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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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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예언한다, 우경화된 일본을

현대미술 화폭에 도사린 일본인의 정치적 무의식… 잠재된 ‘피해자 의식’이 대지진 이후 ‘개헌’ 열망으로 표출
등록 2013-06-15 10:42 수정 2020-05-03 04:27

2013년 오늘 일본에서 전개되는 다각적 보수화의 경향에선 어떤 패턴이 드러난다.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망발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생한 현상이 아니란 이야기다. 거기엔 일본 사회에 장기 지속하는, 좀처럼 언어화되지 못하는 억눌린 욕망이 존재한다. 그것을 적시하지 않으면, 사태 파악이 어렵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결책을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문제를 일으키는 1차적 동력은 ‘개헌(일본 평화헌법 개정) 열망’이다. 그 열망의 본질은 ‘패전 콤플렉스’다. 무슨 뜻인지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해보겠다.

곳곳에서 물을 쏟아내는 폐허 도시를 섬의 이미지로 그려낸 이케다 마나부의 2005년 작 ‘방주‘(윗쪽)와 일장기와 태극기를 들고 선 일본과 한국의 여학생을 전쟁화의 화풍으로 형상화한 아이다 마코토의 1995년 작 ‘아름다운 깃발‘. 두 작품은 각각 ‘나쁜 장소’로서의 일본을 일신하고 새 출발 해야 한다는 ‘리셋의 욕망’(‘방주‘)과 “우리도 전쟁 피해자”라는 일본인들의 과거사 부정 욕망(‘아름다운 깃발‘)을 일찌감치 예고한 것처럼 보인다. 종이에 아크릴 잉크와 펜, 목재 패널에 표구. 89.5×130.5cm, 각각 두 폭으로 구성된 한 쌍의 미닫이 화면, 경첩, 목탄, 자가 제작한 물감, 아크릴릭. 각각 169×169cm<b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곳곳에서 물을 쏟아내는 폐허 도시를 섬의 이미지로 그려낸 이케다 마나부의 2005년 작 ‘방주‘(윗쪽)와 일장기와 태극기를 들고 선 일본과 한국의 여학생을 전쟁화의 화풍으로 형상화한 아이다 마코토의 1995년 작 ‘아름다운 깃발‘. 두 작품은 각각 ‘나쁜 장소’로서의 일본을 일신하고 새 출발 해야 한다는 ‘리셋의 욕망’(‘방주‘)과 “우리도 전쟁 피해자”라는 일본인들의 과거사 부정 욕망(‘아름다운 깃발‘)을 일찌감치 예고한 것처럼 보인다. 종이에 아크릴 잉크와 펜, 목재 패널에 표구. 89.5×130.5cm, 각각 두 폭으로 구성된 한 쌍의 미닫이 화면, 경첩, 목탄, 자가 제작한 물감, 아크릴릭. 각각 169×16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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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콤플렉스와 개헌 열망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발생하고 일주일 뒤인 2011년 3월18일, 미국 뉴욕 재팬소사이어티에서 마치 사태를 예견한 듯 보이는 괴상한 전시가 열렸다. ‘바이 바이 키티!!! 일본 현대미술의 천당과 지옥 사이에서’(Bye Bye Kitty!!! Between Heaven and Hell in Contemporary Japanese Art)라는 전시 제목도 섬뜩했지만, 전시된 작품들도 도호쿠 대지진과 지진해일,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를 연상시키는 것이 적잖았다.

큐레이터 데이비드 엘리엇(1949∼, 전 모리미술관장)은 전시를 3장 구조로 나눠 연출했다. 각 장의 제목은 ‘문제적 기억’ ‘멸절 위기의 본성’ ‘동요하는 꿈’으로, 1장은 전통과 제국주의와 패전의 기억에 연루된 작업을, 2장은 포스트휴먼과 사이보그적 사물·자연관이나 그에 기반을 둔 현실 인식에 대한 작업을, 3장은 불안정한 시대의 미래관이나 위험사회적 공포에 관한 작업을 선뵀다.

