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로 미국 시민 3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뒤 ‘테러와의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1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시민들이 죽었다. 오사마 빈라덴 암살작전에 참가한 대원들은 발단만큼이나 참혹했던 10년을 생생히 복기한다.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한 장면. 영화사 하늘 제공
2011년 5월1일 자정에서 30분을 넘긴 시각, 미군 헬리콥터 두 대가 파키스탄 항공을 향해 날았다.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목표물까지 45분 거리. 작전요원 24명은 그날 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암살하고 돌아왔다. 22시간 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늘 정의가 이루어졌다”며 빈라덴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정의의 사도, 어쩌면 암살자
미국은 자신들이 겨눈 복수의 총구를 정의라고 불렀다. “나는 2001년 9월11일, 오키나와 병사 숙소의 TV를 통해 9·11 테러 현장을 본 뒤 이 작전에 나가기를 줄곧 꿈꿔왔다.” 를 쓴 마크 오언(가명)의 고백이다. 의 미국 중앙정보국(CIA) 정보분석관은 “10년 동안 오직 빈라덴으로 통하는 길, 그것만을 생각했노라”고 말한다. 오사마 빈라덴 암살작전을 그린 영화 와 책 (길찾기 펴냄)가 나란히 한국 땅을 밟는다. 영화는 10년 동안 그를 추적하던 한 CIA 분석관의 눈으로 알카에다 지도자가 살해당하는 과정을, 책은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미 해군특수부대원의 증언을 담은 것이다. 빈라덴의 사망이 발표되던 날, 거리에서 환호하던 미국 시민들은 이들을 ‘얼굴 없는 영웅들’이라고 불렀다. 정의의 집행자, 혹은 슈퍼히어로, 어쩌면 암살자. 테러와의 전쟁을 최전방에서 수행해온 이들의 숨가쁜 복기가 시작됐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영화 는 전쟁물의 일관된 시점을 흔드는 영화다. 영화는 9·11 테러 당시 죽어가는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던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전쟁이다. 어떤 추상적인 갈등도 끼어들 자리가 없다.
‘빈라덴 찾기’를 위해 사람들을 고문하는 정보분석관들은 가학적인 이도, 도덕성을 상실한 이도 아니었다.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쫓기며 자신의 임무 완수를 기원하는 평범한 인간들일 뿐이다. 영화는 미국의 진보적 평론가들로부터 고문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이유로 아카데미상 후보 선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 소문086이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는 고문에 대한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은 죄수들을 고문하지 않습니다. 제가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확언했던 그 순간도 고문은 있었다는 것을 담담히 전할 뿐이다.
그들의 전쟁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우리는 어떤가. 공교롭게도 의 고문 기술은 한국 영화 에서의 밀실 묘사와 겹친다. 물을 퍼붓고 잠을 재우지 않고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며 목에 개줄을 매달아 끌고 다닌다. 대학을 졸업하고 파키스탄 CIA 지부에 파견된 주인공 마야는 체포된 알카에다 사람들이 고문당하는 장면을 보며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다가 나중에는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힌다. 10년의 세월, 동료는 죽고 선배는 떠났다. 를 쓴 전직 특수부대원도 여러 전투를 거치며 자신이 얼마나 노련해졌는지를 되돌아본다. 이들은 ‘미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자발적으로 총을 든 사람들이다. 영화는 마야의 개인적 사연을 일절 들추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가 왜 빈라덴을 죽이겠다는 목표에 그토록 매달렸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비글로 감독은 전작 에서 당위로 시작해 전쟁 그 자체에 중독되는 인간을 그렸다.
이뤄지지 않는 목표, 더 커져가는 불안. 미국의 시점에 붙잡혔던 관객은 영화 말미쯤에 다시 전환을 겪는다. 의 구체적인 묘사를 따르면, 빈라덴을 암살하던 날 밤 그들은 거침없이 문을 폭파했으며, 남편을 막아서는 아내에게 난사했고, “빈라덴 아들의 면상에 총알을” 퍼부었고, 빈라덴이 총을 들지도 못했지만 그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일상을 뒤흔드는 폭탄 테러로 위협적이기만 했던 적은 미군의 막대한 화력 앞에선 무력할 뿐이다. 불안에 쫓기던 이들에게 다른 종류의 갈등이 찾아든다.
주검을 확인하자 터져나온 눈물의 의미
도덕적 갈등도, 개인적 동기도 없이 목표를 위해 달려온 영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와 는 상당 부분 겹치며 실제 인물들에 대한 뚜렷한 그림을 그려낸다. 에는 5년 동안 빈라덴 추적에 매달린 CIA 여자 요원이 나온다. 빈라덴의 주검을 확인한 요원은 영화에서처럼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특수부대원은 그녀가 자신의 목표를 드디어 이루었다는 감격과 회한으로 울었다고 생각했고, 영화에서는 좀더 복잡해 보인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의 자세로 몸을 웅크린 마야는 여전히 불안정한 세계를 직시하며 눈물을 흘린다.
비글로 감독은 한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모든 전쟁을 비극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비평하려면 실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경험하는 것이지요. 전쟁을 직면하도록 강요받는 사람들 말이에요. 이 작품은 전쟁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그 핵심을 관찰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의 보도에 따르면, 의 모델이 됐던 실제 CIA 여자요원은 진급에서도 누락됐다고 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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