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에셀(1917~2013)의 마지막 저작 는 에셀 의 두 번째 자서전이다. 첫 번째 자서전 (1997·국내 출간 제목 )이 나온 지 15년 만이다. 그는 왜 새롭게 자서전을 썼을까.
어머니에게 배운 ‘감탄하고 사랑하는 훈련’레지스탕스로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싸우고 전후 유엔의 세계인 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하는 등 세계사의 뜨거운 순간마다 맨 앞줄에 서 있 던 그가 팔순을 앞두고 공적인 삶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수 순이었을 터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세상은 그가 열망하던 자유 와 존엄의 세계에서 점점 더 멀어져갔고, 90살이 넘어서도 살아남아 “지난 시절의 기억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핵심적 가치”를 소유한 거의 마지막 생 존자로서 그는 다음 세대를 향해 외치는 격렬한 메시지 로 전 지 구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거부하라”는 그의 강고한 신념을 기억과 함께 녹여낸 절절한 유언인 셈이다.
이 책에는 지칠 줄 모르는 이상주의자이자 행동하는 현실주의자였던 에 셀의 실천가적 모습뿐 아니라 꾸밈없는 인간적 모습이 담겨 있다. 알려졌다
시피 영화 의 실제 모델을 부모로 둔 그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보다 절대적인 자신의 열정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던 어머니 헬렌에게서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행복을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퍼뜨려야 한다”는 삶의 첫 번째 신념을 물려받았다. 그는 17살 때 자신보다 정확히 갑절의 나 이인 친구 엄마와 격렬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다음 만난 한 여성과 비밀 스러운 사랑을 나누는 등 분방한 애정 편력을 보였다. 동시에 사랑을 위해 “아들들을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던 어머니를 이해했던 것처럼 제2차 세계 대전 때 자신의 부재를 다른 남자로 채웠던 아내의 외도도 질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감탄하고 사랑하는 훈련”은 개인의 열정을 넘어 그가 평생 동안 품은 인류애의 바탕이 됐다.
“모든 실패에도 자신에게 믿음을 갖는 인생”허세 없는 자서전이 그렇듯 이 책 역시 빛나는 성취의 연대기이기보다 는 반복된 실패의 기록이다. 외교관 시절을 거쳐 국제활동가로 살아오면서 그는 언제나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국가·민족 간 이익이 첨예하 게 갈리는 지점에서 중재는 성공보다 실패로 돌아갈 때가 훨씬 많았다. 민 족 간 대살육이 벌어진 르완다 사태나 보스니아 내전 등의 중재에서 실패했 던 경험을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실패가 “나를 좌절하게 만 들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회복탄력성이, 그 모든 것에 도 불구하고 다시 길을 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 밝힌다. 이처럼 위기 때마다 그의 삶을 이끈 “용기와 회복탄력성”은 그가 “분노하라”보다 더 근본적으로 미래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라고 말 한다. 그래서 그가 철학자 장폴 돌레와 나눈 대화로 인용하는 한 문장은 이 책이 도달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결국 좋은 인생이란 우리가 축적해온 그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믿음을 갖는 인생”이다.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부 dmsgud@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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