회장파의 계획에 따라 심부름센터의 명을 받고 철거민 홍혜성(여진구)은 노수동의 집에 들어가는데, 홍혜성은 진짜 아들이다!

케이블에서 방송의 자유는 다른가

이 급박하던 궤도를 이 이탈한 것은 두 개의 달이 뜨고서다. 이전의 패기를 새로운 달이 흡수해버린 것 같다. ‘57분 교통정보’처럼 ‘57분 행성뉴스’가 나오는 것 외에(나중에는 이마저 사라졌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비일상 속의 일상’이라는 아이러니를 구축하기에는 재미가 반절인 에피소드가 양산된다. 벗어나려던 시트콤 생태는 굴레가 되었다. ‘일곱 살짜리 노민혁’은 한 살도 안 먹고, 나진아는 노수동씨네 차고를 벗어날 수가 없다. ‘혁신’을 외치던 노민혁의 실종과 함께 L은 신심을 잃었다.

김병욱 PD는 시청률에 목매지 않고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난 (그) 불안함이 코미디 요소라고 생각하고, 이런 걸 즐겨보면 어떤가 제시를 하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옛날에 비하면 소수인 것 같다.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이다보니 조금 편하다. 일단 공중파라면 시청률 두 자릿수가 안 나오면 곤란하다.”( 2013년 10월31일치) 독실자 K는 하드에 하루하루 에피소드를 채워가며 한숨을 쉰다. 김 PD가 바란 소수가 즐기는 특별한 재미는 아직 에 남은 걸까. 케이블에서 누리려던 자유의 정체는 무엇일까.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1월21일 청소년 출연자(여진구)가 수위 높은 키스신을 했다는 이유로 에 ‘사과 방송’을 명했다. 교세는 소수로 전락해버렸고 어처구니없는 명령에 분노할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진심을 몰라주는 세상 탓일까. 아님, 센티한 난장과 패기를 잃어버린 제작진 탓일까. 시청자를 소수로 만드는 것은 종말의 구원자를 선별하려는 교주의 계략인가. 이제 120부의 반절이 왔다. 종말에 K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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