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의 배우들이 스크린에 얼굴을 드러냈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활발히 오가며 활동 중인 김꽃비, 서영주, 양은용 등 여배우 셋이 출연한 는 8월23일 개봉했고, 여기에 질세라 일주일 뒤 하정우·공효진은 (8월30일 개봉)에서 처절하게 맨얼굴을 드러낸다. 의 세 배우는 2011년 1월1일 각각 한 대씩 카메라를 받고 그들의 1년을 기록했고, 의 주인공들은 20일 동안의 577km를 카메라에 담았다.
각본 없는 드라마지만 어쨌든 영화
에 출연한 3명의 ‘나’는 카메라 앞에서 ‘여배우’를 벗었다. 총연출을 맡은 부지영 감독이 세 배우에게 전한 지침이라고는 ‘알아서 찍으라’는 것. 김꽃비는 카메라를 받자마자 외국으로 떠났다. 가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얻은 덕에 외국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그들과 함께하는 영화 작업이 있을 것이다. 서영주는 보라카이에 겨울잠을 자러 떠났다. 양은용은 테스트 촬영분으로 찍은 것을 다 지워버렸다. 자꾸 ‘발신자 제한 표시’ 전화가 오는데, 예전에 만나던 남자인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부지영 감독은 양은용에게 그 전화가 오는 족족 찍으라고 했다고 편집일지에 썼다. 그렇게 3명의 배우는 시나리오도, 스태프도 없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카메라를 돌리기 시작했다.
의 사달은 2011년 5월26일 벌어졌다. 제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하정우는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한 번 더 상을 탈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손을 내젓던 그는 이렇게 쐐기를 박았다. “제가 올해 또 상을 받게 된다면 그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 길에 오르겠습니다.” 2초 뒤 하정우는 수상자 이름이 쓰인 봉투를 열었고 운명은 결정됐다. 전남 해남에서 서울까지 577km를 걸어라.
공히 각본 없는 드라마인 두 영화는 배우들의 일상적 고민과 디테일을 낱낱이 보여준다. 의 서영주는 지구의 건강을 걱정하며 벽에 붙은 세계지도를 한참 들여다보고, 무언가 해소할 일이 있을 때는 뜬금없이 춤을 춘다. 옥상에서 달빛을 맞으면서도 추고, 비 맞고 집에 들어와서 옷 갈아입다가도 추고, 오븐 장갑을 손에 낀 채로도 춘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사람이 어렵다”고 말하는 양은용은 화면에 잘 나오는 각도 따위는 계산하지 않고 머리를 벅벅 긁는다. 한국에 돌아온 김꽃비는 잘 차려입고 정동진영화제 사회를 보다가도 집에서는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영어책을 소리내서 읽고 멜로디언을 분다. 의 공효진은 여정 4일차 경기도 화성 즈음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아지경에 빠져 있어요. 슬슬 본색이 살짝 드러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두 영화는 어느 장르로 분류돼야 할까. 촬영 중 홍콩에서 김꽃비와 만난 한 영화감독이 김씨에게 물었다. “비디오 다이어리를 만들고 있는 거야?” 김꽃비는 이렇게 대답했다. “응, 그런 셈인데 영화로 만들어질 거야. 다른 여배우 둘이랑 같이 해. 일종의 옴니버스인데, 뭐라고 해야 할까. 다이어리? 어쨌든 영화.” 는 묵직한 숨소리로 현장감을 전하는 다큐를 지양했다. 이들은 하루 8시간씩 걷고 숙련 조교가 만든 16항의 규칙을 따르는 등 진지하게 걷기에 임하지만 비장함은 버렸다. 이근우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코미디를 넓게 정의하면 사람 이야기, 기쁘고 슬픈 게 다 들어가는 는 코미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출되지 않아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요약하면 는 배우들의 1년간의 일기 같은 다큐고, 리얼 버라이어티 무비다. ‘역할’이라는 가공의 옷을 벗어던진 배우들은 오히려 일상의 자신을 카메라에 드러내는 것에 더 큰 용기를 내야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지로 소비되는 대신 맨얼굴로 관객과 소통하기를 시도한 배우들은 이내 화면을 향해 재잘대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 순간을 즐기고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방식으로. 예컨대 김꽃비의 경우, 일상이 어떻게 영화화가 되나 고민을 토로하던 배우의 말이 끝나고 카메라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과자에 쓰인 글씨를 클로즈업했다. ‘Enjoy’(즐겨요).
영화는 배우의 민낯을 보여주길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영화가 관객에게 관음증을 허용하고 들여다보는 걸 요구하길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영화평론가 이지현씨는 에 대해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기대하거나 배우들의 적나라함을 보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오히려 연출되지 않은 가운데 예쁘고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의 부지영 감독은 “배우들이 영상을 보내오던 초반에는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자꾸 그다음 화면이 궁금하고. 그러나 보면 볼수록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이들이 연기자 이외의 생활인으로서, 삶에 대해 어떤 진지한 고민이 있는지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면서. 관객이 이들의 일상을 엿보는 이면에서 그런 태도를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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