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9일 저녁 9시 농림축산식품부 검 역정책과장에게 주한 미국대사관한테서 전 화가 왔다. “미국의 오리건주에서 재배가 금 지된 유전자조작(GM) 밀이 발견됐다는 사 실을 30일 새벽 3시(한국시각)에 발표한다.” 그게 통보의 전부였다. 미국 정부의 공식 보 고서나 성명서는 없었다고 농림축산식품부 는 박주선 의원(무소속)에게 밝혔다. 우리나 라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밀을 수입하며 오 리건주산 밀은 국내에 들어오는 미국산 밀 의 3분의 1을 차지하는데도 말이다. 2010년 이후 오리건주에서 우리나라로 수입된 밀 은 171만t에 이른다. 이번에 발견된 GM 밀 (MON71800)은 미국의 거대 농업기업 몬샌 토가 1998~2005년 미국 16개 주에서 100여 건에 걸쳐 시험재배해 승인을 추진하다가 부 정적 여론에 밀려 완전 폐기한 상품이다.
유전자조작작물(GMO)을 식품 원료로 사용했더라도 단백질로 최종 제품에 남아 있지 않으면 GMO로 표시할 필요가 없다. 콩기름의 경우 100% GM 콩으로 만들어도 GMO 표시 대상이 아니다. 100% 수입콩으로 제조됐음에도 GMO 표시가 없는 국내 제품 모습.탁기형
우리나라처럼 미국산 밀을 많이 수입하는 일본은 즉각 오리건주산 밀 수입을 잠정 중 단했다. 하지만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 리건주에서 들어오는 밀과 밀가루의 수입 단계 검사를 강화하기로 했을 뿐이다. 미승 인 GM 밀이 나오면 즉시 반송 조처하겠다고 했다. 앞서 2012년 4월 미국에서 광우병(소 해면상뇌증·BSE) 사례가 발생했을 때도 정 부는 통상마찰 소지가 있다며 검역 중단이 나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6월5일 식약처는 국내 주요 제분업체 7곳과 식품수입업체 2곳에서 보관한 오리건 주산 밀과 밀가루 샘플 40건과 5건을 수거 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승인 GM 밀 이 검출되지 않았다.” 식약처는 “미국산 밀에 대해 GMO 분석을 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 다”고 강조했다. “일본도 수입 중단에 준하는 조처를 했지만 GMO 검사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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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표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은 이렇게 반 박했다. “미국에서 미승인 GM 밀이 발견됐 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조 사하는 게 말이 되느냐? 미국이 자국 예산으 로 조사해 유전자조작 밀을 걸러낸 뒤 수출 하는 게 당연하다.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미 국산 밀 수입을 잠정 중단하면 그만이다.”
식약처의 검사법도 문제다. 보통 GMO가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에 섞여 있는지 확인 하려면 ‘공인검사법’이 필요하다. 검사법은 GMO 품목별로 제각각이다. GMO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검사법을 개발하는데, 이 정 보는 정부의 재배 승인을 받은 품목에 한해 서만 제공된다. 하지만 이제껏 GM 밀은 재 배 승인을 받은 것이 없다. 재배 승인을 받은 적이 없으니 검사법을 개발할 자료 자체가 없다. 미국 농무부가 검사 결과를 아직 발표 하지 못한 이유다.
