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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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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의 모든 의문에 답하다

등록 2012-08-28 17:50 수정 2020-05-03 04:26
저자인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입시 위주 교육 자체가 아니라, 모든 학생을 성적으로 줄 세운 채 너무나도 재미없는 방법으로 너무나도 많은 공부를 시키는 교습 방법이 문제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수업 모습. 한겨레 자료

저자인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입시 위주 교육 자체가 아니라, 모든 학생을 성적으로 줄 세운 채 너무나도 재미없는 방법으로 너무나도 많은 공부를 시키는 교습 방법이 문제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수업 모습. 한겨레 자료

단도직입으로 묻자.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를 열심히 준비해줘야 하는가, 아니면 대학 입시로부터 독립된 ‘정상적’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하는가?” 진보적인 이들은 대개 후자로 답할 것이다. 교육평론가인 이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은 전자가 옳다고 말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옳다고?

내신 반영 없는 논술형 공인시험 대안

(다산북스 펴냄)에서 그는, 좌파들이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한 적대감을 버려야 한다며 “입시 위주 교육은 폐기 대상이 아니라 개선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고교 교육이 대학 입시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문계와 실업계의 구분이 없는 미국식 고교 모델의 경우에만 타당하다.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체계적인 대학 입시 준비가 이뤄지는 유럽식 모델이 적합하다.”

그렇다면 지옥 같은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은 어쩌란 말인가? “내신 성적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바칼로레아 성적만으로 대입이 결정되는 프랑스처럼 논술형 공인시험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신 성적 위주로 대입 전형이 이뤄져야 공교육이 강화된다는(또는 진보적이라는)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굳이 내신 성적을 대입에 반영하지 않아도 자신이 치를 입시 과목 위주로 선택해 학교 수업을 수강하는 제도라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식의 일은 자연스럽게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문제는 입시 위주 교육 자체가 아니라, 모든 학생을 성적으로 줄 세운 채 너무나도 재미없는 방법으로 너무나도 많은 공부를 시키는 교습 방법이라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해법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담긴 이 책이 교육비평서의 성격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 밝혀놓았듯 반쯤은 실용서다. 구체적인 공부 방법부터 아이들의 진로 상담, 한국 교육의 대안까지 100개의 구체적인 질문에 현실적 해답을 담았다. “거창한 가치나 전망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걸 한두 가지라도 쥐어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대학 입시를 위해) “우리도 강남으로 이사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대치동 일대는 정보 혼란과 학원의존증 또한 가장 심각한 곳입니다. 고급 학원 강의는 인터넷으로 모두 접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위해 강남에 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목고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관련 과목의 내신 성적을 잘 받도록 노력하세요. 각종 교외 경시대회 수상 실적이나 토플 성적 등은 밝히는 것이 금지돼 있고 면접에서 그걸 밝히면 불이익을 받게 돼 있으니 유념하세요.” “입학사정관제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입학사정관제는 대세가 되기 어렵고 바람직한 제도도 아니지만, 자발성과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자신의 소신이나 관심사가 뚜렷한 아이들이 유리한 만큼 중3~고1 전환기에 ‘자발성’과 ‘지향성’을 키운 뒤, 교과·활동·독서이력을 누적해가며 대비하세요.”

<우리교육 100문100답> 표지.

<우리교육 100문100답> 표지.

국가 영어능력시험 계획 중단해야

이범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학원가에서 스타 강사로 유명세를 치렀다. ‘최단기간 최다 수강생 기록’ ‘연수입 18억원’ 등의 이력은 전설로 남았다. ‘학원가의 서태지’로 불리며 메가스터디를 창립하는 등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였던 그는 2003년 돌연 학원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사교육의 병폐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깊은 환멸을 느낀 까닭이다. 그 뒤 교육평론가로 교육 현실과 정책을 줄곧 비판해왔다.

한국 교육의 핵심 과제를 다양화, 경쟁 줄이기, 학교 역량 높이기로 꼽는 그에게 던져진 100번째 질문은, “다음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긴급한 것은, 수능 외국어영역을 국가 영어능력시험으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중단하는 거예요. 지금 추진되는 대로 ‘읽기’와 ‘듣기’에 ‘쓰기’와 ‘말하기’를 포함한 채 수능 영어를 대체하게 되는 순간, 사교육업계는 축포를 쏘아올릴 것이고 영어 교육비가 치솟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은 ‘대학 개혁’과 ‘교사 해방’ 없이는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 관료들이 대학 개혁과 교사 해방을 위한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집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또 알아야 해요. 또한 교육과정과 평가에 있어 교사 개개인의 자율권을 대폭 늘려줘야 합니다.”

마치 강연장에서 학부모나 교사들이 던진 질의에 응답하듯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표현하는 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몸담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무상급식 정책이 권한이 별로 없는 교육감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이었다는 진술이나, 진보파라 하더라도 특목고 진학을 원하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힐 때 그는 현실주의자인 것만 같다. 그러나 고교평준화를 지지하면서도 그것이 근본적으로 획일적 교육과정이라는 지적과, 인생의 중요한 세 가지를 잘 먹는 것, 잘 자는 것, 잘 읽는 것이라 여긴다는 대목,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진보적 정치경제학 연구소가 필요하다며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재정을 도맡은 일 등에서 그의 이상주의가 어른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 두 자리 언저리에 평론가라고 자처한 한 교육운동가가 서 있다. 학부모와 교사들의 일독을 권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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