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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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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들에게 띄운 안부

등록 2012-09-19 16:53 수정 2020-05-03 04:26
생전의 박완선 선생. 마음산책 제공

생전의 박완선 선생. 마음산책 제공

선생이 언젠가 말했다.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10년이 넘으면 도가 트여서 눈 감고도 그 일을 하는 경지에 이른다는데, 이놈의 글쓰기는 30년이 넘어도 도가 트이지 않아 빈 원고지를 보면 이 넓은 지면을 어찌 채울지 한숨부터 나온다고. 첫 문장의 두려움을 덜 속셈으로 이 말씀에 기대어 글을 열었지만, 한편으로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선생님의 ‘한숨’에 위로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나처럼.

<font color="#1153A4">팔십 평생을 갈무리하는 유언처럼</font>

물론 선생의 문학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위안이었으나, 그것이 위안이 되기까지 선생의 삶은 곡절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독재를 건너온 것도 모자라, 남편과 아들을 한 해에 잃은 비할 데 없는 고통을 당했다. “박완서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개인사적인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했다”는 말은 맞지만, 이 말은 참 잔인하게 들린다. 연옥의 세월을 견뎌내기까지 선생이 흘렸을 피눈물을 헤아릴 수 없는 난, 그저 선생이 떠난 빈자리를 서성일 뿐이다.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라는 선생의 빛나는 혜안은, 그래서 더 찡하다.

남게 될 우리가 되레 안쓰러워서였을까. 큰따님이 선생의 책상 서랍에서 찾아낸 미출간 원고들을 엮은 (마음산책 펴냄)은 이승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당신의 안부인 것만 같다. 여러 글 가운데 주로 2000년 이후 기고한 38편을 추린 이 책은, 선생의 소설이 그러하듯 나이 들지 않는 감성과 녹슬지 않는 통찰로 싱싱하다. 작가가 되기까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일상에선 건진 깨달음, 우리 시대를 향한 제언, 집과 언어의 집인 모국어에 관한 성찰, 그리운 사람들과의 추억 등을 두루 담아 팔십 평생을 갈무리하는 유언처럼 읽힌다.

그 유언들은 인생의 황혼 녘에 나온 것치고는 밝고 건강한 것이어서,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예컨대 표제가 된 김점선 화백 문병기가 그러하다. “고통스럽던 병자의 얼굴에 잠시 은은한 미소가 떠오르면서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을 보니 잠든 아기의 발바닥이었다. 포대기 끝으로 나온 아기 발바닥의 열 발가락이 ‘세상에 예쁜 것’ 탄성이 나올 만큼, 아니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수명을 다하고 쓰려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아기의 생명력은 임종의 자리에서도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선생이 그 고목나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생명에의 긍정이 나이듦의 한 징표이듯, 증오는 젊음의 한 표지다. 선생은 자신을 작가의 길로 이끈 것은 스무 살의 증오였다고 고백한다. 한국전쟁 때 “우리 집에서도 오빠와 삼촌, 사촌이 죽었는데 삼촌은 옥사, 사촌은 영양실조로, 오빠는 좌익 우익 양쪽 진영에서 곤욕을 치르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세상이 바뀔 때마다 빨갱이로 몰렸다가 반동으로 몰렸다가 하면서 나는 내 눈엔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자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당하면서 그들 앞에서 벌레처럼 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번득이는 섬광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등장시켜 이 상황을 소설로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때 나는 문학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참척을 당한 뒤 하느님을 저주하고 배교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매일매일 죽였던 하느님 덕분에 그 슬픔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던 50대 중반의 당신처럼, 선생은 증오와 복수심 덕분에 젊은 날의 치욕을 딛고 문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출간 원고들을 엮은 박완서의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은 물 흐르듯 유려한 글쓰기의 경지를 보여준다.

미출간 원고들을 엮은 박완서의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은 물 흐르듯 유려한 글쓰기의 경지를 보여준다.

<font color="#1153A4">모국어로 쓰인 구성진 글의 전범</font>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엄격성을 신줏단지 모시듯 지키고 살아온 까닭에, 꼬장꼬장한 선생이 우리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더욱 반갑다. 뭐든지 잘 퍼주었던 박경리 선생에게 조선간장으로 삭힌 풋고추를 더 달라고 했다가 토지문화관에 들어와 있는 후배 문인들 먹여야 한다고 면박을 당하자, 달라면 다 주실 줄 알았는데 너무 기가 막혔다는 일이나, 피천득 선생이 자신을 특별히 좋아하셨다고 믿는다며 박애보다 편애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선생은 소녀 같다. 또 잔혹한 한국전쟁에서 죽지 않고 기적처럼 살아남았다고 해서, 죽은 피붙이들 몫까지 좋은 일을 많이많이 하고 살아야지 하는 기특한 생각 같은 걸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그 끔찍한 기억과 더불어 사는 것만도 지겹다고 할 때, 난 그 솔직함에 반했다.

“생활이나 경험에 무게가 실리지 않은 감성적인 미문을 싫어했던” 선생답게 이 책은, 경험과 생활을 바탕 삼아 물 흐르듯 유려한 글쓰기의 경지를 보여준다. 설익은 기교와 어쭙잖은 스타일로 젠체하는 글쟁이들을 한칼에 베어버리는 문장과 문장의 유기적 호응, 곧 서사의 힘이 여기에 있다. 선생의 문학은 모국어로 쓰인 구성진 글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박경리, 피천득, 이병주, 김수환, 법정, 이해인 등과의 인연을 그리는 선생의 애잔한 음성을 들으며, 그들 대부분이 육신의 짐을 벗고 피안의 세계로 떠났다고 생각하니, 2년 전 초가을 선생을 먼발치에서 뵙고서도 인사 한 번 드리지 못한 내 변변치 못한 성정이 더 밉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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