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장클로드 반담은 악당이다.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한 플루토늄 무기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범죄집단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그 정도 스케일이면 사무실에 첨단 컴퓨터는 물론 적어도 아이패드처럼 늘 휴대하는 첨단 기기도 있을 법한데, 여러 슈퍼히어로와 각종 최첨단 장비가 스크린을 가득 메운 요즘 세상에 그가 들고 다니는 거라곤 오직 빛나는 단검뿐이다. 그건 뭐 부하들도 마찬가지, 오직 총 아니면 칼이다. 그리고 그 단검을 실베스터 스탤론, 제이슨 스테이섬 등이 속한 용병 특수부대 ‘익스펜더블’의 일원의 가슴에 꽂는다. 하지만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굳이 수고스럽게 느린 발차기로 단검의 손잡이를 차서 푹 꽂아넣는다. 손으로 찔러넣거나 한 방의 총으로도 가능한 일을 두고 ‘아니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라고 하겠지만 반담의 팬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장면이다. 발이 하는 일을 손이 모르게 하라.
동작을 멈추고 맞기를 기다리다
1편에 이어 새로이 가세한 대표적인 인물은 공교롭게도 발차기의 달인들인 장클로드 반담과 척 노리스다. 먼저 가라테 유단자인 장클로드 반담은 (1985) 이후 (1987), (1989) 등 일련의 킥복싱 영화들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당시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달리 ‘발차기하는 백인’이라는 희소가치가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전매특허는 ‘날아올라 돌려차기’다. 에서도 그는 스탤론을 향해 무려 2회의 날아올라 돌려차기를 얌체처럼 재빠르게 구사한다. 과거 그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를 보면, 한창 싸우다가도 그가 슬로모션으로 날아오르기만 하면 악당들이 일제히 하던 동작을 멈추고 맞기를 기다렸다. 에 그가 출연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왕년의 팬들은 오직 그 장면만 기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척 노리스는 사실상 발차기하는 백인의 원조다. (1972)에서 리샤오룽(이소룡)과 함께 로마 콜로세움에서 최후 대결을 벌인 이가 바로 그다. 반담이 데뷔 때부터 여러모로 말끔한 모델 같은 용모를 뽐냈다면, 그는 가슴에 털까지 난 장발의 터프가이 고수였다. 그리하여 무표정한 얼굴과 어울려 왠지 가슴팍에 주먹이나 발길질을 당해도 별로 아프지 않을 것 같았기에 더 강해 보이는 남자였다. 의 클라이맥스가 조마조마한 것은 마치 무적의 리샤오룽이 그에게 질 것 같은 공포 때문이었다. 한국 오산공군기지에서도 근무한 적 있는 ‘군바리’ 척 노리스는 태권도까지 익혀 홍콩 영화계에서도 활약한 고수 중의 고수였다. 사실상 그가 발을 쓰지 않은 것은 오래지만 에 그저 기관총만 갈겨대는 ‘고독한 늑대’ 캐릭터로만 등장하는 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아마도 데이비드 캐러딘이 살아 있었다면 반드시 출연시키려고 했을 듯하다(그는 2009년 6월3일 타이 방콕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2부작(2003~2004)에 ‘빌’로 출연한 그는 197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TV시리즈 의 주인공이었다. 타란티노 처지에서 ‘백인이 연출하는 발차기 영화’ 에 그를 무조건 캐스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척 노리스나 장클로드 반담처럼 화려한 발기술을 선보인 것은 아니지만 파란 눈의 떠돌이 승려로 등장해 ‘무술하는 백인 배우’의 시초가 됐다. 홍콩 무술감독이 할리우드로 하나둘 진출하자 이제 각종 슈퍼히어로들이 현란한 발기술을 구사하는 것에서 보듯, 그리고 리샤오룽이 제임스 코번과 스티브 매퀸에게 쿵후를 가르쳤던 것에서 보듯, 그는 장차 백인 배우들도 발차기를 익혀야 한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계보의 적자들, 합을 이루지 못해
그것의 완전체는 바로 1편과 2편 모두에 출연한 제이슨 스테이섬이다. 영국 출신으로 다이빙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2001)에서 리롄제(이연걸)와 조우하며 본격적인 액션배우를 꿈꿨다. 이후 (2002~) 시리즈를 거치며 그는 자기 머리 뒤의 적들까지 앞차기를 쭉 뻗어 처치할 정도로 화려한 발기술을 장착했다. 흥미로운 것은 로 반담을 발굴한 위안쿠이(원규) 감독이 바로 의 감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가 왕년의 백인 발차기 고수들을 불러모아놓고는 정작 제이슨 스테이섬과의 시합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1995), (1995) 등 역시 위안쿠이 감독과 가장 멋진 호흡을 과시했던 리롄제마저 후반부에는 돌프 룬드그렌의 대사처럼 ‘중국집 배달부’처럼 사라지게 만든다. 2부작이 혹독한 수련으로 무술을 연마한 우마 서먼으로 하여금 데이비드 캐러딘에게 복수할 기회를 만들어준 것에 비하면 는 일부러 싸움을 피한다. 아마도 많은 팬들은 장클로드 반담의 돌려차기뿐만 아니라 지금의 제이슨 스테이섬과 맞장 뜨는 광경을 가장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발을 쓰지 못하는 복서 ‘록키’이자 총을 든 용병 ‘람보’인 실베스터 스탤론은 자신이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영화가 지나치게 발차기로 흘러가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백인 발차기 배우의 계보를 이어가는 데이비드 캐러딘과 척 노리스, 그리고 장클로드 반담과 제이슨 스테이섬의 발은 결국 합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스크린에서 발은 급속도로 퇴화되고 있다.
주성철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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