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직도 CD 사는 사람들

음원보다 음반을, 레코드보다 공연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경제공동체, 레코드 폐허·레이블 마켓·가을걷이
등록 2013-01-05 00:25 수정 2020-05-03 04:27

12월 21~22일, 서울 홍익대 앞에 있는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2012 홍대 앞 다시 보다-레코드 폐허’란 행사가 열렸다. 또 하루 간격으로 KT&G 상상마당에서는 ‘레이블 마켓’이 시작됐다. 2012년 11월에는 ‘서울 레코드 페어’의 ‘가을걷이’가 열리기도 했다. 이 행사들은 국내외에서 발매된 음반을 전시ㆍ판매하는 행사다. 행사별로 특징도 다르다.
아이돌 음반 시장과 인디 음반 시장
2012년에 6회를 맞은 상상마당의 ‘레이블 마켓’은 국내 인디 레이블들의 음반을 전시·판매하고 공연과 워크숍, 방송 등의 부대행사를 준비한다. 기간도 2개월에 가깝고, 공연이나 대담 등은 무료로 진행된다.
서울레코드페어조직위원회가 준비하는 ‘서울 레코드 페어’는 2011년 11월19일에 1회를 열었다. 단 하루 동안 열렸지만 국내에서 처음으로 LP를 메인 테마로 삼아 성공적인 결과를 내놨다. 유료 행사로 관객은 입장료를 내고 장내에 들어간 뒤 음반 구입과 공연 관람을 할 수 있다. 판매자들도 레이블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들도 참여해 중고 음반을 판매할 수 있다. 절판됐거나 국내에서 쉽게 구하지 못하는 음반을 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가을걷이’는 2011년 11월과 2012년 6월 두 차례 열린 ‘서울 레코드 페어’의 부록 행사로 전시를 빼고 판매 중심의 작은 규모로 열렸다. 한편 ‘레코드 폐허’는 ‘레코드 페어’를 패러디해 밴드 노컨트롤의 멤버인 황경하, 살롱 바다비 등이 함께하는 행사로 2012년 6월에 시작됐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경로로 접하기 힘든 자체 제작 음반이나 상품들을 접할 수 있다. 이번에는 서교예술실험센터와 ‘홍대 앞 인디 신의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상영과 함께 기획됐다.
이런 행사들이 낯설게 들릴지 모른다. 아직도 CD를 사는 사람이 있는지도 궁금할 것이고, 왜 음반을 사는 사람들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지도 의아할 것이다. 혹은 이런 행사들이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등장했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대답은 간단하다.
하나의 대답. 아직도 CD를 사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돌과 인디 음반만큼은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수요층이 꾸준히 존재한다. 아이돌 음반의 시장이 팬덤을 중심으로 ‘소장’의 의미가 크게 작동한다면, 인디 음반은 거기에 음악가에 대한 지원과 ‘진정성’에 대한 가치판단을 보탠다. 어쨌든 레이블이나 음악가의 처지에서는 CD 판매 수익을 얻는 게 더 유용하다. 특히 이런 행사들은 직거래 형태이기 때문에 훨씬 더 유리하다.
카바레사운드 15돌, 파스텔뮤직 10돌…
다음 대답. ‘레코드 페어’와 ‘레코드 폐허’의 입장료는 실제 공연 관람료의 개념이다. 각각의 레이블·음악가 부스가 늘어선 ‘시장’의 형태로 구성되지만 그 안에서 열리는 부대행사는 밴드들의 공연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레이블 마켓’은 상상마당의 갤러리에서 열리는 ‘연례 전시’다. 상상마당 자체가 KT&G의 사회문화공헌 사업의 일환이기에 가능한 일인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답. 이 행사들이 어쩌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건 아니다. 그만큼 ‘인디 신’의 역사가 깊어졌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디를 규정하는 건 어렵지만(여기엔 조금 복잡한 맥락들이 작동한다) ‘인디 신(scene)’을 설명하는 건 의외로 쉽다. 생산자와 수용자, 그리고 팬덤이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음악적 ‘장’(field)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신’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인디의 경제학은 메이저의 경제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기에는 음악가가 곧 레이블이 되거나, 팬덤이 레이블이 되는 경우도 많다. 산업이 적확하게 딱 구분되지도 않고 무엇보다 공동체적 경험을 중시한다. 이런 결속력이 신을 단단하게 지탱하며 산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혹은 음악적으로 심화·분화·발전하는 동기로 작동한다면, 지금 이런 행사들의 등장은 바야흐로 홍대 앞 인디 신의 ‘현재’를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2012년에 카바레사운드는 15돌, 파스텔뮤직과 비트볼레코드는 10돌을 맞이했고, 일렉트릭뮤즈나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처럼 5년 이상 된 레이블도 늘어나고 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처럼 레이블에 속하지 않은 음악가들이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경우도 생겼고, 10cm처럼 메이저를 ‘돌파’한 인디 음악가도 등장했다. 이 심화 과정에서 ‘음악의 생산자’들은 편의에 따라, 또 필요에 따라 레이블이나 단체의 형태로 늘어나고 있고, 그때 인디 음반을 전문으로 다루는 시장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다시 말해 ‘레이블 마켓’과 ‘레코드 페어’ ‘레코드 폐허’의 등장은 단지 시장의 형성 이전에 신이 발전하는 역사적 과정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이 점은 ‘레코드 페어’ 2회 행사에서 ‘하나뮤직 특별전’이 열리거나 지난해 ‘레코드 폐허’가 서교예술실험센터의 20여 년간 인디 신의 자취를 되짚어보는 행사로 기획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인디 신 자체가 무엇보다 공동체적 경험을 중요시한다면 그 역사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과정이 곧 ‘마켓’을 형성하는 기획은 자연스럽다.
마케팅 전략보다 ‘지구력’이 필요해
그렇다면 ‘관객’은? 여기에 오는 사람들, 관객은 결국 음반의 구매자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거기엔 나처럼 CD를 사는 게 습관처럼 된 사람도 있고, 최근 CD 플레이어를 ‘어렵게’ 구입해 음반을 들으려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연령대가 30대 이상이라면 후자는 20대 초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년 동안 제기된 ‘비합리적인 음원 가격 정책’에 반감을 품은 청(소)년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아무튼 그들이 음반을 산다는 건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이 행사들은 그동안 깊어지고 단단해진 신의 역사를 증언하는 현장이자, 신(의 구성원들)을 지원하는 경제공동체적 성격도 가진다. 그래서 실제 현장에서 음반을 판매하는 사람과 구매하는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도 많다. 이 모든 행사의 구매자가 한정된 규모라고 볼 수도 있지만, 거기에 대해 ‘시장을 늘려야 한다’거나 ‘마케팅을 더 많이 하라’는 얘기를 던지긴 어렵다. 그건 이들의 한계인 동시에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강점이기 때문이다.
성장도, 애정도, 관계도 결국 시간과 비례해 성숙한다. 이 행사들에 필요한 건 ‘사업 전략’이 아니라 ‘지구력’인지도 모르겠다. 음원보다 음반을, 레코드보다 공연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이란 바로 ‘축적된 시간과 경험’에 있기 마련이니까. 이런 마음으로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무엇보다 지갑을 여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자신의 취향과 공동체를 지키는 데 드는 돈을 아끼지 말 것. 개처럼 벌어서 좋은 데 써야지.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