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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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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내서 “난 숫총각이 아니에요”

장애인의 성을 다룬 영화 두 편… ‘결혼은 연애의 완성인가’ 질문하는 <나비와 바다>, 섹슈얼리티가 보편적 인권임을 일깨우는 <세션…>
등록 2013-01-25 20:36 수정 2020-05-03 04:27

영화 가 논쟁을 던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낮다. 그나마 등이 대안적 장애인 영화로 손꼽힐 만하다. 는 장애인에 대한 성적 착취를 고발해 경종을 울렸지만,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은 장애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자기결정권을 반문했다. 는 중증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를 위해 최소한 무엇이 가능한지를 탐문한다. 다큐멘터리 은 서로 의지하며 사는 장애인들의 연애와 결혼을 당연한 권리이자 모델로 제시한다. 논의를 진전시킬 두 편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했다. 국내 다큐멘터리영화 와 할리우드에서 온 영화 이다.

장애인의 성을 다룬 두 편의 영화는 장애인의 성 또한 비장애인처럼 아름답다는 서정시를 읊는 대신, 그들이 성적 권리를 손에 쥐기 위해 맞서야 하는 권력과 자기결정의 문제를 드러낸다. 영화 (왼쪽)와 (오른쪽 위·아래). 시네마달 제공, 프리비젼 제공

장애인의 성을 다룬 두 편의 영화는 장애인의 성 또한 비장애인처럼 아름답다는 서정시를 읊는 대신, 그들이 성적 권리를 손에 쥐기 위해 맞서야 하는 권력과 자기결정의 문제를 드러낸다. 영화 (왼쪽)와 (오른쪽 위·아래). 시네마달 제공, 프리비젼 제공

가부장적 결혼의 4가지 꼭짓점

는 이 던진 감동의 지점에서 새로 출발하는 영화다. 이 보여주듯, 장애인들의 연애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져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은 가장 이상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는 묻는다. ‘결혼이 연애의 완성이자 행복의 시작이라고 진짜로 믿는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연애와 결혼은 다른 것이며,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가족을 만들려는 기획이자 가부장적 질서가 작동하는 제도라고. 영화는 묻는다. ‘장애인의 경우라고 그 답이 다를까?’

우영과 재년은 8년째 연애 중인 뇌병변 장애인 커플이다. 우영은 다큐멘터리를 찍을 정도로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언어장애도 거의 없는 편이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혼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있다. 재년은 혼자 걸을 수 있고 요리나 집안일도 할 수 있지만, 언어장애로 의사 전달이 조금 어렵다. 우영과 재년은 부산과 경남 양산에서 각자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 우영은 아버지가 폐암으로 입원하자, 홀로 남겨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절감한다. 우영은 자신의 일상을 보살펴줄 재년과의 결혼을 서두른다. 처음 청혼을 받았을 때는 설레었지만 막상 결혼 말이 오가자 겁이 나는 것이 재년의 마음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의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수와 결혼식 문제만 이야기한다. 우영의 어머니는 깐깐한 어투로 재년이 우영을 돌보기엔 체력이 약하고 언어장애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가부장적 결혼의 4가지 꼭짓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남자는 일상을 챙겨줄 아내를 원하고, 시어머니는 자신이 해왔던 엄마 역할을 대리할 며느리를 원한다. 친정어머니가 딸에 대한 책임을 덜기 원하면서 여자는 남자의 구애에 대한 ‘기대 반, 등 떠밀림 반’으로 결혼을 수락한다. 막상 결혼의 과정으로 들어서면 여자는 발언권이 없다. 생리주기를 피해 결혼 날짜를 잡자는 이야기까지 남자가 한다. 결혼을 미루고 싶어진 재년은 외마디를 내뱉지만 눈총만 받는다. 대낮에 성교육 비디오를 틀어놓고 장애 남성을 만족시키는 법을 숙지하는 재년의 표정에서 성적 감흥을 찾아보긴 힘들다. 마침내 결혼식. 복종을 강조하는 주례사와 재년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읊어주는 우영의 긴 당부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장애인의 결혼 역시 자유로운 개인 간의 정서적 결합이 아니라, 능력과 역할과 권력에 따른 가족 포획 장치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은 1988년 미국의 실존 인물 수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마크 오브라이언은 6살 때 소아마비로 목 아래 전신의 운동신경이 마비된다. 호흡근육도 마비돼 주로 호흡보조기가 딸린 침상에 누워 생활하지만, 그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가 활동할 수 있는 건 활동보조인 덕분이다. 마크는 새로 고용한 활동보조인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지만, 그가 청혼하자 활동보조인은 떠나버린다. 마크는 전신의 운동신경이 마비되었지만, 감각신경은 모두 살아 있으며 발기도 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고민하던 마크는 섹스치료사를 만나 성적 체험을 해보기로 한다.

연애,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섹스치료사 셰릴은 6단계의 ‘세션’을 제시한다. 우선 셰릴은 그의 옷과 몸을 칭찬함으로써 신체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해준다. 또한 마크가 가족의 희생에 죄의식을 느낀다고 진단한 셰릴은 그의 죄의식을 덜어주려 위로하며 어린 시절의 원형적 기억 같은 성적 감흥을 일깨운다. 번번이 삽입도 되기 전에 사정이 일어났지만, 몸의 긴장을 풀고 감각에 온전히 집중해 삽입에 성공한다. 6번의 세션을 다 채우기 전에 동시 오르가슴을 느끼는 일까지 성공한 두 사람. 이들 사이에 사랑의 교감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셰릴은 전문가답게 떠난다.

마크는 깊은 공허감에 빠지지만, 절망의 바닥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과 연애가 이루어진다. 이는 물론 우연이 아니다. 그가 “난 숫총각이 아니에요”란 말을 던질 수 있었던 건 대단한 용기다. 이는 성적 체험을 통해 ‘나도 섹슈얼리티의 주체’라는 자긍심이 생긴 덕분이다. 영화는 장애인의 성적 권리와 능력을 당연하게 환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에게 성적 체험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일깨운다. 즉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섹슈얼리티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인격의 문제임을 감동적으로 깨우쳐준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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