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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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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들어오자 연기력이 사라졌다

자신의 캐릭터를 <개그콘서트> 안으로 가져와 코너 만드는 새 방식…

손쉬운 ‘썰’ 푸는 동안 장수의 비결인 희극배우의 연기력 사라져
등록 2012-11-03 12:25 수정 2020-05-03 04:27
<개그콘서트>에 연예인 카메오들의 출연이 잦은 것은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생존 전략일까, 아니면 <웃찾사>의 전철을 밟는 것일까. ‘생활의 발견’ 코너에 카메오로 출연한 김원준.
KBS 제공

<개그콘서트>에 연예인 카메오들의 출연이 잦은 것은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생존 전략일까, 아니면 <웃찾사>의 전철을 밟는 것일까. ‘생활의 발견’ 코너에 카메오로 출연한 김원준. KBS 제공

고소를 당하면서까지 애매한 것을 정해주던 최효종도 떠났고, 대한민국에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려주던 ‘비상대책위원회’도 끝났다. 작은 일에도 상처받던 장군들의 ‘감수성’마저 무너진 자리, 이른바 ‘대박’ 코너는 없지만 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마지막 시그널로 주말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람을 울린다. 강렬한 한 방이 없어도 한두 코너로 무게중심이 쏠리지 않도록 매주 순서에 변화를 주며 프로그램 전체를 보게 하는 균형감각은 여전히 탁월하고, 패턴화된 콩트 안에서 매주 다른 웃음을 뽑아내려는 개그맨들의 치열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는 이제 과도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안정된 시청률이나 지속되고 있는 대중의 관심 같은 외부의 결과가 아닌, 느리지만 확실히 보이는 내부의 변화가 그것을 방증한다.

독이 될지 모르는 연예인 카메오 출연

최근 의 마지막 코너는 ‘네가지’다. ‘네가지’는 남자 개그맨 4명이 인지도 없고, 촌티 나고, 키가 작고, 뚱뚱해서 벌어지는 애환을 웅변하듯 털어놓는 형식의 코너다. 이들은 순서대로 실제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소개하고 공감을 얻은 뒤 김준현의 “마음만은 홀쭉하다!”와 같은 고정된 구호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허경환은 키가 좀 작아도 잘생겼고 자신감이 넘치는 자신의 캐릭터를 코너 ‘거지의 품격’으로 그대로 가져와 ‘꽃거지’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개그맨들이 콩트 내의 캐릭터를 콩트 밖, 곧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에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방향이 돼가는 것이다. 과거처럼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높은 인지도와 활동반경을 얻은 개그맨들은 현실에서의 자기 캐릭터를 콩트 안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네가지’에 그대로 대응하는 개그우먼들의 코너 ‘희극 여배우들’에서 드러난다. ‘희극 여배우들’에서 개그우먼들은 아줌마처럼 보이고, 못생겼고, 노처녀다. 이는 자신의 현실을 고백하는 개그맨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캐릭터 그대로다. 인지도 없는 김기열은 ‘네가지’ 안에서마저 허경환에게 유행어가 없다며 놀림을 받고, 정경미는 자신이 더 이상 요정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신세 한탄을 시작한다. 정경미의 실제 연인 윤형빈이 ‘왕비호’ 시절에 정경미를 ‘국민요정’이라고 불렀던 것의 연장선이다. 콩트 연기를 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캐릭터화해서 짧은 토크로 풀어가는 것이 한 코너가 되고, 그런 코너들의 비중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박성광은 ‘용감한 녀석들’에서 의 담당 PD와 겨루며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콩트 안으로 끌어들였고, 황현희는 ‘막말자’를 시작하며 무엇인가를 고발하고 콩트 밖에서 냉소하며 중계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콩트 형식을 완성시켰다. 프로그램 전체를 두고 봤을 때 고전적 방식의 콩트 속 캐릭터로 기억에 남는 건 ‘멘붕스쿨’의 갸루상(박성호)과 정색하며 ‘반품 교환’을 외치는 정여사(정태호) 정도다.

이런 변화가 진화의 과정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의 평온해 보이는 현재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과거 SBS 는 빠른 속도로 콩트를 전개한 뒤 유행어를 반복하는 형식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때의 와 모두 함께 ‘너~무’를 따라하며 콘서트처럼 한 번 더 외치는 지금의 는 무엇이 다를까. ‘생활의 발견’이 ‘홍보의 발견’이 된 지금 상황은, 방청석으로 카메라를 돌리면 어김없이 연예인이 박장대소를 하고 있던 전성기의 와는 또 어떻게 다른가. 처음 아이디어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에서 카메오 출연으로 코너의 수명을 이어가는 것은 다른 방식의 생존 전략인가, 아니면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억지 생명 연장인가. 최근 에 연예인의 출연이 잦아지는 상황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 긍정적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리얼에 적응 vs 고유의 색 상실

수많은 개그 프로그램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가기를 반복하는 동안, 가 13년을 버틸 수 있었던 저력 중 하나는 개그맨들이 지닌 희극‘배우’로서의 연기력이었다. 그랬던 이들이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자기 자신을 캐릭터로 가져와, 주어진 시간 동안 한자리에 가만히 ‘썰’을 푸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는 리얼을 요구하는 시대에 가 적응한 방식일까, 아니면 프로그램 고유의 색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일까. 물론 는 여전히 웃기는 프로그램의 대명사이고, 그리 쉽사리 그 지위를 박탈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단단하게 쌓아올려진 이 유일한 개그의 성채에 대한 도전은 내부로부터 왔다. 시간의 흐름과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선택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러고 보면 의 라이벌은 오직 뿐이라는 말만은, 진부한 표현이 아닌 분명한 사실임이 틀림없다.

윤이나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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