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화났다.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말잔치만 하다가 떠난 이전 대통령 때문에 핏대가 올랐다. “약속합니다, 뭘 해주겠다, 뭘 해주겠다. 그렇게 약속한 것을 지난 5년간 잘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되었겠습니까?” 물론 이것은 측근들의 구속에다 서울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특별수사까지, 코너에 몰린 임기 말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영화 <MB의 추억>은 청와대 입성을 노리며 찬란한 공약과 화사한 웃음을 선뵈던 대통령 후보자 MB의 추억을 복기한다.
MB 저격수는 ‘5년 전 MB’
‘MB 5년 정산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MB의 추억>이 10월18일 일반 상영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인 이 영화는 2011년 <트루맛쇼>에서 직접 식당을 차려 TV 출연 유명 맛집이 되는 방법을 까발렸던 김재환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영화다. 이번엔 몰래카메라(몰카)는 없다. 대신 감독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과 대통령 당선 직후에 했던 말들을 가지런히 모아 관객에게 내놓는다. 지난 5년간을 사람들이 어떻게 체감했든 간에 영화 속 시간은 빠르고 경쾌하게 흘러간다. 대통령 얼굴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이 영화를 웃으며 볼 수 있는 이유는 영화 초반 MB가 칼을 빼들고 “저는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대한민국 정권 교체해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저는 온몸을 던져서 국민을 위해서, 서민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라고 외친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자 MB와 현 대통령직에 있는 그를 쑥스럽게 맞대면시켜보니,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안다”던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했던 말이 고스란히 2012년 현직 대통령의 뒤통수를 때린다. 그가 대통령이 되려고 카메라 앞에서 했던 말과 행동이 그의 ‘몰카’ 노릇을 한 셈이다.
주연은 물론 기획, 각본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크레디트를 독점한 이 영화는 ‘MB의, MB에 의한, MB를 위한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온통 그의 판이다. 영화 3분의 2 넘는 분량이 2007년 이명박 캠프의 유세 활동, 선거광고, 취임 직후의 인사 등을 담은 자료 화면으로 채워졌다. 당시 방송사 PD로 일한 김재환 감독이 개인적인 기록과 취재를 위해 찍어뒀던 유세 동행 영상과 한겨레TV 등 언론사의 기록, 유튜브 동영상까지 활용해 대부분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당시 MB의 모습과 약속들을 불러냈다. 재래시장 출신이고 환경미화원에 막노동도 하고 국화빵도 구워본 그가 훗날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과 ‘촛불 10만 개의 아우라’를 업는다는 이야기는 블랙코미디로 손색없다.
그러나 어디 그만 그랬을까? 카메라는 2007년 대통령 후보자들이 충남 태안의 기름 유출 사고 현장 유세에서 ‘바통 터치’하며 사진 찍기 분주한 장면을 비춘다. 이명박 후보가 국밥집이며 국숫집이며 시장통에서 부지런히 먹고 또 먹을 때 당시 경쟁자였던 정동영 후보나 이회창 후보도 시민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입에 욱여넣는다. 시민들은 그들, 후보자들에게 정책이나 공약을 묻는 대신 ‘친서민 밥상’만 먹이고 좋아한 셈이다. 최고의 코미디는 자기 풍자라는 말처럼, 대통령과 다른 후보자들, 그리고 목 놓아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알면서도 그러려니 적당히 속아줬던 사람들이 이 코미디의 공동주연 노릇을 한다. 정산 대상엔 우리의 선거 행위도 포함된다.
MB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김재환 감독은 <한겨레21>과 전화 인터뷰에서 “<MB의 추억>은 <트루맛쇼>에 이은 ‘역지사지 프로젝트’의 두 번째 편으로 오랫동안 구상했다”며 “유권자의 눈으로 MB를 보고, MB의 시선에서 유권자를 보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라고 했다. MB의 눈에 비친 시민은 어땠을까. 취임 전부터 BBK 의혹과 기업 편향적 성격에 대한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1149만 표를 얻어 대선 사상 2위와 가장 큰 격차를 벌리며 당선됐다. 영화는 시종 “이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한 게 아니라 경제대통령으로 뜨거운 환호와 열광을 얻었던 후보”라는 점을 지적한다. “당시 MB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5년 뒤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던 김 감독은 전주영화제 상영 뒤 그 사람들을 일일이 수소문해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물어 영화의 뒷부분을 바꿨다. 그러나 전체적인 주제는 변하지 않았다. <워낭소리>를 제작한 고영재 프로듀서가 <MB의 추억> 배급을 맡았다. 그는 “이 영화의 목표는 대선 코앞에서 가능한 한 많이 퍼지는 것”이라며 “영화관 상영에만 집착하기보다는 포털과 IPTV 등 다른 유통 경로를 통해 파급에 힘쓸 것”이라고 했다. 김재환 감독도 “보고 나면 투표하고 싶어질 테니,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게 만들면 다른 소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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