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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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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 없이 ‘을’이 된 청춘

인디다큐페스티발 <울면서 달리기>와 <청춘유예>에서 본 청춘의 얼굴… ‘갑’이 되고픈 청년들의 서바이벌과 ‘을’이 되고 만 청년들의 반전극
등록 2013-03-29 19:27 수정 2020-05-03 04:27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청춘은 없었다. 지난 3월21일부터 열린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되는 두 개의 다큐멘터리를 들여다보니, 청춘은 취업을 위한 불편한 유예의 시기로 대체돼 있었다. 와 는 불안한 취업 전선에 선 다른 두 청년의 모습을 담았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보는 청춘의 얼굴. ‘청춘 유예’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한 대한민국 20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디다큐페스티발 제공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보는 청춘의 얼굴. ‘청춘 유예’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한 대한민국 20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디다큐페스티발 제공

오디션 프로그램 비슷한 ‘명품 동아리’

의 주인공들은 영화 제목과 달리 누구도 울고 있지 않았다. ‘유능하고 진취적이며 글로벌한 인재’를 희망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유독 깔끔하고 세련되며 밝은 인상이다.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는다.

영화는 한 사립대학의 경영학 학회에 대한 내밀하고 소소한 기록이다. 연세대 세계경영트랙(GMT) 학회는 학생들 사이에서 ‘명품 동아리’로 알려진 곳이다. 학회에 들어가려면 영어면접과 에세이, 성적증명서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신 인턴은 물론 사회생활에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2012년 GMT 신입회원들은 “여기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미 리더가 된 것 같은 설렘”으로 학회 생활을 시작한다. 취업 때문에 사회 진출도 미루는 대학 5학년. 그 점을 생각한다면 매일 낮에는 인턴이라는 이름의 비정규 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학회 활동과 준비에 쫓겨 연애도 잠도 늘 부족한 생활을 1~2년 더 감당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만의 모임에서도 양복을 갖춰 입고 나와 영어로 대화하며 게으른 학우들을 질타하는 분위기는 어쩐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닮았다. 에 나오는 대학생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만큼이나 아슬아슬한 세상을 늘상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진행하는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에서 직업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참가자는 바로 “넌 해고야!”라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내쫓긴다. ‘밖’은 어디인가.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취업이 아니다. 어디에 취업할 것이냐며, ‘리더급’의 인생 경로를 미리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느냐는 점이 중요하다.

‘열정 노동’ 대신 목소리를 높이다

다큐멘터리에서 GMT 학회장에겐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고 외국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그다음엔 국제기구에서 일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연거푸 5번이나 입사시험에 떨어지자 회의가 밀려들었다. “내 진짜, 진짜, 진짜 이야기가 없었던 거야.” 그러나 학회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 순간에도 관객은 문득 의심스러워질 수 있겠다. 그는 이 살벌한 취업 전선에서 정말 내리기로 결심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 서바이벌에서 ‘진정성’이라는 전략을 찾은 것은 아닐까?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뭔가를 해 보이라고 계속 요구하는” 시대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짜 내 이야기보다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사는 것은 미래를 위해 언제나 현재를 희생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훨씬 현실적일지 모른다.

출연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반값 등록금 시위하다가 정작 취업을 못하면 앞으로 영원히 자기의 생각을 실현할 수 없는 위치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영화제에 출품된 는 그런 사다리에서 밀려나고 만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30대 청년들을 대변하는 세대별 노조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피자를 배달하거나 콜센터, 커피숍, 편의점에서 일한다. 돈이 없어 대학을 중퇴한 청년은 처음에는 같은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서울대 뒷산에 올라가 긍정의 힘을 끌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래봤자 “20대는 을”이다. 누가 갑인지도 모른 채 자존감에 수없이 상처를 입을 뿐이다. 의 주인공들은 ‘청춘앓이’나 ‘열정 노동’ 대신 목소리를 높이는 쪽을 택했다.

시급제라고 하더라도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했으면 주말 하루는 쉴 권리가 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쉬는 날에 대해 법으로 정해진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카페베네에서 일하던 김진수씨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프랜차이즈 대표를 상대로 주휴수당을 청구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주휴수당이 없어서 월세를 못 내는 또 다른 김진수, 휴대폰 요금이 밀린 또 다른 김진수”를 위해서 한 일이란다. 그리고 카페베네의 변화를 끌어냈다. 1년 넘게 청년유니온을 따라다닌 끝에 카메라는 을들의 희망을 발견한다. ‘30분 이내 배달’이라는 피자업계의 마케팅 경쟁을 막아선 것도 그들이다.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조 설립도 인정되지 않았지만 19번째 노조신고서가 인정받았다. “최저임금을 받고 자유이용권처럼 막 쓰이는 세대”의 반격 펀치는 우리 사회 곳곳의 급소를 명중시켰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에서 후배들을 찾아온 한 선배는 말끝을 흐린다. “우리 때는 넘어지고 역전하고 다시 사회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너희들은….” 우리들 대부분은 누구의 청춘을 편들거나 응원할 자격이 없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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