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귀신 이야기가 사라졌다. 대신에 변형된 공포물이 채널을 점령했다. 로맨틱 요소를 섞어 말랑해진 (SBS), 판타지를 삽인한 (tvN) 등의 드라마가 전통적인 납량 특집물 대신 TV 편성표를 채워넣었다. 에서 흐느끼던 머리 풀어헤친 여인들, 등 뒤 거울에 모습을 드러내며 공포물의 기승전결을 논하던 심령들은 어디로 자취를 감춘 것일까.
등골 서늘한 전설이 쑥덕쑥덕
8월13일,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졌던 무더운 그날,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는 실시간 검색어로 ‘마성터널귀신’이 떠올랐다. 웹툰 작가 53명이 릴레이식으로 연재하는 네이버 웹툰 중 ‘마성터널귀신’이 업데이트되고 나서다. 매해 여름 TV로 찾아오던 류의 공포물 시리즈가 이제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찾아온다. 잠 못 드는 밤,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혹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듣던 등골 서늘한 이야기를 손에 쥔 작은 기계로부터 듣는다. 더 빠르고 섬뜩한 방식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집으로 가던 길, 버스가 터널에 진입하면서 실내가 컴컴해지자 졸음이 쏟아진다. 잠이 들었다. 꽤 오래 잤다 생각하며 다시 눈을 떴는데 여전히 터널 안이다. 고요한 버스 안, 다른 사람들도 잠들었나?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진 듯 쓰러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은 여기저기 알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뚝뚝. 무슨 일인가, 주인공이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만화를 보던 이들도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다음 장면으로 화면을 넘긴다. 끄그그극… 스피커에서 괴이한 소리가 나더니 끔찍한 얼굴을 한 아이가 피 묻은 칼을 든 채 화면을 붉게 채운다. 눈을 뜨니 주인공은 병실에 누워 있고, 의사와 경찰은 안전벨트 덕분에 살았다며 운전자를 비롯해 차에 탄 8명이 죽고 단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화면 밖의 누군가가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경기도 용인시 석성산에 내려온다는 전설이다. 석성산에는 광해군에게 역적으로 몰려 참수당한 일가가 매장됐다고 한다. 이 중에는 갓 말을 익힌 어린아이도 있었는데 반쯤 썩은 주검의 모습을 한 아이의 원혼이 수시로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이를 전해들은 광해군이 일가를 매장한 곳에 큰 바위를 올려두었고 그 뒤로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1994년 석성산을 지나는 마성터널이 개통되면서 바위가 치워지고…. 네이버 웹툰 중 ‘마성터널귀신’이 업데이트되고 독자들은 실제 경기도 용인시 석성산 기슭에 있는 마성터널에 진짜 귀신이 나타나는지, 그곳에 얽힌 이야기가 실제로 있는지 온라인상에서 한참 설왕설래했다. 급기야 한 언론은 1994년 마성터널 개통 이래 교통사고가 전국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잦은 곳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BGM, 플래시 등으로 공포 가중하는또 다른 이야기는 부산 장산에서 동물도 사람도 아닌 희고 매끄러운 긴 털을 가진 형상을 맞닥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한번 마주치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장산범’은 사람 흉내를 내 마주친 이를 꾀어낸 다음 그를 잡아먹는 귀신이다. 또한 7월29일 공개 당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네이버의 은 2011년 미스터리 단편, 2012년 지구 멸망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에 이은 공포 시리즈다. 두 해에 걸쳐 현대인들의 일상에 스며든 공포를 소재로 다뤘다면 올해는 장소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나는 전설을 통해 오싹함을 전한다. 그런가 하면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가 여름 들어 갑자기 웹툰 연재물 순위권에 진입했다. 지난해 15부작 기획물에서 올해 시즌2로 이어진 는 심령 현상을 겪는 사람들이 흉가 체험을 하며 심령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극복하려다 겪게 되는 잔혹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이나 모두 이야기의 짜임새가 아주 조밀하지는 않다. 하지만 특정 지명이나 인물이 진짜 있었던 일처럼 그려지는 전설의 특성이나 일상에서 한 번쯤 접해봤을 심령 체험담은 익숙해서 더욱 공포감을 조성한다. 공포소설이나 영화에서 체험한 클리셰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예측했던 반전 혹은 이쯤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올 것 같다는 기묘한 기대를 품으며 화면을 재빠르게 넘긴다. 이를테면 문 뒤에 무언가 무서운 것이 숨어 있다고 예고를 했는데도 문을 꽉 닫아버리기보다는 문틈을 들여다보고픈 심정으로. TV나 영화에 비해 혼자 보는 경우가 많은 공포 웹툰은 사소하고 디테일하게 개인의 심리를 자극하며 공포를 더한다. 작가들은 BGM을 깔거나, 갑작스럽게 그림이 튀어나오게 하는 플래시 화면 등 기술적 요소를 가미해 공포를 가중한다. 예컨대 의 한 편인 은 황병기의 국악곡 을 배경음악으로 썼는데, 은 1975년 연주회에서 이 곡을 듣던 한 여성이 공포심에 질려 연주회장을 떠나는 바람에 연주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한 음악이다. 이후 밤에 혼자 들으면 자살한다, 3번 들으면 죽는다는 둥 도시 괴담을 무성하게 낳은 곡이다. 여기에 더해 이야기를 짓는 이들은 늦은 밤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화면을 넘기고 있을 독자를 예측하며 “그거 알아? 3시33분에 귀문이라는 게 열려서 귀신들이 이승으로 나온다 하더라”( 중 )라고 한다거나, 꺼진 컴퓨터 화면에 심령이 비치는 장면을 그려넣는() 등 일상적 공포를 촘촘하게 배열한다.
짧은 시간에 강한 자극 요하는 독자들
온라인의 공간으로 이사온 무서운 존재들은 이렇게 인터넷을 타고 흐른다. 정해진 시간에 TV를 트는 것보다 짧은 시간에 쉽고 편하게 강한 자극을 얻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고 생각한 독자들의 요구에 부합해 공포 웹툰은 종이매체나 TV가 주지 못하는 기술적인 질감을 더하며 영역을 공고히 하는 중이다. 남은 더위를 물리치고 싶다면, 하룻밤 한 편씩 스마트폰 공포 웹툰을 정주행하는 것도 방법일 테다. 한낮에 학교나 사무실에서 더위에 지쳐 잠이 쏟아질 때도. 다만 불현듯 튀어나오는 괴기스러운 화면에 소리 지르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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