그런데 식약처는 어떻게 검사를 했다는 것일까? 답은 GMO 유전자와 단백질을 확 인하는 식약처의 자체 검사법이다. 그러고는 앞으로 검사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미 승인 GM 밀의 샘플을 이제야 미국에서 건 네받았고 공인검사법도 통보받을 예정이라 서다. 공인검사법도 없는 상태에서 오리건주 산 밀을 전수조사하는 ‘쇼’를 감행한 이유는 분명하다. GMO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 되는 걸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GMO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GMO를 얘기하려면 먼저 용어를 정리해 야 한다. 널리 통용되는 GMO의 영문 이름 은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다. 우리 법률이 다르게 번역해 문제다. 식품위 생법은 ‘유전자재조합식품’이라고 부르며, 농 산물품질관리법은 ‘유전자변형농산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에서는 ‘유전자변형생물체’라고 한다. 언론 에서는 ‘유전자조작’이라고 쓰는 게 일반적이 다. 재조합보다 변형이, 변형보다는 조작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GM 식품 안전성을 승 인하는 식약처가 재조합을 고집한다. 어떤 용어를 쓰든지 사실은 모두 같은 것을 말한 다.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동식물 유전자 에 삽입해 종래 자연적 수정을 통해서는 발생하지 않던 새로운 유전자를 갖는 동식물 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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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5월19일 세계적 과학저널 에는 새로 만들어진 꽃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벨기에와 독일 연구진이 항생제에 저항하는 물질을 일부러 꽃의 유전자에 심 어 항생제 저항성을 가진 꽃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는 식물 종을 개량하려 면 여러 대에 걸쳐 식물을 교배하는 ‘육종’ 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육종은 생물분류학 에서 비슷한 종류, 즉 종(species)이나 속 (genus)에 속하는 식물끼리 인위적으로 교 배하는 방법이다. 방울토마토와 씨 없는 수 박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같은 절차 없이 새로운 식물을 단시일에 만들 수 있는 다른 차원이 탄생했다. 종과 속을 뛰어넘어 생물분류학상으로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종류의 유전자는 물론이고, 동물과 미생물 의 유전자도 인위적으로 삽입되는 GMO다.
30년이 지난 현재 GMO는 무섭게 컸다. 몬 샌토·듀폰·신젠타 등 다국적 종자·농약 회 사와 카길 등 곡물회사가 세계 농업을 쥐락펴 락할 정도다. 전세계 GMO 경작지는 1996년 170만ha에서 지난해 1억7030만ha로 16년 만 에 100배가 늘었다. 우리나라는 GMO 승인 건수로 볼 때 세계 5위다. GMO 재배국인 미 국·캐나다·멕시코를 제외하고 수입국만 따 지면 일본에 이어 2위다. 2012년 6월까지 국 내에서 승인을 거쳐 공식 유통되는 GMO의 종류는 일곱 가지다. 콩(대두)·옥수수·면화 (목화)·유채(카놀라)·사탕무·감자·알팔파 다. 이 GMO에 포함된 유전자는 모두 미생물 에서 왔고 기능은 두 가지다. 제초제를 뿌려 도 잘 견디는 기능(제초제 내성 또는 저항성), 그리고 작물을 해치는 병해충을 없애는 기능 (살충성 또는 해충 저항성)이다.
2011년 우리나라는 식용 GMO를 187만5 천t 수입했다. 모두 옥수수와 콩이다. 수입한 식용 옥수수 가운데 49%가 GMO였다. 식용 콩은 4분의 3(75%)으로 GMO 비중이 더 많
았다. 하지만 GMO는 옥수수나 콩 원래의 모습이 유지된 채 팔리지 않는다. 다양한 과정을 거쳐 가공된다. GM 옥수수는 대부분 전분(녹말), 그리고 전분으로 만든 감미료를 뜻하는 전분당(과당·물엿·올리고당 등)으로 바뀐다. 반면 GM 콩은 대부분(99% 이상) 콩기름 제조에 쓰인다. 국내 식용유 시장 점유율 상위 4개사가 GM 농산물을 싹쓸이하는 이유다. CJ제일제당·사조해표·대상·삼양제넥스가 지난 3년간 우리나라 GMO 수입량(565만7천t)의 86%(486만8천t)를 들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뿐만 아니다. GM 식품이 분명하지만 농산물이 아니라서 아예 GMO 수입량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김훈기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카놀라유를 사례로 들었다. “카놀라유는 유채의 한 종류에서 씨앗을 원료로 삼아 만든 식용유다. 이때 사용되는 유채는 1970년대 캐나다에서 식용으로 품종이 개량된 것인데, 80% 이상이 GMO다. 우리나라는 카놀라유를 씨앗이 아닌 기름 상태로 수입한다. 농산물이 아니고 가공식품이라서 정부는 GMO 통계에 명시하지 않는다.”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조작(GM) 밀이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견됐지만 우리 정부가 미국산 밀 수입을 중단하지 않자 소비자생활협동조합(iCOOP) 회원들이 지난 6월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박지호 간사는 6월1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방문했다. 콩과 옥수수가 포함된 제품에 GMO라는 표시가 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난 4월에도 100여 개를 조사했지만 “국내 제품에서 GMO 표시가 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박 간사는 말했다. 가끔 수입 제품에서만 ‘유전자재조합 옥수수 포함 가능성 있음’이라는 문구가 발견됐다.
