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바이러스와 동행하기 때문에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 평생 바이러스를 갖고 살다가, 어느 시기 만성 간염이나 간경화, 또는 간암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런데 병을 얻는 이유 자체는, 엄밀히 말해 바이러스 탓이 아니다. 나이 들고 약해지면 몸의 면역체계가 평생 별 탈 없이 함께 살아온 바이러스를 새삼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과도한 투쟁이 병과 죽음을 불러오는 셈이다.
일탈한 아저씨와 똑같은 사냥꾼 아저씨
는 등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파헤쳐온 김두식 경북대 교수의 신작 에세이다. 지난 여섯 달 동안 ‘색, 계’란 제목으로 창비 문학 블로그 ‘창문’에 인기리에 연재해온 글들을 엮었다. 법과 인권 등의 주제를 다뤄온 지은이는 왜 갑자기 욕망 이야기를 꺼냈을까? 욕망은 B형 간염 바이러스와 같다. 과도하게 부인하고 억압하면 병을 만드니, 살살 달래가며 살자는 게 책의 1차적인 결론이다.
지은이는 많은 이들이 주시했던 우리 사회의 ‘스캔들’ 앞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되돌아본다. 예컨대 ‘신정아 사건’에서는 한평생 ‘소년’의 욕망을 억압해왔지만, 성공한 중년이 되자 신씨와의 사랑으로 일탈을 감행한 중년 남성(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모습이 보인다. 욕망에 충실한 ‘색’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다. 일탈하는 아저씨의 반대쪽에는 ‘사냥꾼이 된 아저씨’가 있다. 스캔들이 터지면 희생양을 향해 돌부터 내던지는 이들은 규범에 충실한 ‘계’의 세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은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다. 지은이는 ‘그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르지?’ 질문해보자고 말한다. 사냥꾼이 된 아저씨 역시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지만, 일탈한 아저씨를 희생양 삼아 그 욕망을 배출하는 것 아닌가? 규범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모든 이에게 자기 욕망을 억누르고 희생양을 제물로 바치기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한평생 ‘계’에 충실한 모범생이던 지은이의 내면과 중산층, 기독교 근본주의에 속하는 가족사에 대한 고백이 이런 문제의식을 탄탄히 떠받쳐준다. ‘나이키’ 운동화를 사고 싶어도 스스로 ‘옳지 않다’고 여기며 조르지 않았고, 별 다른 일탈 없이 학업에 충실했던 자신의 모습은 욕망을 억압하고 과도하게 규범을 내세우는 구조 아래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지은이는 법학자답게 규범의 생성과 소멸에서 중요한 것이 뭔지 묻는다. 법대생들은 흔히 범죄를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위법하고 책임 있는 행위’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범죄라고 적혀 있는 것이 범죄’라는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범죄’라면 범죄가 되는 정도를 따지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누가’의 문제다. 과연 누가 규범을 만드느냐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연대의 출발은 규범 의심”
규범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기득권층은 항상 스캔들을 일으켜 희생양을 만들고, 이를 통해 ‘관심의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이런 통찰에 근거해 지은이는 말한다. “사랑과 연대의 공동체를 일궈내는 출발점은 바로 규범에 대한 의심입니다. 의심의 도움으로 쓸데없는 규범들이 사라지고 나면, 꼭 지켜야 할 규범은 오히려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고백을 통해 욕망과 규범의 공존 또는 화해를 모색해보자고 그는 제안한다.
최원형 기자 한겨레 문화부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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