곳곳에서 물을 쏟아내는 폐허 도시의 섬을 그려낸 이케다 마나부의 세밀화 (Ark·2005)는 쓰나미에 휩쓸린 일본 항구 도시의 처참한 풍경을, 시오야스 도모코의 대형 종이 오려내기 작업 (Breathing Wall·2006)은 쓰나미로 발생한 거대한 소용돌이를 연상케 했다. 맥락상 부적절해 보이는 출품작은 한둘이 아니었다(이런 작품들은 ‘나쁜 장소’로서의 일본을 일신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는 ‘리셋의 욕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정말 의사·예언적인 것은, 전시 도록에 게재된 일본의 큐레이터 겸 언론인 오자키 데쓰야(1955∼)의 글 ‘헤이세이 시대(平成時代)의 일본 현대미술’이었다. 메이지 시대와 쇼와 시대를 비교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1941∼)의 도표를 차용한 그는, 전후와 헤이세이 시대를 비교해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음을 주장했고, 그를 근거로 묘한 진단을 내렸다. 전후 24년 만인 1968년 모노하- 서구의 논리에서 벗어나 일본 문화의 특질에 바탕을 둔 추상조형을 추구한 미술운동가- 가 탄생했듯, 2012년 새로운 미술운동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의 제안에 따라 전후와 헤이세이 시대를 대조하면, 한국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열망의 지형이 드러난다.

정치와 예술, 반복되는 패턴

예를 들어 보수적 일본인들이 취소해버리길 바라 마지않는 무라야마 담화(‘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는 헤이세이 7년인 1995년 8월15일에 발표됐는데, 보면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해 1월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발생했고, 3월20일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터졌다. 새로운 천황 아래서 맞은 탈냉전의 7년, 패전에 대한 심리적 책임감·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장기 불황으로 인한 세대적 불만이 꿈틀대던 해였다. 그런데 대지진과 사린 가스에 이어 이른바 ‘사죄 외교’까지, 이때 일본인들의 어떤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다.

전후 7년, 즉 패전 천황 아래서 7년째인 1951년에도 유사한 변화가 있었다. 미-일 안전보장 조약이 조인돼 전후 일본의 비군사화와 민주화가 이뤄졌고, 그 결과 4년 뒤인 1955년 이른바 ‘55년 체제’- 여당인 자유민주당과 야당인 일본사회당의 양대 정당 구도가 장기 지속하는 체제로 1993년 붕괴했다- 가 등장했다. 즉, (일본인의 처지에서 보면) 불길하게 강요된 ‘새 출발’의 해였던 것이다.

만약 이런 패턴 예보를 믿는다면, 전후 24∼25년(1968∼69) 전학공투회의(전공투) 실패 이후 아방가르드의 보수화가 이뤄졌으므로, 헤이세이 24∼25년(2012∼2013) 이후 현대예술도 오른쪽으로 확 쏠릴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할 수 있겠다. 실제 일본 최고의 문화평론가 아즈마 히로키(1971∼)가 저서 을 통해 ‘네트워크의 정보 수렴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동물화한 대중의 정치적 무의식으로, 논쟁-없는-숙의-민주주의를 이루자’며 의사·파시즘 담론을 설파한 것은 이미 2011년의 일이다. 이미 일본 문화예술계의 보수화는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당면한 문제는, 오는 7월21일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자민당·일본유신회·우리모두의당 등이 의석의 3분의 2를 확보할지, 혹은 과연 일본 시민사회는 개헌을 저지할 수 있을지 하는 점이 아닐지 모른다. 거꾸로, 문제는 개헌 성공 이후가 아닐까?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개헌에 성공하지만(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국민이 바라는 일신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쟁화풍에 담긴 정치적 욕망

음울한 비전을 예언처럼 제시한 전시 ‘바이 바이 키티!!!∼’에서 한국인의 눈을 사로잡은 그림은, 아이다 마코토의 (Beautiful Flag-War Picture Returns, 1995)이었다(작품 제작 연도에 유의할 것). 작가는 제국주의 시절의 전쟁화나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연상케 하는 화풍으로 폐허에서 각각 일장기와 태극기를 들고 서 있는 일본 여학생과 한국 여학생을 그렸다. 이는 마치 2013년 5월의 상황- “우리도 전쟁 피해자인데!”라는 식의 억울한 감정을 바탕으로 한 일본인들의 과거사 부정 욕망과 그를 대변하는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 릴레이- 을 일찌감치 예고한 것처럼 보인다.

자, 훗날 우리는 2011년의 대지진이 동아시아에 어떤 변화를 촉발했다고 평하게 될까? 미리 문제점을 파악해 대안을 도출하는 일은 불가능할까? 한·중·일 삼국 간에 다각적 대화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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