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서 풍악이 울린다. 어렵고 익숙지 않은 국악이라고 애초에 귀를 막으려 들지 말 것. 9월8~9일 창덕궁 옆 원서공원 등지에서 열리는 제1회 북촌뮤직페스티벌은 크로스오버 국악 축제다. 오래된 동네 북촌에 요즘 감성의 카페며 식당들이 골목 사이에 스며들어 불을 밝히듯, 국악의 몸틀에 현대의 색채를 입힌 음악이 울려퍼진다. 국제 음악축제와 해외 도시 투어를 하며 국내보다는 세계적으로 더 유명한 ‘공명’ ‘비빙’을 비롯해 거문고 연주그룹 ‘거문고팩토리’, 타악밴드 ‘소나기프로젝트’ 등 국악과 현대음악의 접점에 선 이들이 무대에 오른다. 연습에 한창인 젊은 음악가들을 만나보았다.
남들은 잘 나간다고 하지만
8월22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우극장 무대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다. 북촌뮤직페스티벌에서 둘쨋날 메인 스테이지에 서는 ‘고래야’는 8월 한 달 창우극장에서 열리는 상설무대에 매주 수요일마다 섰다. 8월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이들은 언제나 처음 하는 공연처럼 연주에 몰두한다. 대금의 은은한 소리가 공기를 채우는가 하더니 곧이어 반대편에서는 흥얼거리며 기타줄 퉁기는 소리가 대금을 밀어내고 공기의 절반을 차지했다. 퍼커션·장구 등 각 악기를 맡은 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무지막지하게 섞이기 시작한다. 장구를 잡은 김초롱이 리듬을 타기 시작하더니 옆에서 퍼커션을 두드리는 경이에게 합을 맞춰보자고 한다. 장구와 퍼커션, 심벌즈가 어깨를 결으며 하나의 리듬으로 어우러진다. 옆에서 흥얼거리며 개인 연습을 하던 옴브레도 기타를 퉁기며 이들의 리듬에 멜로디를 보탠다. 이곳에서 이들 악기는 서로 다른 장르의 것이라기보다는 상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동료 같다.
고래야는 2010년 밴드를 결성해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왔지만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는 올해다. KBS 밴드 서바이벌 에서 16강에 진출하며 현대적인 방식으로 국악을 소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을 향한 러브콜은 활발하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등 국내 무대에 자주 초대받는 것은 물론 지난 7월에는 서유럽 최대 월드뮤직 페스티벌인 스핑크스페스티벌에 초청돼 무대에 오르고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룩셈부르크 등지에서도 한판 공연을 벌이고 돌아왔다.
문화계에서 그들은 국악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첨병으로 칭송받으나 고단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문고와 양금을 연주하는 멤버 정하리는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면서도 정작 국내에는 알아주는 이가 많이 없으니 괴리감이 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같이 국악하던 친구들은 저희더러 잘나간다고, 좋겠다 그러는데 국내에서는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한국 음악을 한국인들이 여전히 낯설어하는 분위기가 안타까워요.” 옆에서 말을 거들던 대금 부는 김동근은 “느리지만 한분 한분 팬들이 생기는 것은 즐거워요. 대중이 국악을 듣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우리가 바뀌어야 대중도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억지스레 대중과 통하려고 우악한 방법을 쓰지는 않으려고 해요.” 고래야는 국악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신들의 이름 앞에 국악팀이라고 못을 박진 않는다. 국악과 대중음악 두 영역을 가리지 않고 시도하며 그 접점에서 최상의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그들의 일상이다.
8월23일 저녁 7시 홍익대의 한 음악 카페에서 만난 가야금 연주가 정민아는 이들보다 한 발짝 더 깊이 현대음악에 발을 들였다. ‘모던 가야그머’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는 마룻바닥에 앉아 가야금 줄을 튕기기보다는 악기를 둘러메고 나가 홍대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 편하다. 홍대에서 7년차, 3집까지 음반을 낸 그는 오래 가야금을 뜯고 국악을 전공했지만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한 홍대 언저리와 이곳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이 이제 훨씬 편하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정체성을 국악인이 아닌 인디뮤지션으로 정의한다.
지금의 아이돌과 같았던 때처럼
정민아는 여느 국악 전공자와 마찬가지로 대학 졸업 뒤 국악 관련 악단에서 여러 차례 오디션을 봤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고 돈벌이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전화상담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국악을 전공했지만 평소 인디음악 마니아였던 그는 직장 생활을 하던 와중에 종종 인디클럽에 가서 음악을 들었는데, 그길로 새롭게 국악을 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다. 그는 12줄의 가야금 대신 서양 음계에 맞춰 연주가 가능한 25줄의 개량 가야금을 들고 연주하고 노래한다.
2012년의 국악은 과도기에 서 있다. 국악 관련 음악축제가 열리고 현대음악과 크로스오버한 국악을 연주하는 음악인이 느는 등 국악이 다시 대중의 곁에 찾아오고 있다. 그런 시절의 한가운데 서서 정민아는 이렇게 말했다. “민요를 부르는 사람이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우리 것이 억압받는 시절과 전통을 아끼지 않는 문화정책을 거쳐오며 우리 음악은 마치 박물관에 있는 유물처럼 돼버렸어요. 지금은 화석이 돼버린 옛것을 현재의 것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해요. 가야금으로 현재의 나와 당신에 대해.”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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