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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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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동네 이야기 지도를 아시나요

오로지 지도 제작자의 주관에 따라 그리는 ‘아마추어 서울’
“가이드맵 따라 걸으며 각자 자기만의 무엇을 발견하는 게 재미”
등록 2013-04-26 20:45 수정 2020-05-03 04:27

“손님 도착했는데요.” 택시를 타고 서울 한복판을 향해 달렸다. 스마트폰을 향해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드니 키 낮은 집들이 촘촘히 들어선 골목 가운데 도착해 있었다. 큰 도로와 건물 뒤로 물러선 골목 안에 옛 도시의 정취가 고스란히 고여 있는 동네가 있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오래된 한복집과 칼국숫집, 점집이 낡은 한옥 사이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그 동네에서 디자이너 김지은(29)·유혜인(29)씨는 지도를 그린다.
‘아마추어 서울’은 객관적이지 않은 도시 지도다. 오로지 지도 제작자의 주관에 따라 지역이 선정되고, 지표가 새겨지고, 동네의 열쇳말이 정해진다. 지도 제작자들은 크고 번쩍이는 건물, 오래된 유물 등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는 동네, 할 이야기가 없는 듯하지만 사실 말을 시작하면 한없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올 것만 같은 동네에 유달리 애착이 크다. 스스로 ‘서울을 여행하는 서울 사람들’이라 부르는 지도 제작자는 총 4명이다. 4월17일 작업실에서 을 만난 김지은·유혜인씨와 대학 동기인 조예진·김은영씨가 각각 미국과 서울의 다른 일터에서 머물다 지도를 만들 때면 힘을 더한다.

여행자가 된 서울 주민이 만든 주관적 동네 지도 ‘아마추어 서울’ 1·2호와 지도 패키지에 함께 실린 동네 사진으로 만든 엽서들.

여행자가 된 서울 주민이 만든 주관적 동네 지도 ‘아마추어 서울’ 1·2호와 지도 패키지에 함께 실린 동네 사진으로 만든 엽서들.

붉은 벽돌 건물 밖 의자를 보며 상상해보라

지도 제작자들은 가이드북에서 시시콜콜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만 잔뜩 모아 지도 안에 새겨넣는다. 2009년 11월 서울 종로구 원서동과 재동에 ‘옛 서울’이란 이름을 붙인 ‘아마추어 서울’ 1호가 발간됐다. 맛집, 유적,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공간은 그 지도 위에 없다. 다만 지도를 만드는 이들의 눈에 띈 제각각의 지표가 지도에 새겨졌다. 예컨대 지도 제작자는 붉은 벽돌 건물 밖 홀로 놓인 의자 따위에 주목한다. 그곳에서 누군가 러닝셔츠 바람으로 앉아 아침 신문을 펼쳐보지 않았을까, 담배 한 대 피우며 타는 속을 달래지는 않았을까 상상한다. 지도를 따라 그 의자 앞에 서서 다른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은 지도 이용자들의 자유다.

2012년 11월에 발행한 2호는 제작자들의 작업실이 있는 종로구 익선동을 담았다. 단층 한옥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모여 있는 익선동은 1920~30년대 국내 최초로 주택업자가 필지를 구입해 집을 여러 채 지어 분양한 근대식 한옥촌이다. 북촌 지도를 들고 한옥 탐방하러 삼청동과 가회동으로 관광객이 몰려가는 사이 이들은 왜 익선동에 주목한 걸까. “북촌 관광 지도를 보면 삼청동·팔판동·가회동 등에 대한 정보는 자세히 나와 있는데, 익선동 부분만 구멍처럼 뻥 뚫려 있었어요. 익선동은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진 않지만 생활의 역사가 담긴 곳이에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정서를 읽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전 작업실이 있던 홍익대에서 출발해 미아리까지, 이틀 동안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아 걷고 걷다 익선동을 발견했다는 김지은씨의 말이다.

커다란 지도의 뒷면에는 제작자들이 주목한 동네의 정서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하지만, 사실 시작은 언제나 백지다. “출발은 항상 무계획이에요. 여러 동네를 후보에 올려놓고 목적 없이 돌아다녀요. 그런데 같은 공간이라도 각자 다니다보면 서로 보이는 것이 다르거든요. 만나서 뭘 봤나, 어떤 정서를 느꼈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지역에 따라 리드하는 사람이 생겨요. 그 사람을 중심으로 지도를 만들어나가죠.”(김지은) 최근 발행을 앞두고 있는 3호는 봄이라는 열쇳말에서 출발한 결과물이다. “봄이면 뭘 하고 싶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봄이 되면 다른 때보다 더 걷고 싶지 않을까, 걷고 싶은 서울… 이런 식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다 각자 경험을 얘기했죠. 이런저런 얘기 끝에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를 들여다봤어요.”(유혜인) 그렇게 3호에 싣기로 정한 공간이 서대문~독립문이다. “두 공간 사이에 난 큰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걸으면 14분이 걸려요. 오히려 지하철이 더 오래 걸려요. 갈아타야 해서 24분 정도 걸리거든요.”(김지은) 지도 제작자들은 10분짜리 큰길의 밋밋함과 24분짜리 지하철 코스의 뻔함 대신 1시간15분이 걸리는 루트 두 개를 개발해서 소개한다. 봄길이 3호 지도의 큰 주제라면 ‘타임슬립’은 부주제다. 백범이 기거했던 경교장, 홍난파 가옥 등 역사적 건축물이 곳곳에 스며든 거리에서 여행자들은 봄의 생동과 “세로로 축적된 것들이 가진 정서”의 화음을 들을 수 있을까.

발행 뒤 여행자와 만나는 이벤트

지도를 발행하고 나면 제작자와 여행자가 만나는 작은 이벤트도 벌인다. 2호 익선동을 발행한 뒤에는 지원자를 모아 지도를 들고 동네를 돌고, 동네에서 시조하는 분에게서 시조를 배우고, 주민들에게 이름난 맛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5월 중에 3호 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설명하며 유혜인씨가 덧붙였다. “가이드맵은 큰 틀만 제공할 뿐 각자 자기만의 무엇을 발견한다는 것이 재미있어요. 사람들이 제각기 다니면서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르거든요.”

아직 수익은 0원, 돈을 벌기보다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지도를 만든다는 이들은 앞으로 매 계절 지도를 그리는 것이 목표다. “10권, 20권 가이드북이 주목하지 않는 작은 동네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담고 싶어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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