GMO는 표시하지 않으면 일반 농산물과 마구 뒤섞여도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GMO 표시제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표시제가 시행되고 있다. GM 식품 자체에는 ‘유전자재조합(변형)식품’, GM 콩이 포함돼 있으면 ‘유전자재조합 콩 포함 식품’, 정확하진 않지만 포함될 가능성이 있으면 ‘유전자재조합 콩 포함 가능성 있음’ 등으로 표기한다. 이러한 GMO 표시를 왜 발견할 수 없을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불가피하게 섞여 들어간 경우다. 워낙 많은 GMO를 생산하고 있어서 유통 과정에서 일반 농산물에 GMO가 혼합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국가별로 ‘비의도적 혼입률’을 채택한다. 의도하지 않게 GMO가 섞인 경우 표시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혼입률을 3% 이하로 정했다. 2007년 이뤄진 GM 식품 조사 결과 전체 4521건 중 1057건은 GMO 성분이 3% 이내로 검출돼 GMO 표시 없이 유통됐다. 2011년 3월에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국내에서 GMO 표시가 없는 햄과 소시지 24개 제품 가운데 6개에서 GM 콩 성분이 나왔다고 밝혔지만, 비의도적 혼입률로 피해갔다. 유럽연합(EU)은 0.9%, 일본은 5%로 한다.
둘째, GMO를 식품 원료로 사용했더라도 가공식품은 표시 대상이 아니다. 현행 표시제를 보면, GM 농산물에 삽입한 외래 유전자 또는 그 유전자가 만든 단백질이 최종 제품에 남아 있지 않거나 검출할 수 없는 경우에는 GMO 표시를 할 필요가 없다고 돼 있다. 예를 들어 콩기름의 경우 콩에서 지방 성분만 뽑았기 때문에 유전자나 단백질이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100% GM 콩으로 만들었어도 GM 식품이라고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식품에 쓰인 원료 가운데 GM 농산물이 전체의 5순위에 들어 있지 않으면 역시 표시가 면제된다. 그 결과 GM 옥수수 전분으로 만드는 빵·과자·음료·스낵·소스 등에 GMO 표시가 없을 수밖에 없다. 옥수수차·팝콘·시리얼도 마찬가지다. 김은진 원광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지적이다. “옛 식품법은 주요 원재료를 함량이 많은 순으로 5가지 이상 표시하도록 했고, GMO 표시 기준도 이를 반영했다. 하지만 현재는 모든 원재료를 표시하도록 식품법이 바뀌었고 GMO 표시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GMO 재배국이라 표시제에 소극적이던 미국에서도 주별로 의무 표시제 법안이 통과되기 시작했다. 미국 버몬트주 의회가 GMO 표시법을 107 대 37로 최근 통과시켰다.
홍종학 의원(민주당)이 식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품의 주요 원재료 함량 순위와 잔류 여부에 상관없이 GMO가 첨가됐으면 모두 표시하도록 했다. EU와 동일한 방식이다. 또 정부 기관별로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GMO 용어를 ‘유전자변형식품’으로 통일하고 토종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를 위해 ‘무유전자변형식품’(GMO Free)도 명시할 수 있도록 했다. 홍 의원은 “소비자 주권을 지키는 게 경제민주화”라고 설명했다.
참고 문헌 김훈기 (2013), 송기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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