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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책은 우울증 치료제?

혜민 130만 부, 법륜 100만 부 등 올 한 해 출판계 가장 강력한 키워드 ‘스님’…
평범한 단어와 일상의 지혜로 냉소에 빠진 대중의 마음 두드려
등록 2012-11-09 21:47 수정 2020-05-03 04:27
스님들이 불안과 냉소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러나 대부분 순응과 이해를 가르치는 미국발 자기계발서와 닮았다. 왼쪽부터 베스트셀러 필자로 떠오른 불필 스님, 법륜 스님, 혜민 스님. 아래는 스님들이 쓴 책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김태형, 한겨레 김태형

스님들이 불안과 냉소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러나 대부분 순응과 이해를 가르치는 미국발 자기계발서와 닮았다. 왼쪽부터 베스트셀러 필자로 떠오른 불필 스님, 법륜 스님, 혜민 스님. 아래는 스님들이 쓴 책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김태형, 한겨레 김태형

개인의 미래와 가족 문제 등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던 30대 중반의 한 여성은 인간의 이성을 일깨우는 인문서, 그중에서도 주로 심리학 서적을 읽으며 자기 치유를 해왔다. 그러나 SBS TV 에 출연한 법륜 스님이 어떠한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하는 진솔한 모습을 보고 한순간에 반해버린 이후에는 법륜 스님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의 강의나 책을 쫓아다니는가 하면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수련회에도 일주일간 다녀왔다. 그 후로 답답한 가슴이 풀려 편안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법륜 스님은 (이상 휴), (지식채널), (이상 정토출판), (이상 김영사) 등 일상의 지혜를 알려주는 책들을 펴내왔다. 방영 이후 그의 책은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그리며 연말까지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넘길 것 같다.

고용 없는 성장 덕에 힐링 책만 상종가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안’으로 손꼽히던 혜민 스님이 휴식, 관계, 사랑, 미래, 인생, 사랑, 수행, 열정, 종교 등을 주제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쌤앤파커스)은 에 잠시 1위를 내준 것 외에는 올해 내내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며 130만 부나 팔려나갔다. 그 밖에 의 정목 스님이나 의 불필 스님도 베스트셀러 저자 명단에 이름을 당당하게 올렸다.

우리 출판 시장에서 스님들의 에세이가 대거 상종가를 친 적이 또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이었다. 법정 스님의 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법정 스님의 , 원성 스님의 , 현각 스님의 등이 불안에 떨던 대중의 마음을 위무했다.

1998년은 그래도 불안을 이기려는 ‘열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벤처 열풍이 불었고, 사상 초유의 저금리 시대가 도래했다. 디지털 경제는 기술 진보로 생산 비용을 낮췄으며,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던 온라인 쇼핑몰과 대형 할인점, 홈쇼핑은 엄청난 가격 할인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그래서 당시엔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 하나만 잘 갖추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잭 캔필드 외, 이레) 같은 감동서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카드를 돌려막다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 터진 2003년의 ‘카드대란’은 사회 분위기를 한 순간에 ‘냉정’하게 가라앉혔다. 누구나 ‘2막’이나 ‘후반생’이 두려워지는 시절이었다. (한상복, 위즈덤하우스)처럼 ‘10억 만들기’에 힘겨웠던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좁혀야만 했다. 최대한 욕망의 폭을 좁혀서라도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해야 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인간이 지닌 휘장을 모두 벗겨버렸다. 개인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깨닫곤 “스스로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론다 번, 살림Biz)의 가르침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심리학의 외피를 두른 자기 계발서에 기대서 자기치유를 시도해보았지만 조금도 나아지는 게 없었다. 그저 불안에 떨며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아이, (미래에 대한) 희망 등을 하나하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인문사회과학이 잘 팔리는 때는 언제일까

여러번의 경제위기를 거쳐 다시 스님들이 냉소에 빠져든 대중의 마음을 두드린다. 스님들은 불교 교리로 억압하려 들지 않았다. 평범한 언어로 일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펼쳐놓으면 대중은 삶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으로 받아들였다. 성공은 진즉에 포기했고, 한없이 움츠러든 행복마저 버리고 이제는 정말 어딘가로 훌훌 떠나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스님들은 그들 자신이 꿈꾸는 삶의 초상이었다.

‘고용 없는’ 성장에 질려버린 떠도는 영혼들이 현실에서의 갈급함을 스님들의 책으로 해소하려 들지만, 그러나 스님들의 책은 대부분 환경 순응의 철학을 맹목적으로 강요하던 미국발 자기 계발서의 변종이나 다름없다. 트위터에서는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스님의 어설픈 육아 조언이 물의를 일으키는 해프닝도 있었다. 질문에 대한 즉답이나 잠언 수준의 조언에 인간 삶의 수고스러운 면이나 깊은 성찰이 담기는 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처럼 보인다. 항우울증 치료제 수준의 책들이 아닌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독자들이 찾게 될 날은 언제일까. 필연적인 고민에 대한 근원적 치유에 한발 더 다가서는 날 말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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